민간에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도덕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그 범주를 벗어난 이들에 대한 질타, 자기 검열은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올려주는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적이다.
공원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이웃의 비눗방울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행위는 민폐이며 이를 뜯어말리지 않은 나는 파파충인가? 아내는 아이의 행동 양식 전체가 자신과 민간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새다. 다행히 아파트 1층에 거주하고 있어 아래층으로의 층간소음 피해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주거 민폐 하나는 해결
민폐의 낙인은 손가락질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내 존재 자체가 민폐 덩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처럼 결론에 다다르는 수순이다.
평일 오전 7시에 출근해 투잡 생활을 하며 오후 10시 20분에 퇴근한 날에는 아내의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민폐 남편이 되어 있다. 주말과 휴일에도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주말에도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는 매정한 아빠가 되곤 한다.
집은 당연히 남자 쪽에서 준비하는 신혼 구비 품목이라면 이것 역시 사회적인 민폐일까 병폐일까? 존재 자체가 피해를 유발하는 나와 너의 생각의 차이는 서로를 피해자라 여기고 있는 듯 보인다.
강아지의 식욕부진을 단순 감기로 판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내 의견과 그러다 잘못되면 니 책임이라며 빨리 병원 예약 잡으라고 재촉하는 아내는 이틀간의 입원으로 강아지의 병세 회복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강아지 병원비 55만 원은 내가 매주 주말에 나가 일해 벌어서 채워야 하는 기름값 또는 세금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차라리 아이들이나 부모님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해드리면 아깝지 않은 돈인데 우리는 왜 강아지의 백혈구 수치까지 걱정해가며 내 삶을 희생시켜야 할까? 결국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은 훗날 나를 옥죄여 온다. 돈을 들이는 만큼 만족스러운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벌어서 내가 쓰는 건 얼마 없고, 차는 이틀에 한 번 5만 원씩 경유를 원해 6월 더위에도 창문을 내린다. 경유 가격은 오르고 나는 창문을 내린다. 그러면 3일에 한 번 5만 원 넣을 수 있다. 점심값 아껴야지 하며 먹은 빅맥세트는 점심 식사 시간도 차 안에서 먹을 수 있게 단축시켜 주지만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인생의 시간도 함께 단축시키는 건 아닌지 매일 나에게 되묻는다.
이제와 누굴 탓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삶 자체가 민간에 피해가 된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이제 내 머릿속에서 이해의 영역에 자리한다. 사과의 몫이 본인이라면 아직 생이 남은 것이고, 주변인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사소해 보이는 선택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마라. 나는 나를 더욱 학대하여 아이를 키울 의무를 지닌 가장이다. 코인으로 400만 원 넘게 손해를 보아도, 강아지 케어로 한 달 100만 원이 빠져나가도 결국 선택한 건 나이고 이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 역시 나인 것이다. 민폐로 남길 건 빚이 아닌 자식들 목숨 정도면 충분하다. 어디 있지. 내 생명보험 증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