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개, 두 아이 그리고 외벌이 아내는 항상 몸이 안 좋다고 하고 낮에도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 시키고 나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 식탁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거나 침대에 누워 퇴근한 나를 맞는다. 저녁은 또 배달 음식이거나 반찬가게에서 배달시킨 음식 또는 레토르트, 일주일에 한두 번 직접 요리를 한다.
두 마리의 개 중 한 마리는 똥과 오줌을 배변 패드에 싸지 않는다. 나무 바닥은 몇 군데 썩었고 오줌의 노란 결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개 한 마리를 자폐 증상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이 친구는 아픈 친구니까 내가 똥, 오줌 치워줄 수 있지'
아내 역시 아픈 사람으로 치환하면 내가 돈을 벌어다 주고 저녁을 먹은 후 내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울 수 있지. 다만 나는 내 딸이 엄마를 롤모델 삼아 장래희망이 집에 누워있는 사람이 될 거란 말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에게 부모의 말과 행동이 미래의 지표가 되거늘 자신의 편안함과 안식을 위해 미래를 아픔으로 허비한다면 그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닌 그렇게 내버려 둔 부모의 탓이다.
이혼을 피하고자 선택한 출산, 자신의 보호막 정도로 치부하는 최소한의 육아, 결국 아이들도 엄마의 분노와 무기력을 사춘기 때 직간접적으로 부딪힐 것이다. 반항의 형태일 수도 있고, 외면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무기력과 분노에 저항해야 한다.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드릴 돈이 없다. 아버지께서는 재개발 진행 중인 아파트의 중도금 상환 자금이 모자라 이미 누나에게 한 번, 내 장모님에게 한 번씩 2천만 원과 1500만 원씩을 빌렸다. 오늘도 나에게 전세 재계약할 때 추가 대출 좀 하라고 부추기신다.
아버지께서는 다주택 소유자라 중도금 상환 대출이 막혀 이리저리 돈을 빌리고 있는 중이다. 2년 후 아파트가 완공되면 나와 우리 가족이 들어가 살기로 계획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그 아파트를 물려주시는 건 아니다. 그 집은 아버지의 주택연금으로 설정된 집으로 아마도 내가 인생 전체를 걸쳐 살게 될 가장 좋은 집일 것이다.
아픈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주말에 추가로 부업을 하지 않으면 아파트 관리비도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내 아들, 딸이 나중에 커서 결혼자금 좀 도와달라고 할 때 부모는 가진 돈이 없고 그 돈을 모두 20~30년 간 음식 배달과 술로 허비했다면 부모는 죄인이 되고 만다. 형을 집행할 수 없는 가족 간의 죄인은 암세포처럼 커지고 커져 숙주를 괴롭힌다. 가족은 보통 가족 구성원이 아프더라도 쉽게 내치지 못한다. 그것을 믿고 내 맘대로 내 안위대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는 유감이다. 수술로 도려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피붙이들에게도 부모에게 배울 게 없다면 과감히 그 관계를 스스로 도려내라고 말하고 싶다.
숙주로 태어나 부모가 되면 능력이 없는 부모는 자식에게 기생하게 된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현재의 패턴을 점검해보면 자식들에게 음식 배달비와 술값을 요청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