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의 아이들은 활동량이 이전과는 다르다.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여서 가까운 거리는 뛰어다닌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언니 오빠들과 친해져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한다. 불과 반 년 전에는 어울리지도 못했다. 반 년 사이에 언어의 체급을 올렸고, 주력도 제법 근접치에 다다랐다. 초등학교 1학년 언니와 7살 오빠는 이제 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며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퇴근 후 아빠가 듣는 아이들의 피드백에는 엄마의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도 안듣고 집 주변에서도 어른들께 인사도 하지 않는다며 나에게도 훈육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오늘은 윗집 언니 오빠가 같이 놀자며 2시간 반동안 계속 집 밖에 나와 놀자고 꼬드겼다며 그로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할 지경이라 호소했다. 1층집의 단점이다. 현관 앞에서 거절 당하자 주차장 화단으로 와서 친구를 부른다.
아내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경멸한다. 물론 반대로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이나 느낌 등에도 강한 거부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남이 아니어서인지 그 범주 안에 들지 못한다. 아내의 오빠도 아내의 엄마도 남의 영역은 아닌듯 하다.
저녁 8시 10분, 나의 퇴근 시간이었다.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하소연을 듣는다. 8살, 7살 아이들의 같이 놀자~ 호소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참 신기한 일이네.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타이르거나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거나 아이들 보고 잠깐 놀다 오라고 내보내거나 같이 나가서 봐주거나 등 많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왜 스스로의 감옥에 갇혀 8살, 7살 어린이의 같이 놀자 공격에 당하고만 있었을까?
결국 아내는 내가 지금 누구랑 이야길 하니 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게임을 하며 핸드폰만 바라보다 남편의 리액션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저녁 9시, 퇴근 전 아이들이 저녁으로 먹은 식판과 내가 먹은 식기를 설거지 하며 나는 '아내의 남'이 아니기에 민폐의 대상이구나 싶었다. 저녁 9시 반, 아이들 샤워를 시킨다. 물기를 말리고 잠옷으로 갈아입히는 일은 아내가 도와준다. 비로소 샤워를 할 수 있다. 샤워를 마치고나니 저녁 10시. 잠을 자는 게 유일한 휴식이다.
사실 아내의 걱정과 스트레스는 4~5시간 전 친구의 전화를 받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었다. 자폐 아이를 양육하는 외벌이 친구는 오늘 번 돈이 아이 치료비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며 하소연 한다. 상태가 호전되다가도 다시 안 좋아지기를 반복하며 투입되는 돈에 비해 결과값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너무 속이 상한다는 그 말이, 속이 상한다는 표현을 넘어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란 그 표현에 아이들 성장 과정을 SNS에 아무렇지 않게 올릴 수 있는 내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깨달았다.
우리의 걱정과 불안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당사자는 알지 못한다. 이 걸 해명하거나 설명하고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그저 퇴근 후에도 집안일을 도와주어야 하는 남편이고 남의 편이어서 아내의 사소한 민폐에도 그저 묵묵히 일을 해야 할 뿐이다. 나에게 걱정할 시간과 여유가 있었던가? 그저 한 달 생활비 모자라지 않게 토요일인 내일도 일요일인 모레도 일하러 나가야 하는 길밖에 없다. 걱정이란 생각의 쉼조차 여유라고 느껴질 따름이다.
내 차엔 맥도날드 햄버거 케첩이 열 개 넘게 쌓여있다. 차에서 먹는 점심엔 케첩을 찍어먹을 여유도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