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어른

by 이백지

그땐 가난이 친구이고 죽음이 이웃 같았다. 공장 맞은편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돌로 만들어졌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승용차가 없었고 골목은 좁았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인근 교회에 많은 이들이 다니고 있었고 그곳에서 삶을 위로받았다. 나도 가난하고 이웃도 가난하지만 자녀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헌금을 통해 드러났다.


어떤 이는 가난을 벗어나 좀 더 좋은 동네로 이사갔고 또 어떤 이들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다. 교회는 가난한 성도들의 건축헌금에 힘입어 더 크게 성장했고 인근 공장을 흡수해 더 크게 증축했다. 증축 후 교회 지하에는 주차장이 생겼고 더 멀리 사는 성도들은 이제 승용차를 타고 교회를 오간다.


내가 살던 집은 내부에 화장실이 없었다. 빌딩 2층에 푸세식 화장실 두 칸이 우리가 이용하는 화장실이었다. 집은 단칸방으로 한 칸인데 화장실은 두 칸이었다. 우리 가족은 반지하로 두 번 더 이사를 다녔고, 마침내 2층과 3층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물론 계단을 통해서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고 부터 시어머니로부터 욕을 먹지 않았다. 친할머니는 아들만 다섯을 낳은 아들 매니아로 며느리들 중 아들이 없으면 온갖 욕을 다 들어야하는 절대군주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가슴에 맺힌 한을 유선전화로 이야기하면 속마음이 새어나갈까봐 교회에서 기도를 통해 해소한듯 싶다. 이제는 그러한 고해성사급 한풀이도 휴대전화가 대신 들어준다. 어느 집사님 남편이 동네 꽃집의 플로리스트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도 휴대전화는 묵묵히 들어주는 신부님처럼 헌금을 유도하진 않지만 충전을 요구한다.


이제 그 동네는 돌로된 미끄럼틀도 요즈음 유행하는 놀이터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바로 옆 부지는 주차장으로 변모했다. 삶의 수준이 올라간 셈이다. 행복의 수준도 올랐으면 좋으련만 눈높이만 오른 듯하다. 가난은 다수에게 행복은 소수에게 허용되는 세계에서 나는 바보어른이 되기로 했다. 그저 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바보어른 말이다. 행복은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지만 낮에 빛나는 별과 달처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죽음을 경계할수록 진실된 삶을 살았는지를 되물어 보는 바보어른이 되야겠다. 빛나는 삶은 주변이 어두워야 빛날뿐 원래 그랬던 거니까 주변부는 신경쓰지 말고 마저 하던 설거지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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