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는 예쁜 여자친구를 바랐었다. 20대 때 내가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 사귀었지만 군입대로 헤어졌고 인연의 끈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30대 때 결혼을 하지 않으면 막차를 놓칠 것만 같은 불안함에 사람들은 하나 둘씩 짝을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듯한 뜻 모를 기분, 그리고 더 이상 가정을 이룬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과의 교류 단절은 새로운 의미로 다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이제는 만나는 부류가 정해졌다. 회사 사람들 외에 개인적으로 만나는 인연은 얼마 없다. 가족 외에는 신경쓰기 힘든 삶이다. 취미도 있고 친구들도 만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과 자기 삶이 공존하는 40대는 성공한 삶이라 볼 수 있다. 나 역시 신혼 초까지는 주말에 동호회에 가입해 운동을 할만큼의 여력이 남아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비대면 시대가 열리면서 일감은 줄었고, 본업의 수입이 줄면서 부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건강은 여유있는 사람과 아픈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뒤늦게 알아차린 나는 조금은 느리더라도 걷거나 뛰는 동작을 통해 내가 아직 충분히 페달을 밟지 않고 이동이 가능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한때는 3시간 안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삼을만큼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래왔는데 결혼 후 삶의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 누군가는 결혼이 손해라 말한다. 적어도 내 기준에 외벌이 가장에게는 맞는 말이다. 1년에 한 번 여름 휴가때 다녀오는 해외여행도, 주말에 동호인 친구들과 만나 운동을 즐기는 여유도, 겨울엔 스키를 타는 취미생활도 모두 사라졌다. 물론 필요하지 않은 신발을 사모으는 삶이 과연 가치있는 삶인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순 있지만 적어도 자기만족의 영역에서 외벌이 가장의 결혼 만족도는 가히 인생 최악의 선택지라 할 수 있다.
나보다 더 먼저 인생을 즐기신 분들의 태도는 그래도 아이를 가지면서 얻게 되는 새로운 행복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로인해 포기하는 자신의 삶은 노년이 되어서도 전혀 해방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외벌이 영역에서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내 자녀에게 나와 같은 선택을 하라고 강요는 못하겠다. 나 역시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행복했던 순간과 후회했던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듯이 아이에게 비슷한 말을 남기고 떠나지 않을까? 다만 내 아이들은 나보다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짐은 나누어 들어야 편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