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네 장인을 죽였는가?

by 이백지

퇴근 후 장례식장을 다녀오니 아내의 막걸리 안주는 내가 되어 있었다. 2주 연속 장례식 참석을 알리며 저녁을 먹고 들어오겠다는 남편이 의심스럽다 말한다. 실은 나 역시 신기하긴 했다. 30명 남짓한 회사에 2주 연속 장인이 돌아가신다는 게 말이다. 어제는 이미 떡도 먹은 상태였다. 부조로 마음을 전해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장인을 죽이지 않았다. 아내의 바람과는 다른 결과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수상한 행동이란 안주가 필요했을까? 벌써 열흘째 술을 마시고 있는데 더 많은 안주거리가 필요한 모양이다. 내일은 또 어떤 혐의로 나를 몰아붙일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노역이 시작된다. 아내가 편안히 술을 즐길 수 있도록 아이들과 놀아주고 씻기는 게 주요 업무이다.


낮 시간 친구와 전화 통화에서 친구는 위로를 건넨다. 본인은 아이 병원 치료비로 매달 80만원, 장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고 계셔서 매달 150만 원씩 드리고 있다고 그 몫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내 아내를 미워하지 않는다 말한다. 물론 자신의 경우 아내가 자신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어서 이러한 선택이 가능한 거라 말하는 친구는 예전의 나에게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조언해 주었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조언을 못하겠더라 한다. 또한 이 삶의 굴레는 사람이 무리를 해서 죽어야만 끝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 앉아 육개장을 먹던 직장 동료 형은 젊은 시절 처제의 죽음으로 치료비를 자신이 떠안아 오랜 기간 빚을 갚으면서 지냈다고 한다. 본인이 20세 무렵 친형이 자살을 해 세상을 떠났고 부모님도 돌아가시게 되면서 자신의 가족보다 처가집의 가족 구성원으로 살게 되면서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나는 이 형처럼 결정할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처가 식구 병원비로 1억 가까운 돈을 내가 대신 갚아야 한다면 나는 선뜻 그러한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자답다. 멋있는 결정이다.' 라는 문장을 외면하고 싶다.


빚 갚는데 20년 사용치 마시고 그냥 목숨을 거두소서. 가장은 이렇게 속삭이며 잠이 든다. 두 명의 장인을 숨지게 한 누명을 벗지 않은채 말이다. 나의 명은 언제가 마지막일지, 슬하의 자녀들이 모두 자라 결혼도 하고 손주도 있다면 시끌벅적한 마무리겠다만 지금 떠나면 찾아올 이 누가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떠안고 사는 빚처럼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펴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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