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내 한 명이 퇴사, 한 명이 노조 업무로 결원이 생긴다. 6명 근무에서 4명 근무로 체제가 바뀌는데 1명만 지원을 받는다 한다. 팀장은 은연 중 나에게 결원 지역까지 업무 처리를 바라는 눈치다. 집에서도 비슷한 역할인데 직장에서도 2인분 같은 1인분을 요구한다. '안전하게 빨리 와주세요' 같은 느낌이다. 외벌이라 늘 생활비는 부족하지만 난 당신이 일찍 퇴근해서 집안일도 좀 거들고 아이들이랑 최대한 많이 놀아줬음 좋겠어.(난 그동안 좀 쉬고싶어. 난 좀 빼주면 안 될까?) 라고 말하듯 팀장님은 너가 고생 좀 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종종 듣는 말이다. 보상은 적지만 책임의 무게는 강한 '부탁의 언어'다.
저 언어의 뒤에는 항상 결말이 좋지 않았다. 첫 직장 임금 체불 뒤에 알게된 국민연금 회사 납입금액의 미납, 결원 지역의 지원 업무로 급여가 줄어들어 입사 동기들보다 천만 원 가량 낮게 책정된 퇴직금. 나이 들수록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그래야 손해를 덜본다. 어른들의 세계는 동물의 왕국처럼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뿐 누구나 자기 그릇을 지키거나 더 가지고 가기 위해 타인과 후배에게 복종과 인내를 강요한다. 그래서 내 아랫세대들은 애초에 그런 관계에 엮이지 않는 적당한 스탠스를 취하며 사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 처자식 먹여살리려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 따위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신을 희생하거나 혹은 양보하며 사는 법 외에도 무리한 부탁을 잘 거절해야 한다. 기버에게는 늘 테이커들이 도사린다.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해 어린 자식들에게 설명해 주기가 난감하다. 마치 만 나이로 전환되어 작년의 나이로 올해도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는 신박한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란 선생님은 물음표의 곡선을 자연스레 곧게 펴주겠지.
올해로 일만 살 더 먹게 된 일만 사십 세 외벌이 가장은 주업의 업무량이 늘어날 예정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물류 배송 양은 늘었지만 단가는 여전히 좋지 않다. 다행히 한때 2000원 이상 치솟던 경유값은 1600원대로 낮아졌다. 아버지께서 운수업을 하시던 때 주유소 경유 가격은 400원~600원 사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름값은 10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 주유소를 찾게된다. 주유소 앞에서 춤추던 누나들과 가출 청소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셀프 주유소가 되었거나 주유소 자리에 건물을 올리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유소 자리를 인수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갖춘 곳도 생겼지만 아직 서민들에겐 전기차 가격은 비싸기만 하다. 보급률이 높아지면 가격이 저렴해질 수도 있겠지만 스마트폰 판매 가격을 보자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전 국민이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 갤럭시 S2의 가격이 87만원 수준이었다. 당시 스마트폰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아 휴대폰 영업하는 선배 중에 월 천만 원 이상 급여를 챙겨가는 이들도 있었다. 좋은 시절은 잠깐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돈벌이가 줄어들고 일하던 이들은 이내 업계를 떠난다. 그렇게 사람들은 여기저기 돈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래왔다.
오늘은 20년 전 함께 운동하던 형을 우연히 마주쳤다. 나는 픽업지에서 설 명절 선물을 픽업해 가는 길이었고 형은 명절 선물 세트를 들고 배송지로 향하는 듯했다.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인데 몇 년 전부터 형이 운영하던 테니스장이 주차장으로 바뀌어 소식이 궁금했었다. 생활력 하나는 끝내주던 사람이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강남 땅에서 돈냄새를 쫓고 있다.
'결혼은 했을까?'
바삐 움직이는 사이 마스크 너머로 쌍둥이 형의 눈매를 기억했다. 동안이면서 잘생긴 외모에 어릴적부터 집에 TV가 없을 정도로 가난해 서울에 상경해 이 일 저 일 닥치는대로 하는 야망에 가득차 있던 사나이는 결국 돌고 돌아 또다시 나와 동일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돈냄새를 맡기 위해서는 열심히 뛰어다녀야 한다. 냄새는 연기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정작 음식에 다가서는 이 몇 없다. 대부분 사라지고 마는 향을 이리저리 쫓다보면 어느새 처음 있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자리에서 다시 올지 안 올지 모를 오더를 기다리거나 자리를 이동해 기회를 찾아야 한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콜바리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