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중간 평가

by 이백지

아내는 결혼 전 나를 초호화 여객선으로 여기고 있었다. 당시 나의 약관에 [초호화 여객선 (페이지 넘기고) 납품 새우잡이 선원 모집]이 결혼의 조건이었는데 아내는 남편될 사람의 약관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았다.

초호화 여객선인줄 알았던 남편과 1년도 만나보지 않고 결혼한 아내는 10년 동안 식당 일을 해왔던 터라 집에서 요리하기를 꺼려했다. TO(티오)였던 요리사 자리를 거부하여 인근 선착장에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아내는 퇴직금으로 2억짜리 집을 요구했다. 협상은 불발되었고 배는 출항했다. 아내는 또 다시 배에서 내리라는 요구를 들을까 무서워 아이를 갖자고 요구했다. 이번 협상에는 제 3자의 개입이 있었다.

두 번의 유산, 유산 때마다 강아지를 데려왔다. 배가 개 사육장이 되지 않은 건 난임 병원 덕이다. 새우잡이 배에서 고래가 잡혔다. 더 이상의 월척을 허락치 않았던 선장은 낚시대를 비뇨비과에 가서 묶어 버렸다.

설 연휴 사촌들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사촌 동생은 갑상선암 투병 중이고 동갑내기 사촌은 맥주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 적절한 직업을 선택했구나 싶었다. 10대 시절 집을 나와 한 달에 이틀을 제외하고 술을 마시던 친구였는데 맥주집을 차리다니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뭐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지 암. 사회초년생 무렵 교대역 부근 다단계에 빠졌을 때보다 더 건강한 선택지였다. 당시 교육을 진행한 강사가 그 친구보다 더 예뻐서 깜짝 놀랐었다.

'이래서 다단계 사업이 잘 되는 건가?'

이미 고등학교 동창이 역삼동에서 다단계 브리핑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교육 강사의 말에 끊임없는 추임새를 넣으며 호응하셨던 옆자리 앉으신 분이 동창의 어머니란 말에 두 눈을 의심했다. 결국 그 친구의 다이아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일확천금, 모두가 젊은 부자를 꿈꾸며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만 다이아 계급에 이르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코인, 주식투자 등 모든 분야가 그러하다. 젊은 이는 성공한 삶을 꿈꾸지만 대기업의 일자리는 한정적이며, 대부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 직업과 현실의 직업은 꽤나 거리감이 있다.

명절은 중간 평가 기간이다. 어른들은 뉘집 아들이 뭐하고 지내는지를 반 년만에 추궁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유투브 일부 채널에서 언급하는 내용의 헤드라인을 그대로 말씀하신다. 자신의 평소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아닌 자신이 평소 즐겨보는 채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나누는 자리처럼 보인다. 아버지께서는 큰 절을 받으셨고 나 역시 중간 보스가 되어 조카와 아들 딸에게 엎드려 절을 받았다. 올해 윷놀이는 조카들을 상대로 삼촌인 내가 판돈을 싹쓸이했다. 어리다고 봐주지 않는다. 인생은 실전, 사회 생활에 학번, 군번은 무의미 하다. 조카의 실망어린 눈빛을 세뱃돈으로 달래어본다.




거친 세상의 풍파에 아이들만이라도 방주에 태워주고 싶다.













대신 배에 타서도 요리는 너가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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