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호 순항 중

by 이백지

조타실의 선장은 막걸리를 좋아하는 마도로스 아내와 쌍둥이 아들 딸을 태우고 전세 가정호를 운전 중이다. 앞서 풍랑으로 배가 뒤집힌 선배들은 이웃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돈을 불리던 중 IMF라는 파도를 만나 좌초되었고, 다른 배는 천천히 새는 자금의 바닷물을 막지 못해 선원인 아들이 뛰어내렸다.

그 아들과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천국이 있을까?"

"없었으면 좋겠어. 그냥 죽고나면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어. 걱정도 슬픔도 기억도 없는 무의 세계 말이야. 대신 천국을 믿고 있는 네 어머니 같은 분들에겐 실재했으면 좋겠어."

아들은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교회에 천 만원이나 되는 큰 돈을 건축헌금으로 내는 결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필 아들이 만나는 여자친구는 씀씀이가 자기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엔 빚을 지어서라도 좋은 선물을 해주었는데 여자친구는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은 아들이 왜 자꾸 만남을 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사랑이 식어서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들의 빚은 메꾸어지지 않았다. 그가 남기고 간 휴대전화엔 독촉 문자가 쌓여있었고 마지막으로 검색한 단어는 매듭 묶는 법이었다. 아들은 이미 기울어진 가세로는 어떤 1급 항해사 아내도 구할 수 없음을 인지했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 필요했던 이들은 아들의 배에 오르지 않았고 눈을 낮추어 만나본 다른 이들에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은 친구가 말한 무의 세계로 항해를 떠났다.

부모를 원망했지만 빈소를 지킨 건 부모였다. IMF 파도에 좌초된 배의 아들은 바닥부터 다시 일어나 대출을 끼고 순항 중이다. 비록 이자 갚느라 정신이 없는 삶을 살지만 아버지를 닮은 아들도 생겼다. 모두가 순항하기를 빈다. 빈소에서 만나기 전 빈잔을 채우며 항해일지나 나누며 회포나 풀었으면 좋으련만 다들 잔잔한 파도에도 식구들이 배에서 떨어질까 안절부절 운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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