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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은 어디까지가 내 것일까?

영원의 교환일기 제 8편 - 통합의 경지를 꿈꾸며

by 겨울

안녕, 원.
지난 편지에서 네가 그랬지.
내가 너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 옆자리에 ‘질투’도 함께 앉아 있었다고.

그 말이 참 멋지더라.


이렇게 멋지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네가 나를 보며 그런 감정을 느꼈다니,
말도 안 돼—하면서도, 사실은 은근 뿌듯했어.


질투라는 건 마음속에서는 쉽게 피어나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면 괜히 망설여지는 단어잖아.

그래서일까, 그 이름을 주저 없이 불러내는 사람들이 나는 유독 멋져 보이더라.


요즘 SNS 브랜딩을 하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게 있어.
성장하려는 사람들은 사실 다 비슷하다는 점이야.

여행으로 브랜딩하는 계정을 봐도, 뷰티나 패션 계정을 훑어봐도,
겉으론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 있지.


우리는 그 닮음을 문제 삼지 않아.
그저 유용해서, 분위기가 좋아서,아니면 그냥 이유 없이 끌려서 팔로우하곤

대부분은 게시물을 1초에서 길면 1분 안에 읽고는 슝—넘겨버려.

소비자에게 비슷함은 큰 이슈가 아니야.

그냥 ‘있네?’ 혹은 더 나아가면 '좋다' 하고 지나가버릴 뿐이지.


그들은 왜 이렇게 닮아갈까 생각해보면, 결국 같은 동네에 살아서 아닐까.

같은 집에 오래 살면 같은 냄새가 배듯,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닮아가는 게 있는 것처럼.


나는 나를 성장캐라고 생각할만큼, '성장'이 나만의 무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알고보니까 성장하려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태도를 지니고 있더라.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 용기,

실패해도 우선 실천해보는 끈기,

가능한 긍정의 방향을 선택하려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다움]을 찾아가는 용기.


그래서 함께하다 보면 시너지가 나고,

서로의 속도가 당겨져 더 멀리 가기도 하지.


하지만 바로 그 닮음이 치명적인 트리거가 될 때도 있어.
결이 비슷하다 보니, 질투가 가까이 다가오는 거야.
“이건 내 건데” 싶은 마음.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결국 자기다움을 잃는 게 아닐까 싶어.




서촌에서 나눴던 이야기 기억나?
어디까지가 레퍼런스고 어디부터가 모방인가.
창작하는 세계에선 끝나지 않는 논쟁이지 뭐.


창작의 출발이 벤치마킹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나도 남의 것을 참고하면서도,
막상 누군가가 내 것을 참고하면 괜히 날카로워지잖아.

‘나다움’을 누가 빼앗아갈까봐.


그럴 때면 그림책 <빨간 점>이 떠올라.
내 것은 내 눈에만 크게 보이는 법이니까.


혹시 원, 내 얼굴에 점이 몇 개 있었는지 기억나?
아마 가물가물할 거야.
그런데 네 얼굴에 있던 점은—왠지 더 또렷하게 기억날지도 몰라.


심리학에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기 것을 제일 집요하게 들여다본대.

내 창작물도 그래서 내가 가장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거고,
그러다 보면 단어 하나, 글자 하나도 다 ‘내 것’ 같아지는거지.
거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자의식 과잉이 돼.


새콤하고도 무시무시한 발상 하나만 말해볼까—
나를 포함해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의식 과잉 상태를 조금씩 앓고 있는 것 같아.

특히 SNS 브랜딩을 하다 보면 더 심해지고.


브랜딩은 [나다움]을 쌓아가는 과정이잖아.
그러다 보니 내가 정의한 단어, 문장, 분위기들이 전부 내 영역처럼 느껴지는 거야.

근데 사실 남들은 거기 오래 머물지 않거든.

잠깐 보고, 금세 자기 자리로 돌아가버리지.


자주 보는 친구 얼굴의 점조차 선명히 기억나지 않듯,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어.
결국 눈길은 언제나 자기 것에 먼저 가잖아.


그러다보면 본질이 미끄러져 나가기도 해.

SNS는 어느새 단어 선점 게임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놀이터에서 “내 거!” 먼저 외치는 아이들처럼말야.


나는 아닌 척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도 그 판 안에 있었고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자의식 과잉 상태였던 것 같다ㅋㅋ

그러다 깨달은거지.


내 것인 게 있나. 어디까지가 내 것인가.

피곤하다. 끝 없는 '내 것 전쟁' 속에서...(그러면서도 결국 내 것을 찾으려는 이 모순)


그럼에도—맞아, 네가 물었던 그 말처럼—

나는 여기서 여전히 영감과 사랑을 찾아보려 해.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몇 가지 규칙을 세웠어.
첫째, 아주 작은 레퍼런스라도 빌렸다면—단어 하나일지라도—가능하면 언급하기.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둘째,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
내가 남을 참고하듯, 남도 나를 참고할 테니까.
그건 나다움을 잃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멋진 증거라고 생각하기
셋째, 가능하다면 내 것만 주장하기보다, 기여하고 나누는 삶을 살기.
행복의 끝은 결국 ‘기여’라는 말이 있잖아.




요즘 내 머릿속에 자주 맴도는 단어가 하나 있어.
‘통합.’

정과 반이 만나 합을 이루는 일.
자연을 좋아한다면서 벌레는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자연을 좋아한다면 벌레와 '함께' 살아야 하듯,
창작을 한다는 건 레퍼런스와 모방 사이를 '줄타기'하는 일이고,
성장을 한다는 건 배움과 질투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찾는' 일이라는 것.


나는 그 <통합>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


부처가 되겠다는 거창한 말은 아니지만,

사는 내내 정,반,합을 순환할테지만

그래도—그럼에도—그 길로 가보고 싶어.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거지. 이왕이면 내 몫만큼 즐기면서 건강하게!
그게 우리의 오래된 방식이니까.


2025년 8월 17일, 새콤하고 찐득한 한여름에

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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