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교환일기 -11편
안녕 원
벌써 연말 느낌이 나지?
나는 이맘때쯤부터 꼭 하는 의식(?)이 있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캐롤 듣기!
왜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좋아.
이상하게 캐롤만 들으면 겨울이 조금 덜 차갑고, 마음이 포근해져.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코코아 한 잔을 호호 불며 마시는 그 풍경이 떠오르거든.
그런 순간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행복’ 아닐까 싶어.
‘행복’이란 단어, 진짜 오래된 말이잖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인간은 그걸 계속 정의하려고 했대.
그래서 나도 내 인생의 즐.건 철학자로서(?) 나만의 행복을 정의해봤어.
나에게 행복은 ‘내 몫만큼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일’이야.
여기서 포인트는 <내 몫만큼>.
더 가지려 애쓰기보다 이미 가진 걸 감사히 바라보고,
욕심보단 여백에 마음을 두는 그런 삶.
그게 요즘 내가 닿고 싶은 모습이야.
요즘 테니스를 배우는데, 참 신기해.
공을 세게 치려 하면 오히려 중심이 흐트러지고,힘을 빼야 정확하게 맞더라.
그걸 보면서 ‘아, 인생도 이렇구나’ 싶었어.
잘 산다는 건 뭔가를 더 쥐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걸 하나씩 덜어내는 일 같더라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야. 모든 걸 알려주려 하기보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주는 게
훨씬 깊이 닿는다는 걸 요즘 자주 느껴.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가 진짜 덜어내야 하는 건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종종 <결과>에 너무 집중하잖아.
아마도 삶의 기준이 ‘나’가 아니라 ‘타인’이 돼버리기 때문인 것 같아.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긴 어렵잖아.
그래서 요즘 나는 그냥 힘을 좀 빼고 살아보려고 해.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면서 말이야.
내가 뭔가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별로야?
‘그래도 재밌었으니 됐지 뭐~’
열심히 준비한 수업인데 애들 반응이 시원치 않아도?
‘그래도 (준비할 때) 재밌었으니 됐지 뭐~’
이렇게 생각하니까 어깨에 힘이 쫙 빠지면서 웃음이 나와.
그때 문득 ‘아, 이게 행복이지’ 싶더라.
내가 늘 말하던 “내 몫만큼 즐겁고 건강하게!”를 진짜로 살아내고 있는 기분이었어.
원이, 네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말에 백 번 공감했어.
나는 나름대로 내 몫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때로는 “그게 맞아?”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래도 괜찮아.
왜냐면 너 같은 사람이 있잖아. 넌 언제나 나를 ‘내 삶의 주인공’으로 봐주니까.
그래서 원, 너는 어린왕자의 사업가처럼 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해.
사랑하는 사람과 먹었다는 밀푀유 디저트 얘기도 참 좋더라.
그 장면을 상상하니까 삶이 꼭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히 달콤하구나 싶었어.
언젠가 나도 원이네 집에서 그 밀푀유를 같이 먹을 날을 기다리면서 이만 편지 줄일게.
올해 가기 전에 우리 꼭 얼굴 보자.
그때 캐롤 한 곡 틀어놓고 “그래도 올해 재밌었으니 됐지 뭐~” 하면서 웃자.
총총
- 영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