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교회에 새로 오신 목사님은 등산을 좋아한다는 한준호목사님이에요. 예전에 김끝예 언니와 함께 와룡리에 와서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던 강빛나 언니의 남편이기도 하죠. 강빛나 언니는 대학에서 등산 동아리에 들었는데, 토요일이면 가까운 서울 근교의 산을 서너 시간 올라갔다 내려오곤 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도 깊어져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해요. 강빛나 언니는 김끝예목사님과는 둘도 없는 친구라서 설이를 맡게 되었어요.
“네 얘기는 많이 들었단다. 야무지게 생겼구나!”
털털하면서도 목소리가 굵은 한준호 목사님의 인상은 설이에게 인자한 아버지상이었어요.
“내가 목사님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 같은 산을 등정하는 산악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산을 타는 사람처럼 정직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산 정상에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올라가잖아. 그리고는 그냥 한번 산 아래를 내려다본 후에 다시 그 산을 내려오지. 우리의 삶도 그와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마치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열심히 올라가 보지만 결국은 산 아래를 한번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뿐 다시 그 산을 내려와 죽음을 향해 내려가야 하지. 그래서 인생이 허망한 것이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한준호 목사님이 하시는 얘기에 설이는 귀를 번쩍 열었어요. 목사님답지 않게 인생이 허무하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죠. 설이는 갑자기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빙산의 일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어요.
“하지만요, ‘빙산의 일각’이란 말도 있잖아요.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은 조그만해 보이지만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빙산은 어마어마하다잖아요. 퍼센트를 따져 보면 십 분의 일 정도가 보이는 빙산이라면 보이지 않는 빙산은 십 분의 구 정도라던데요.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도 보이는 부분이 아주 작고 허망해 보이지만, 죽음 이후에 삶은 더 크고 어마어마한 것이잖아요. 바다 위에 보이는 빙산과 바다 아래 묻혀 있는 빙산에 견주어 볼 것도 아니죠. 이 세상에서의 삶이 ‘순간’이라면 죽음 이후에 우리가 살아갈 삶은 ‘영원’이니까요. 그 ‘영원한 삶’도 ‘천국’에서냐, ‘지옥’에서냐로 나누이잖아요. 사람들이 이걸 안다면 모두 다 예수님을 믿을 텐데요.”
설이의 기막힌 설명에 한준호 목사님과 강빛나 언니는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어요. 중학생인 설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속에는 복음의 진수가 담겨서 옥구슬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거든요.
“맞아. 언니도 그 다큐멘터리 보았는데, 바다에서 배를 항해하다가 빙산이 발견되면 무조건 피해 가야 한다더라. 그것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곳을 그냥 지나가려다가는 바닷속에 가려져 있는 빙산에 배가 부딪혀서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대. 왜 그 영화 있잖니? 수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말이야. ”
강빛나 언니가 맞장구를 쳐서 이야기는 날개를 단 것처럼 가지를 쳐 나가기 시작했어요.
한준호 목사님도 이야기의 핵심을 다 꿰뚫은 듯했어요.
“바다 위에 보이는 빙산처럼 우리 인생도 이 세상이 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가 아니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면 정말 이담에 큰일이 나고야 말지. 이 세상보다 더 크고 어마어마한 ‘영원’이라는 삶이 죽음 이후에 주어지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기회가 주어질 때 예수님을 믿어야 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비록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니까. 보이는 세상에서 아픈 만큼 보이지 않는 ‘영원’ 속에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들이 주어질 테니까.”
그날 저녁은 맛있는 음식보다도 더 풍성한 이야기로 배가 불렀어요. 설이는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소중한 보물처럼 가슴에 꼭 안았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빙산의 일각’, 그래 이거면 누구에게나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어.”
이듬해 설이의 고향 와룡리에서는 설이 아버지가 이장님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박씨네 아들들이 오채까지 세례를 받고 와룡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고씨 아주머니와 미동할머니, 설이 어머니, 박씨 아주머니는 와룡교회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교회 식구들을 섬긴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어요. 설이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들어갈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고향에 다니러 가지는 못했지만 김끝예목사님과의 편지를 통해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와룡리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성경 읽기에 재미를 붙인 설이는 하루가 다르게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갔어요. 마음속에 차오른 사랑이 넘치고 넘쳐서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로 흘러갔어요. ‘빙산의 일각’ 예화를 들어가며 죽음 이전과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얘기할 때, 설이의 얼굴에는 해처럼 빛이 났어요.
“그러니까 너희들도 예수님을 믿어.”
“나한테 강요하지 말고 너나 잘 믿어.”
친구들이 왕따를 시키면서 손가락질을 해도 설이의 마음에는 기쁨이 흘러넘쳤어요. 먼 훗날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속에 꿈꾸던 우물이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져서 커다란 바다가 되었어요. 바다 위로 보이는 빙산의 한 조각인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설이는 바닷속에 감추어진 어마어마한 빙산 같은 영원한 삶을 꿈꾸었어요. 그랬더니 문득 자신이 태어나던 해에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는 이야기가 기억났어요.
“그것은 아마 태어난 곳, 곧 순백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일 거야! 슬픔도 아픔도 죽음도 없는 곳, 오직 기쁨과 감사만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