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교회에서 열린 여름성경학교를 시작으로 와룡교회의 활동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어요. 50여 명의 어린이들의 낭랑한 찬양의 목소리가 와룡리 구석구석을 맴돌아 와룡리를 감싸고 흐르는 강을 적시고 와룡산 저 너머 멀리멀리 울려 퍼져 나갔어요.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어린이들의 찬양소리는 와룡리 집집마다 분위기를 바꿔 놓았어요. 가족들은 아이들이 늘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니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져도 그냥 웃어넘기게 되었어요. 와룡리의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가 아침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며 동쪽 산을 발갛게 물들이는 것처럼 뽀얗게 달구어져서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어요.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소중한 보배처럼 들어간 예수님은 집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른 아이들을 먼저 배려하는 행동으로 나타났어요. 먼저 밝게 웃으며 인사하기, 줄을 설 때, 더 급한 친구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기, 준비물 빌려주기, 숙제 도와주기 등등 하나씩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한 거예요. 늘 자기 욕심만 차리던 삼식이도 학교에서 쓰레기당번을 도맡아서 하겠다고 손을 들었고요, 오채네 아이들도 아침마다 모여서 마을 골목길을 쓸기로 했어요,
말씀의 우물에 깊이 뿌리를 내린 김끝예언니의 설교가 조금씩 아이들을 변화시키면서 와룡리 전체를 변화시키기 시작했어요. 술과 노름에 빠져 앞을 분간하지 못하던 설이의 아버지와 그 일당들도 와룡교회를 드나들면서 그들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생계가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땅을 마련해 공동으로 농사를 지어주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어요. 설이네 마당 우물 한쪽에 남아도는 공터에다 마을 회관과 노인정을 짓자는 회의도 진행되었어요. 그 맨 앞자리에 설이 아버지가 있었어요. 김끝예목사님과 설이의 기도, 그리고 미동할머니와 설이엄마의 간절한 소원이 그렇게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었어요. 일의 진행을 위해 마을회의가 자주 열렸는데, 와룡교회는 장소를 제공하고 음식을 마련해 주는 정도였지만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하는 과정에서 부녀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와룡리 어머니들의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이 서서히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었어요.
설이는 여름성경학교를 마치고 서울 샘물교회로 돌아와야 했지만, 김끝예목사님 곁에 남아서 함께 와룡교회의 일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과는 다른 따뜻한 부모님의 그늘과 다정한 친구들과의 만남도 아쉬웠어요. 이슬 같은 눈망울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언니, 언니”하면서 따르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도 차마 놓을 수가 없었어요. 몇 년 전 처음으로 최영감네 빈집에서 여름성경학교가 열렸을 때, 김끝예언니의 손을 잡고 애타하던 자신의 모습이 그 아이들의 모습 속에 겹쳐져 보였어요. 그러고 보니까 바다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의 설이 모습이로군요.
“안 돼. 넌 서울 가서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래야 더 큰 일을 하지.”
김끝예목사님의 태도는 너무나 완강했어요. 설이에게 늘 따뜻하고 다정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설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 떨어질 정도로 냉정한 거절이었어요.
“여긴 내게 맡기고 넌 다시 서울로 가.”
설이는 가슴속으로 울음을 삼켰어요. 이상하게도 성경 속에서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을 향해 가고 있는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모습이 꼭 자신의 모습인 것만 같았어요. 와룡리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다시 오는 날 설이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데,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골 풍경이 마치 자신을 몰아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어요. 그래도 설이는 이를 앙 다물었어요.
“내가 할 일이 있다잖아!”
정다운 사람들과의 이별 속에서 처음 와룡리를 떠나올 때와는 다른 훈훈함을 느꼈어요. 그때처럼 눈물이 자꾸 흐르고 있었지만, 그 눈물 속에는 전혀 다른 감정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 설이의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는 이전에 느끼던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 꿈틀꿈틀했고, 그 소망 가운데서 가슴에 뜨거운 것이 불끈불끈 일어나 타오르고 있었어요.
“난 이제 와룡리의 우물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온 거라구! 이제 난 세계를 품을 거야. 와룡리처럼 우상의 그늘에 묻혀 하나님이 누군지,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거야.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를 할 거야.”
설이는 단호한 결단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어요.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된 설이의 두 눈에는 미소가 감돌았어요. 그러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이 설이를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것 같았어요. 유리창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대고 주먹을 불끈 쥐고 “아자!” 하면서 한번 씨익 웃어 보였어요.
은은하게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들어왔어요. 말씀의 우물에서 퐁퐁퐁 생명수가 흘러나와 설이의 몸과 마음을 적시었어요.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외로울 때마다 외워두었던 성경구절들이에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