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와룡교회

by 서순오

설이가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샘물교회에서는 와룡리에 교회를 세울 때가 되었다는 움직임이 일어났어요.

김끝예목사님이 대학생이었을 때, 와룡리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샘물교회와 샘물학원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곳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조용히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설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와룡교회’는 소리 소문 없이 오랜 세월 동안 기도로 준비되고 건축자금이 비축되고 있었던 일이에요. 그런데, 설이가 서울에 온 뒤, ‘지금이 바로 와룡교회를 세울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김끝예목사님을 통해 시작되었고, 그것은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저의 고향이기도 하고 설이의 고향이기도 한 와룡리는 술과 노름, 온갖 우상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죽어있는 땅이었죠. 죽음의 땅인 그곳에서 저와 설이를 건져내 살리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곳 사람들을 우상의 길에서 건지시길 원하십니다. 와룡리는 아주 산골이지만 굉장히 큰 마을이에요. 윗마을, 아랫마을 다 합치면 거의 100여 가구가 넘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진다면 와룡리 사람들은 물론 인근의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할 수 있을 겁니다.”

김끝예언니가 ‘와룡교회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가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러 번의 회의가 있은 후, 와룡리 성황당과 최영감네 빈집(김끝예 목사님의 시댁이었어요)이 있던 자리에 교회를 짓기로 했어요. 그곳은 몇 년 전 와룡리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집들이 다 쓸려나가고 빈터만 남아있었던 곳이에요. 다행히 성황당이 있던 자리까지의 땅은 모두 김끝예목사님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어요. 아마도 최영감네 조상들이 성황당을 지으라고 땅을 내주었던 것인데, 최영감이 죽자 며느리인 김끝예 목사님의 몫이 된 것이에요. 와룡읍사무소에 다녀온 뒤 김끝예목사님은 그곳 땅이 모두 다 와룡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에 대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목사님은 와룡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기꺼이 땅을 바쳤고, 봄부터 시작된 건축은 날개를 단 것처럼 착착 진행이 되어갔어요.

여름방학이 되면 샘물대학생들과 샘물교회 사람들이 가서 와룡교회 헌당예배를 드리고 여름성경학교를 열기로 했어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김끝예목사님은 물론 설이의 마음도 분주해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교회가 와룡리에 세워지게 됐구나!”

“증말로 꿈만 같어라오.”

김끝예목사님과 설이는 서로 손을 꼬옥 맞잡고 한참을 감격에 젖어 있곤 했어요.

“내가 20년 동안 기도하던 기도제목이 드디어 응답이 되는구나!”

“교회가 다 지어지믄 누가 거기 가서 설교 한당게라오?”

설이는 벌써부터 궁금했던 것을 목사님께 여쭈어 보았어요.

“그야 물론 내가 가지. 그때, 우리가 와룡리에 봉사활동 갔었을 때 기억나니? 그 때부터 우리 집 터 위에 교회를 세우는 꿈을 꾸었단다. 그때 내가 말했잖아? 언젠가 반드시 다시 그곳에 간다고 말이야. 정말 꿈만 같구나!”

설이는 김끝예목사님이 그렇게 들떠서 얘기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어요. 항상 침착하고 야무지게 얘기를 하던 분이었는데, 마치 꿈꾸는 사춘기 소녀처럼 눈동자도 그렁그렁하게, 볼이 발그레 상기된 채, 목소리에는 무지갯빛 셀렘이 가득 묻어 나올 것처럼 말을 했거든요.

“목사님, 그렇게 좋아요?”

“그래, 이럴 땐 말이 다 필요 없다. 어떻게 말로 이 감격을 다 표현할 수 있겠니?”

서울에 사는 샘물식구들은 샘물식구들 대로, 와룡리 사람들은 와룡리 사람들대로, 기대를 가득 안고 와룡교회가 헌당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었어요. 와룡교회는 1층은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2층으로 올라가면서는 노아의 방주 모양을 한 특이한 모양의 교회였어요. 예배당 안은 특별한 장식이 없이 천장에는 조명등들이 밝게 빛나고 벽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나타내는 모자이크 벽화가 몇 점, 그리고 앞 단상에는 큰 나무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 밑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성경말씀이 나무글씨로 도드라져 보이게 새겨져 있었어요.

서울에서 사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와룡리 사람들이 와룡교회로 몰려들었어요. 헌당예배 후에는 맛있는 점심도 준비되어 있고 각 가정마다 밥상을 하나씩 선물로 준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어요. 아니면, 불우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김끝예 목사님과 설이의 운명이 어떻게 행복한 삶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모인 것인지도 몰랐어요. 아니, 아니, 우상의 터인 와룡리에, 그것도 성황당과 최영감네 빈집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와룡교회’의 웅장한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다는 표정을 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 와룡리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뜻과 계획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설이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동생 옥이, 덕이, 그리고 박씨 부부와 아들들 일채,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삼식이네 식구들, 고씨 아주머니,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몸이 걸려 한 사람 한 사람 와룡교회로 이끌리어 오고 있는 것이었어요.

김끝예목사님은 오늘따라 더욱 상기된 목소리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3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고 죽음을 넘어서서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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