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설이의 서울 유학

by 서순오

설이는 바다초등학교를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토록 꿈꾸어 오던 서울 유학의 길에 올랐어요. 김끝예 언니는 그새 서울에 있는 샘물중(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있는 기독교 학교법인인 샘물학원에 속해 있는 여자 중학교)에서 성경도 가르치고 설교도 하는 교목 목사님이 되어 있었어요. 설이는 김끝예 목사님(이젠 ‘언니’라는 말보다는 이렇게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의 초청으로 언니가 목회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샘물중이 속해 있는 샘물학원은 조그마한 산을 하나 끼고 있었는데, 산 중턱을 올라가면 샘물대학교가 있었고, 그 대학교 내에 샘물교회가 있었어요. 설이는 교회 안에 있는 사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끝예 목사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지요. 가족이 없는 김끝예 목사님은 설이에게 마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어요.

“설아, 네가 오니까 정말 사람 사는 것 같다. 이게 얼마만이냐?”

“언니, 아- 아니, 목사님, 증말로 감사해라오.”

설이는 목사님과 나란히 거실에 앉았어요.

“너나 나나 좀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아예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고 이렇게 서울에 와서 사니까 말야. 난 와룡리에서 살 때, 늘 죽음이 아주 가까이 내 곁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 했단다. ‘너 같은 인생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달콤한 목소리로 죽음이 내게 속삭이곤 했었지.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고, ‘용기를 내라’고, ‘화끈하게 용기를 내라’고 말이야. 하지만 난 와룡리를 떠났고, 그 추운 밤 우연히 발걸음이 머문 곳이 바로 이곳 교회 앞이었단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180도 달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단다. 이 교회에서 일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내 인생은 죽음이 아닌 생명의 속삭임을 들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단다. 설아 너도 나처럼 될 거야. 아니 넌 나보다 더 멋진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가 서울로 간다고 하니께라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드랑게요. 아부지는 말할 것도 업고라, 할매도 어매도 서울 가서 공장에 다니믄 돈 많이 벌 수 있으니께 달 거르지 말고 꼭 집으로 돈을 보내라고 했다니께라오. 지는 올 때, 그 말 듣고는 인자 다시는 와룡리 안 들어간다 다짐을 했어라오.”

“그래도 넌 꼭 다시 와룡리에 가게 될 거야. 이제 조금만 더 크면 너도 그걸 알 게 될 거야. 하나님께서 너에게 큰 꿈을 갖고 계신단다.”

“그래도 소용없어라오!”

설이는 와룡리에서 떠나올 때를 생각하면서 이를 앙다물었어요. 잠자리에 들려고 자기 방으로 들어와 누우니까 왠지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어요. 그런데, 그놈의 핏줄이 무엇인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가물가물 아른거리면서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결국 동생 덕이와 옥이의 얼굴이 떠오르게 되면서 설이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어요.

“거 참 이상도 허네 잉?”

설이는 눈물을 훔치고 잠을 청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설이의 서울 유학은 참으로 행복하고 살맛 나는 것이었어요. 가족들과 헤어진 슬픔도 잠시였어요. 붙임성이 좋고 활달한 설이의 성격 탓인지 친구들도 쉽게 사귀었고, 어느 장소, 어느 모임에 가든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어요. 가끔은 웃기는 이야기도 곧잘 해서 반이나 모임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꾸어 놓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 설이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 설이의 공부는 와룡리에서보다 조금 뒤떨어졌어요. 하지만 곧 따라잡을 수 있었어요.

“야, 넌 발음이 그게 뭐니? 제발 손 좀 들지 마라. 네 발음 들어주는 건 너무 고역이야!”

설이가 영어시간에 읽기를 해보겠다고 손을 들면 까다로운 노처녀 영어선생님이 무안하게 핀잔을 주는 것 말고는 수업시간에 척척 잘해나갔어요.

‘영어선생님이 그런다고 내가 뭐 기가 죽을지 아나 뭐?’

설이는 영어선생님의 매몰찬 따돌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을 들어 발표를 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발음도 좋아지고 영어실력도 향상되었지요.

“야 너 참 끈질기다. 발음은 엉터리지만 해석은 설이 당할 사람 없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영어 선생님이 아예 설이를 지목해서 선생님이 영어문장을 한 번 읽으면 설이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나가기도 했어요.

무엇보다도 샘물교회에서의 생활은 설이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어요. 찬양을 할 때나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이 뜨거워져서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어요.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아픔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걸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설이는 늘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면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면 그토록 떠나오고 싶었던 와룡리가 참 정답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너무나 그리워졌어요.

“아부지, 제가 잘못했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설이의 입술에서는 이런 고백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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