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 폴폴 날리는 철쭉 산행

21좌~24좌 지리산 바래봉, 연인산, 황매산, 팔봉산(홍천)

by 서순오

제21좌 리운 억 여행 : 지리산 바래봉(2020. 4. 25. 토)


요 며칠째 날씨가 겨울 날씨 같아서 지리산 바래봉에는 상고대가 피고 눈도 내렸다고 한다. 엊그제 바래봉 산행한 분들의 얘기다. 철쭉은 거의 아래쪽에만 조금 피고 산 위에는 아예 필 생각도 안 한단다.

그래도 나는 바래봉 철쭉 산행 신청을 한다. 날씨가 좋고 온도가 높아 조금씩 봉오리가 벌어지려고 하는 철쭉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많은 추억이 서린 운봉 산양 목장, 지금은 없어지고 축산연구소가 되었지만 바래봉에 올라 운봉 시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지리산에 두 번이나 내려갔다가 세 달, 한 달 살고 다시 돌아왔는데, 바래봉에 오르다 보면 내가 살던 마을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지리산, 어머니의 품속 같은 지리산, 그중에서도 바래봉, 아련한 추억이 있어서 더 고운 산행이 되겠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 산행은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시작하여 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용산리 주차장 코스이다. 총 12km로 오전 10시 50분에 산행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6시간 산행이다.

길은 좋은데 길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다. 바람막이 벗고 티셔츠 하나만 입고 걷는 데도 춥지는 않다. 느릿느릿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다.

오늘 산행은 철쭉 산행이 아니라 바람 산행이라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예상대로 이번 주간에 날씨가 추워 산 위의 철쭉은 거의 피지 않았다. 이제 겨우 꽃망울만 조금씩 맺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5월 첫째 주 정도나 되어야 철쭉이 제대로 필 것 같다. 아쉽지만 바래봉 철쭉 군락지를 걸어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산행이다.

세동치를 지나니까 어느 순간에 바래봉이 보이는데 아득히 멀다. 산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지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가 다 되어간다. 오전 9시 30분에 다매산에서 준 김밥을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는 고프지 않다. 그렇지만 헬기장처럼 생긴 넓은 공간이 나타나자 쉬어가기로 한다. 초록 잔디가 깔려있다. 거기서 젊은 커플이 둘이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어서 끼지 않고 나는 한쪽에 조용히 앉아서 간식을 먹는다. 조금 있으니까 다른 방향에서 올라와서 바래봉까지 갔다 온 이들이 대여섯 분 와서 쉬었다 간다.

"바래봉 멀었어요?"

"한참을 더 가야 해요."

나는 간식을 먹고 급히 일어난다. 부운치는 금방 도착했는데, 거기서도 3km를 더 가야 바래봉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구불구불 능선이 보이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넓은 철쭉 군락지가 이어진다. 이걸 보려고 여길 왔는데 아직 철쭉이 피어나려면 멀었다. 양지쪽에만 막 망울을 맺으려고 준비 중이다. 환상의 진분홍 철쭉꽃들을 보면서 걷는다면 얼마나 신이 났을까 싶다.

바래봉 철쭉 군락지는 남원 운봉 산양목장의 양들을 방목하는데 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은 안 먹고 다른 풀과 꽃들은 다 먹어버려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란다. 지금은 목장이 없어졌지만 양들의 기여가 큰 셈이다.

철쭉 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했으면 꽃 속에 파묻혀 나도 철쭉인 양 폼을 잡고 있을 텐데 이놈의 날씨 변덕이 문제이다. 예년 같으면 4월 중순이 철쭉 만개 시기인데 말이다.

산 위에서 막 망울을 맺고 있는 철쭉꽃 봉오리들만 눈여겨본다. 어떤 꽃은 일찍 피었다가 날씨가 추워 그냥 얼어서 마른 것도 있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안 좋다. 사람들이 아무리 재촉을 해도 꽃들은 날씨를 잘 알아보고 피어날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바래봉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데도 정작 바래봉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이정표를 보니 거의 3km를 더 가야 바래봉이다. 길은 임도와 구불구불 좋은 길인데 서서히 오름길이라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철쭉이 만개했으면 꽃 보느라고 힘든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을 텐데 아쉽고 또 아쉽다.

어느 부부는 철쭉 산행이라 해서 왔는데 철쭉이 안 피었다고 잘못 왔다고 그런다.

"뭐, 눈꽃 산행은 안 그런가요? 겨울에 눈이 안 오면 눈꽃 산행이라도 눈을 못 보는 거랑 마찬가지죠!"

내가 한 마디 한다. 나도 아쉬우면서도 말은 그렇게 나온다. 5월에 다시 와야 하나 어쩌나? 아니다. 철쭉 피는 다른 산을 가면 된다.

지리산 바래봉에서 블야 100 명산 21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정상에 오르니 어찌나 바람이 센지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그래도 즐겁게 여러 컷으로 인증숏을 찍고 동영상도 담고 주변 조망 두루 하고 내려온다.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던 젊은 커플이 정상에 머물고 있어서 함께 내려온다. 하산할 때는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온다.

바래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나무데크가 멋지다. 정상에서 용산리까지는 거의 5km 정도 된다. 그런데 임도길로 쭈욱 내려오니 금방일 거 같다. 군데군데 바래봉 쉼터를 만들어놓아서 가족단위로 산행 온 이들이 쉬어가며 간식을 먹기에 좋겠다.

바래봉이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산이라 그런지 하산하다 보니까 생태계 교란식물로 애기수영과 돼지풀이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 제거에 동참해달라고~.

그런데 모든 식물은 다 살아갈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인간에게 유불리 한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렇지만 또 잡초는 어떠한가?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을 잘 키우려면 당연히 제거해야 하는 존재이다. 뽑아서 말려버리거나 농약을 쳐서라도 없애야만 한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가? 선인과 악인은? 필요 없다고, 해를 끼친다고, 다 없애버리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항상 선악이 공존하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철쭉은 독성이 있어도 예쁘니까 잘 관리해서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용산리가 다 와가니까 철쭉꽃이 우릴 반긴다. 여기도 철쭉 저기도 철쭉, 활짝 핀 것, 반쯤 핀 것, 아직 망울만 맺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바래봉 철쭉 산행이라 불러도 아쉽지 않을 철쭉 천지다.

눈부신 하얀 싸리꽃도 만난다. 철쭉과 싸리꽃의 어우러짐도 만난다. 나는 어째 철쭉보다 싸리꽃이 더 이쁘다.

바래봉 아래쪽 철쭉 군락지를 보면서 내려오다가 추억이 서린 운봉산양목장(지금은 축산시험연구소)을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조망하며 사진에 담는다. 여고시절 추억여행의 장소이다.

지리산 허브밸리와 바래봉 눈꽃 축제는 지리산에 살 때 혼자서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허브밸리에 꾸며진 조각상들과 이도령과 성춘향을 비롯한 다양한 포토존들이 볼만했다. 바래봉 눈꽃 축제에서는 눈썰매를 타보는데 어린 시절처럼 재미있지는 않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썰매장으로 떨어져 진행요원이 주워다 주었다.

지금은 ! 지리산 허브밸리를 오른쪽으로 두고 내려오는 길에 벚꽃, 철쭉, 싸리꽃이 지천에 피어있다. 꽃구경 한 번 제대로 한다.

다매산 산악회원 중에 남원에 사는 동생분이 있어서 막걸리와 치킨을 쏘셨단다. 대장님이 나에게도 한 잔 하라고 권하시는데, 나는 술을 안 먹어 육포만 한 개 받아서 먹는다. 오늘도 안전한 즐거운 산행을 감사드린다.


제22좌 운무 속 연달래 : 가평 연인산(2020.5. 2. 토)


연계 산행은 2~3개의 산 정상을 함께 오르는 산행이다. 나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연인산+명지산 산행을 신청한다. 그런데 먼저 갔다 온 이들의 글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나는 하나의 산만 타야 할 것 같다. 명지산이 험하다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산이라고 하는데, 나는 비교적 걸음이 느린 편이라 연인산만 타고 명지산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연계하면 총 18km나 되는 산을 아직은 무리다 싶어서다.

오전 7시 사당을 출발한 좋은 산 버스는 9시에 가평 백둔리 주차장에 도착한다. 연인산 초입까지는 20여분 도로길인데 갖가지 꽃들이 만발해서 걷는 맛이 있다. 철쭉은 불타오르고, 청사초롱은 수줍고, 사과꽃은 순결하며, 아카시아꽃은 향기롭다. 이름을 모르는 꽃들도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걷는다.

연인산 도립공원 돌비에서 인증숏 찍고, 연인산 소망능선을 오르기 시작한다. 조금 오르니까 연분홍 왕철쭉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아마도 연인산 철쭉능선이 아닐까 싶다. 요렇게 연한 색깔의 철쭉은 또 처음 본다. 색이 연해서 더 가녀리고 이쁘다.

날씨는 정말 습하다. 오르기 시작해서부터 땀이 줄줄 흐른다. 꼭 한여름 산행 같다. 운무도 가득하다. 신비롭다.

오늘은 5명이 함께 한다. 젊은이들은 울 딸이랑 동갑인데, 초등 친구들 3명이 함께 왔단다. 다른 한 분은 나보다 조금 젊은데 벌써 블야 100대 명산 84번째 찍는 분이란다. 모두 함께한 기념으로 인증숏 한껏 찍는다.

연인산에서 야생화를 많이 만난다. 짝꿍이 얼레지꽃 이름을 알려줘서 눈여겨보는데 얼레지 산행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보라꽃이 많이 피었다. 노랑꽃도 많이 피었는데 그것은 이름을 모른다. 눈을 맞추다 보면 언젠가는 꽃 이름을 알게 되는 날도 오리라.

연인산에서 블야 100 명산 22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정상에 다가오니까 이슬비도 조금씩 내린다. 뿌연 운무 속에 비가 내리는 것인지 안개가 내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상 찍고 조금 내려와 점심 도시락은 먹는다. 젊은이들은 추운데 굳이 정상에서 점심은 먹겠다고 해서 둘이서 내려온다.

우리는 좋은산에서 안내하는 코스인 소망능선으로 올라가서 하산할 때는 전혀 다른 코스인 장수능선으로 내려온다. 새로운 길을 걷는 맛이 있다.

장수능선에도 철쭉이 제법 피어있다. 아직 무리 지어 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먼저 꽃 피운 예쁜이들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걷는다. 하실길에 어디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중간에 길을 조금 잘못 든 것 같았지만 도리어 더 좋은 산행이 된 셈이다. 예정에 없던 장수능선을 탔기 때문이다.

꽃들을 보며 연인산을 거의 다 내려오니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시간은 여유가 있어서 계곡에서 놀다가기로 한다. 발도 담그고 세수도 하고~. 물이 너무나 차갑다. 30여 분 노닐 노닐 하다 보니까 그새 땀이 다 식었다.

오늘 연인산 산행은 등산 소망능선 3.4km, 하산 장수능선 4.8km, 주차장까지 왕복 2km, 총 10.2km를 6시간 만에 걸었다.

우리는 연인산만 탔지만 일부는 연인산+ 명지산 연계 산행을 해서 우리 시간이 조금 남는다. 익근리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명지산 생태전시관을 보려고 했더니 코로나19 비상 시라 문을 안 열었다. 아쉽지만 전경과 주변 풍광만 담고 바로 아래쪽 계곡으로 가서 발 담그고 논다. 저녁 대용으로 가져온 찐빵과 사과 한 개를 먹고 연인산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1시간이 금방 간다. 오후 5시 30분 귀갓길에 오른다.


제23좌 운무 폴폴 날리는 철쭉 산행 : 산청 황매산(2020. 5. 9. 토)


아마도 오늘은 황매산 철쭉 우중산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국적으로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고 지난밤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합천 황매산은 단양 소백산, 지리산 바래봉과 함께 3대 철쭉 산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2주 전에 바래봉에 갔더니 산 위 철쭉 군락지에는 꽃이 거의 피지 않았고 아래에만 피었다. 다시 갈 수도 없고, 소백산은 5월 말에나 갈 예정이어서, 중간에 황매산을 신청해보았다. 올해 3군데를 다 가서도 만개한 철쭉을 만나지 못하면 다음 기회로 미루면 된다.

봄이라서 날씨가 추운 때가 아니니까 우중산행도 나름 운치 있고 괜찮다. 운무 속에 보는 철쭉도 신비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펼치듯이 한 발짝 한 발짝 열리는 우중산행은 어쩌면 날씨 좋은 날 산행보다도 더욱 매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합천 장박리에 도착하니 비는 그다지 많이 내리지 않고 이슬비가 살짝 내리는 정도이다. 그래도 배낭 덮개 씌우고 스피치와 우비 입고 출발한다. 나는 모산재와 순결 바위 암릉을 타는 A코스가 아니라 B코스로 진행한다.

초입부터 비에 촉촉이 젖은 야생화가 예뻐서 담는다. 처음으로 만난 철쭉 담고 부지런히 오른다. 떡갈재까지는 계속 오름길이다.

떡갈재부터는 능선길이다. 철쭉들이 만개해서 여기저기 이슬비 속에서 우릴 맞이한다. 꽃을 보며 가노라니 힘든 줄도 모른다. 능선길에서 단체로 온 젊은이들이 쉬어가길래 나도 잠시 쉬어간다.

정상이 가까워지니까 또 오름길이다. 길은 미끄럽고 바위길도 있다. 비는 조금씩 내리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낸다.

황매산 산행은 비교적 괜찮은 코스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그 어느 때 와도 좋겠다. 혹시 모산재와 순결 바위 등 암릉구간을 타고 싶다면 좋은 날에 와야 할 것 같긴 하다. 오늘은 비가 오기에 안전산행이 우선이라 거기는 안 가고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지만 말이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젊은이 그룹은 텐트를 치고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는다.

돌탑 지나 벼랑처럼 된 바위에서 포즈를 취해보고 정상에 오른다. 황매산 정상석은 위험한 바위들 위에 서 있다. 바람은 세고 이슬비도 오는데 땀이 나서 우비 속 옷이 젖어 춥다.

황매산 정상에서 블야 100 명산 23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바람이 세게 불고 이슬비도 내리니까 추워서 얼른 인증숏 찍고 내려온다. 좀 따뜻한 곳을 찾아서

싸온 간식을 먹는다. 우중산행이라 도시락을 안 싸오고 후랑크 소시지와 찐빵과 참외를 싸왔다. 다매산에서 아침에 준 김밥이 있어서 함께 꺼내서 먹는다. 바로 옆에는 리딩 대장님 부부가 점심을 들고 있어서 여분으로 싸온 참외를 드린다. 따뜻한 물도 한 컵 얻어먹는다.

그리고 셋이서 하산길을 함께 한다. 황매산 철쭉평원이 넓게 이어진다. 철쭉이 정말 많이 피었다.

날씨가 좋았으면 황매산 철쭉평원이 환상이었을 듯하다. 그러나 또한 우중산행이어서 좋은 점도 있다. 운무 속에 뿌옇게 보이는 철쭉들의 자태가 신비롭고 우리들이 마치 신선이라 된 기분이다.

대장님 하시는 말씀이 '속세를 벗어난 산행'이라고. 비가 와서 차량은 딱 두 대, 팀도 딱 두 팀, 그래서 산행에 여유가 있다. 아마도 내일은 엄청난 산꾼들이 올 거라고 한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는 오늘 오길 참 잘했다 싶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까 하늘 계단이 나온다. 그 아래로도 철쭉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넓적한 공연장 같은 공간이 나오길래 뮈냐고물어봤더니 철쭉 제단이란다. 아마도 이곳에서 철쭉제 행사를 하지 싶다.

리딩 대장님 부부랑 함께 내려오니 대장님이 정말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철쭉꽃 천지다.

비가 와서 안경에 서리가 껴서 안경을 벗고 산행을 한다. 그래도 눈은 제법 좋은 편이라 괜찮다. 다만 난시가 조금 있어서 이쁜 철쭉꽃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방울방울 빗방울을 달고 있는 청초한 모습 그 정도만 본다. 눈이 흐리니 무리 져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더 아름답다.

철쭉꽃밭 한가운데 우뚝 선 나무가 있다. 운무 속에 쭉쭉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모습이 의연해 보인다. 키 작은 철쭉들 옆에 있어서 그런지 키가 더 커 보인다.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해도 땅은 촉촉하게 젖는다. 스틱이 있어서 미끄러운 길도 안전하게 오르고 내리고 한다.

모산재 쪽으로 가다가 덕만주차장 이정표를 보고 내려온다. 그 길은 원시 느낌이 나는 길이다. 나무들이 더 자연스럽다. 옆으로는 계곡물이 길을 따라 쭈욱 흐르고 있어서 꼭 폭포수 옆을 걷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웅장한 음악소리 같기도 하다.

군데군데 '등산로'라는 안내표시가 있어서 길 찾기가 좋다. 이 길은 리딩 대장님 부부와 나만 걷는다. 혼자 걸으면 조금 무서울 것도 같은 호젓한 길이다.

내려올 때는 단연 내가 앞장서서 걷는다. 뒤에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계곡에서 씻을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하산 완료해서 씻기로 한다. 우중산행은 일단 빨리 내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비가 더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옷 속의 티셔츠가 땀으로 다 젖어서 여벌 옷으로 갈아입고 싶은 마음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산 완료하니 시간은 30여 분 여유가 있다. 씻고 옷 갈아입고 버스에 타니 우중산행 잘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제24좌 8개의 암릉 봉우리와 그윽한 홍천강 : 홍천 팔봉산(2020. 5. 16. 토)


좋은 산에서 홍천 팔봉산 산행을 한다. 신나산 짝꿍 좋은하루님이 '함께 산행하고 싶다'라고 연락이 와서 신청했다가 황매산 철쭉 산행을 하고 싶은지 취소를 해서 오늘도 혼자이다. 그런데 좌석표를 보니 지난번에 칠갑산 짝꿍이 내 옆자리 신청을 했다. 젊은 친구인데 걸음이 워낙 빠르다.

그렇지만 오늘은 4km, 4시간 코스이니 시간에 여유가 있다. 봉우리를 8개나 넘어야 해서 팔봉산이란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행인 모양이다. 대체로 산행하면 초반에 계속 오름길이다가 산 정상 지나면 내리막길인데 여긴 아닌 것이다. 그래도 짧은 코스이니만큼 운동은 제대로 되겠다.

참 도이터 배낭을 하나 새로 샀다. 좀 작은 게 필요해서 24L로 샀는데, 28L는 되는 거 같이 여유롭다. 가볍고 색상 이쁘고 옆에서 지퍼로 직접 열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많다.

비는 안 올 거 같고 습도는 조금 높을 수 있겠다. 땀 빼고 갈아입을 여벌 옷을 준비하고 나선다.

오전 9시 50분 홍천강 주차장에 도착해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후 12시 50분에 다시 원점회귀로 산행을 마무리하란다. 총 4km, 4시간 코스이다.

암릉구간이 많은 산행이라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운무만 가득 끼었다.

산행 초반 날씨 같아서는 아무래 홍천강 조망이 어렵겠다 싶었다. 그런데 차츰 날씨가 갠다. 길도 그다지 미끄럽지 않다.

짝꿍은 1봉~3봉까지 지나서 바로 하산한다고 전화가 왔고, 나는 1봉~8봉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늘 혼자 산행도 잘하니까, 또 다른 이들도 만나가며 재미나게 산행한다.

조금 오르니까 제1봉이다. 아직까지는 운무가 가득하니 주변 조망이 없다. 암릉구간이 나오다가 편한 숲길이 나오다가 산 타는 재미가 있다.

2봉까지 오르니 운무가 더욱 짙다. 뿌연 운무 속에 제3봉이 수묵화처럼 실루엣만 보여준다. 오르다가 내리다가 또 오르다가 내리다가 변화가 있어서 좋은 산행이다.

제3봉은 참 멋지다. 조망도 좋다. 여기에 오니까 주변 경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팔봉산 다른 봉우리들도 홍천강도 희미하게 보인다. 해산 굴이 있던데 보이는 데까지만 가보고 올라가 보진 못한다. 제4봉을 지나서 5, 6봉을 향해 간다.

제6봉에서는 홍천강 멋진 모습이 시원하게 보인다. 봉우리들도 나무들도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더 신비롭다. 가까이 볼 때와 멀리서 볼 때의 모습이 다르지만 나름대로 멋지다.

팔봉산은 풍경도 멋지지만 나무들도 멋지다. 암릉구간도 그다지 위험하진 않다. 비가 오면 암릉구간은 미끄러워 산행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날씨가 좋은 날은 괜찮다. 덕룡산이 암릉이 많아 힘들었는데 팔봉산도 거기 못지않다. 그래도 몇 번 타보았다고 이제는 암릉구간이 재미가 있다.

제8봉 구간이 위험하다는 안내표시가 있다. 8봉 오르는 길도 암릉구간 급경사이고, 내려가는 길도 급경사 철난간을 잡고 내려가야 한다. 그렇지만 스릴이 있다. 날씨가 맑아져서 홍천강 조망도 탁 트여 좋다.

팔봉산 8개 봉우리 중에서 제3봉과 제6봉과 제8봉이 전망이 좋다. 그중에서도 홍천강 조망은 단연 8봉이 으뜸이다. 8봉에서 간식을 먹고 쉬어간다.

급경사 암릉과 철계단을 내려와서는 홍천강변을 따라 걸으며 야생화를 담는다. 홍천강에는 낚시하는 이들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텐트 쳐놓고 물속에서 고기 잡는 이들도 있다. 한가로워 보인다.

홍천강변 야생화들이 참 이쁘다. 요즘 꽃 이름 밴드에 가입해서 열심히 이름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 데도 금방 이름이 잘 안 떠오른다. 오늘도 사진을 올려서 이름을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꽃 이름을 그리 잘 아는 분들이 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집 도착하니 오후 3시다. 산행 후 이렇게 빨리 귀가하기는 처음이다. 참 오늘은 점심 도시락도 집에 남겨와서 먹는다. 이제 씻고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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