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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l 04. 2024

12. <온정신과> 심부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해가 바뀌고 순진은 2학년이 되었다. 배려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느새 소문이 금방 순진이네 반으로 퍼지고 강민에게도 알려지고 학교 안이 수런수런 했다.

"교장 선생님이랑 진순진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래."

" 오래되었다던데, 써 1년이 되어간대."

"글쎄 순진 아빠 돌아가시고 교장선생님이 아빠 노릇을 해주는 척하면서 순진에게 접근을 했다나 봐."

"그래도 그렇지. 딸 뻘 아냐."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지."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 쉬쉬하면서 소문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글쎄 순진이네 집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대."

"누구긴 누구야? 교장 선생님이지."

 "그럼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대." 


그 소문이 교장 선생님에게도 들어갔다.
“뭐? 아빠가 단짝친구라서 좀 살갑게 대해준 것뿐인데, 이거 너무 하잖아?”
그렇지만 차의지 교장선생님은 아는 체를 하기가 좀 머쓱해서 가만히 있었다.
온종일 이럴까 저럴까 궁리만 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매스컴에라도 타는 날이면 교장 인생이 쑥대밭이 될 게 뻔했다.

"어떻게 갈고닦아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순진이 짠하기도 했다.

"저희 엄마가 아프다 하더구먼. 똑같은 병 아냐? 심중으로 어렵고, 학부모회 회장인 박정우 원장에게 전화해서 부탁을 해봐야겠어."


학교 앞 네거리 건너 주택가로 접어드는 골목 입구에 <온정신과> 전문병원을 연 박정우 원장은 차의지 교장 선생님과는 고향 친구였다. 어려서는 박정우 원장이 차의지 장 선생님보다 더 공부를 잘하고 똑똑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대학은 서울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둘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한 사람은 교편을 잡았고, 또 한 사람은 <온정신과> 병원을 차렸던 것이다.


"그래. 일단 원인을 알고, 자초지종을 알아야 처리를 할 수 있으니까. 첫째도 침착! 둘째도 침착!"

차의지 교장 선생님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다가 벽시계를 보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교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업 끝나는 차임벨이 울렸다.


그러다가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자, 차의지 교장 선생님이 순진을 교장실로 불렀다.
“순진이, 너, 교장 선생님이 아는 병원이 하나 있는데, <온정신과>라고, 집에 가는 길에 거기 심부름 좀 해줄래? 저기 학교 앞 사거리 지나고 가다 보면 너희 집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대로변에 3층 건물인데.”
순진은 교장 선생님이 내미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이거, 그냥 전해 주기만 하면 돼."
순진이 막 교장실 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선생님이 뒤에 대고 말했다.
”참, 그 병원 형의 네 엄마가 하시는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안부도 전해주고."

"네."
순진은 뒤로 돌아서서 교장 선생님께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온정신과>는 작은 건물이지만 실내장식이 잘 되어 있고 깨끗했다. 분위기가 파스텔 톤의 초록과 분홍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안정감이 있었고 악간 동화 속 같은 느낌도 들었다. 투명한 하얀색 종 모양의 크리스털 조명등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꽃을 피우는 식물 화분이 창가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똑똑!
“들어와요.”
순진이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니까 형의가 먼저 와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전화하셨더구나. 바빠서 널 대신 보낸다고. 서류 여기 두고 형의랑 3층 집에 가서 좀 놀고 있어라. 내가 지금 예약환자 한 분과 상담하던 중이어서 한 10분쯤 기다리면 올라가서 맛있는 것 좀 내줄게.”
“네”
순진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형의와 함께 동시에 대답을 했다.
“우리 살림집에서 올라가서 기다리자.”
“아냐. 괜찮아.”
순진은 형의와 단 둘이 있는 것보다는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왜? 형의랑 같이 위에 올라가서 얘기 나누고 있으라니까. 바쁜 거야?

"아뇨."

순진은 원장선생님이 한 번 더 얘기를 하자 할 수 없이 형의를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어."
박정우 원장님의 소리가 계단을 오르고 있는 순진과 형의에게 들려왔다.


형의는 무언가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봄꽃 소식이며 나들이 소식이 해지고 있었다. 연인들 까리 가족끼리 이른 꽃구경을 나선 사랑들은 매화꽃 앞에서 싱글벙글하였다.


"모두 다 즐거워 보이네. 근데 난 재미있는 게 없네."

순진은 텔레비전을 보연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을 했다.


"우리 가족도 이번 주말에 홍매화 구경하러 길거야."

형의는순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좋겠네. 우리 가족도 아빠 살아계셨을 때는 매주 산에  갔는데, 지금은 모든 게 다 시들하네. 산에 가먼 봄꽃은 원 없이 보는데 말이야."

순진은 속눈썹이 긴 청매화꽃이 화면 가득 잡히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먼저 주스 한잔 마실래?"

순진은 형의가 냉장고 쪽으로 가려는 것을 말린다.

"아니 괜찮아."


"참 순진이 너. 학교에 소문도 퍼진 거 아니?"

"무슨 소문?"

순진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그때 형의 엄마 박정우 원장님이 들어오셨다.

"많이 기다렸지? 내가 피자를 해서 냉동실에 얼려놓았는데 금방 오븐이ㅣ구워줄게. 조금만 기다려."

박정우원장님은 가운 위에 앞치마를 걸쳐 입고 냉동실에서 피자를 꺼내 오븐에 넣었다.

"과일 주스는 윌로 할래? 키위와 망고 딸기바나나가 가능한데. 생과일주스야. 이것도 과일을 깎아서 얼려 았는데 믹서기에 갈기만 하면 돼. 한 15분 정도 기다리면 돼."

"는 망고요."

"저는 키위요."

순진과 형의가 거의 동시에 말을 했다.

"알았어."

순진은 박정우 원장님의 노련한 솜씨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정신과 의사가 직업이어서 꽤 바쁠 것 같은 데도 집에서 음식과 간식을 직접 해 먹는 모습이 대단히다 여겨졌다. 의 집에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이 있는 것 같았다.


순진이 집에서 엄마가 음식을 잘해서 거의 다 집밥을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엄  배달음식도 자주 시켰다. 순진이나 순진 엄마는 입이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니어서 무어든 맛있게 잘 먹었다.


"자. 이거 따끈할 때 먹어봐."

치즈가 녹아 토핑으로 스며든 피자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즈 한 조각을 보조 접이에 덜어서 나이프로 잘랐다. 형의는 그새 피자 한쪽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마, 오늘따라 피자가 더 맛있는데요."

"그래. 오븐 도수가 잘 맞았나 보다."

박정우 원장님은 막 갈은 망고와 키위 주스를 들고 와서 탁자에 앉았다.


"순진이 너 우리 집에 온 김에 뭐 하나 검사해 줄까? 간단하게 정신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거야. 우리 형의도 한번 해보려는데 절대 안 한다고 해서 너 오면 같이 해보자 했더니 그런다고 하네. 한 30여분 걸려. 시간 괜찮지?"

순진과 형의는 먹느라 정신이 없어 그저 "네네" 그런다. 맛있는 것만 옆에 있으면 무얼 못하리 자세였다.


박정우 원장님은 부엌 테이블 위에 얹어놓은 서류봉투를 들고 오셨다.

"자, 이거야. 깊이 생각하지 말고 바로바로 체크해."

"아, 이리로 가져오지 마세요. 저희가 탁자에 앉아서 하는 게 편해요."

"손 좀 닦고요."

순진과 형의는 잽싸게 앉아서 검사지를 체크해 나갔다. 알쏭달쏭한 것도 있었지만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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