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계속해야 할까?

by 서순오

지리산 바래봉 아래쪽 철쭉 군락지를 보면서 내려오다가 추억이 서린 운봉산양목장(지금은 축산시험연구소)을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조망하며 사진에 담는다.


TV에서 본 눈부시게 하얀 양을 보고 싶어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 운봉산양목장! 가까이에서 보니 양들은 그렇게 눈이 부시게 희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운봉산양목장에서 황산대첩비지까지 둘이서 이야기 나누며 걸어서 갔다.


음! 세월을 거슬러 여고시절로 돌아가 본다. 아련하다. 대학입시를 치른 후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의 고민은 그것이었다.


왜 그렇게 공부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공부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남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공부를 나는 계속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공부를 많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집안 분위기였고 또 가난했다. 동생들이 넷이나 있어서 큰딸인 내가 먼저 공부를 포기해야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 여행, 운봉산양목장의 추억이 톡톡히 한몫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랬다.


그때 산양목장에서 한 소년을 만났는데 그도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었단다.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 건데 꼭 공부를 해야 할까요?"

“그 무엇을 하고 살던 공부를 계속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대답이기도 했다.


소년은 대학에 들어갔고 좋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오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그때 내가 말해준 것 때문이었다며 고맙다고 한다.


그 소년을 36년 후에 다시 만났다.


"노후에는 귀농을 해볼까?"

2016년 5월 내가 궁리 끝에 지리산 지역에 일터를 구해 내려갔을 때쯤이다. 지금은 별로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지만 소년을 다시 만난 것은 씨이월드에서다. 내 글에 댓글이 달렸길래 무심코 지나쳤다.


그런데 정작 지리산에 내려가게 되자, 궁금해서 적어놓은 전화번호로 톡을 해보니 바로 연락이 된다. 정말 오랜만에 소년을 만나 운조루 고택과 평사리 악양 들판의 박경리 문학관을 돌아보고 맛있는 것도 대접받았다.


나는 10대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 듯했다. 문학과 그림에 대한 열정도 불타올랐다. 한동안 접어 두었던 시도 다시 썼고, 그림도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리산은 그리운 추억 여행의 장소이다. 막혀있던 공부의 길이 그 한 번의 여행으로 내 가슴속에 열리게 되었고, 나는 기약 없는 재수의 길을 걸었다. 졸업하자마자 직장에 다녀야 해서 학원에도 못 다녔지만, 나는 대학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 제1지망으로 국문과를 선택했다가 제2지망에 걸려 경영학과를 다니게 되었지만, 그 아쉬움으로 대학원에서는 문예창작을 공부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논술과 글쓰기 지도를 했고, 시, 수필, 소설, 동화, 가리지 않고 배우고 익혔다. 그러나 또 나는 잘 가고 있는 길을 벗어나 만학으로 전혀 새로운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하나의 길을 가야 성공을 한다는데, 나는 가고 싶은 길을 여러 번 바꿔가며 걸어왔다. 그래서 한 방면에서 우뚝 서지는 못했을 지라도 그만큼 더 많이 행복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거의 다 해보았으니까요. 인생 별 거 있나요? 그러면 행복한 거 아닌가요?"

나는 여고시절 지리산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특별한 선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생애에도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 계속 더 해나갈 것이다.


<추억 >(서순오, 10호, 아크릴화, 여고시절 남원 운봉 산양목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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