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을 그려서 처음 선물한 것은 친구 IB의 초상화이다. 4호짜리에 그린 그림인데, 나를 인정해 준 유일한 친구에게 답례로 그린 것이라 선물이라고 보기에는 좀 뭐 하다. 아크릴 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내 자화상을 제일 먼저 그렸고, 그다음으로 그린 게 그이의 초상화이다.
지도하시는 교수님이 남편도 자녀도 아니고 외간 남자를 그린다고 나한테 한 마디 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여고 시절에 여행 중 운봉 산양목장에서 만났고, 황산대접비지까지 같이 걸었던 동생 뻘 되는 이다. 한 동안 편지를 주고받다가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그 친구는 군에 입대했다. 나보다 두 살 아래라 당시 나를 '누나'라고 불렀고, 물론 편지에도 그런 호칭을 썼다.
나는 대학에 들어간 후 첫 미팅에서 울 남편을 만났고, 그이와는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리고 몇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내 싸이월드에 그이가 댓글을 달았다.지금부터 한 10여 년 전이니까 그때는 싸이월드가 꽤 활성화되어 있었다.나는 마침 지리산에 있는 여성센터에 일터를 얻어 근무조건이 꽤 괜찮은 곳으로 가 있었다. 노후에는 귀촌도 좋겠다 싶어서 일단 시험 삼아 3개월만 살아보자고 했다. 이곳 집을 그대로 두고 갔기에 잘 맞지 않으면 다시 돌아와도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울 남편이 시골생활을 극구 반대해서 결국은 3개월 후에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 친구는 지리산에서 가까운 곳에 살아서 나를 몇 번 초대해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과 오미마을 운조루 고택 등을 여행시켜 주고, 맛있는 것도 여러 번 사 주었다. 그이가 하는 말이 고등학교 시절, 그때 나를 안 만났으면 시골무지렁이로 살았을 것이라고, 나를 만난 후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에도 갔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도 잘 자라 큰 아이는 카이스트를 나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작은 아이는 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그이가 내게 늘 잘해줘서 고마워서 무엇을 해줄까 싶었는데 그림이 좋을 것 같았다. 아직 실력이 부족했지만 열심히 그렸다.
나는 그림을 그려 주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나중에 작가로 유명해지면 그림 값이 꽤 나갈지도 몰라."
"그러게."
친구도 나를 따라 그저 가만히 웃기만 할 뿐이다.
여고 시절에 우리 집에도 한 번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다. '학교에 가면 천국, 집에 오면 지옥'이라는 말을 일기장에 자주 적었던 기억으로 보아,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싶었을지도 모른다.어서 빨리 집을 탈출하는 게 내 소원이었다.
나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그런데 대차지 못해서 고백을 하지 못했다고, 아니 그때는 수준이 너무 안 맞았다고, 아니 둘이 맺어졌으면 아마도 둘 다 대학도 못 가고 가난하게 살았을 거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렇지만 사랑에도 연애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다. 찐사랑을 해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나마 나는 친구를 아주 깊이 사랑해 주기로 한다. 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얼굴 하나하나 옷깃 하나하나에 숨결을 담는다.
30여 년이 지난 후에라도 나를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늘 기대해 주고 응원해 주어서 힘이 난다고, 항상 묵묵히 지켜봐 주어서 더 열심히 살게 된다고, 언제나 좋은 친구로 남아 있자고, 소리 없는 말로 속삭인다.
나는 초상화를 그려놓고 바라보면서 그이를 위해 시도 한 수 지어본다.나는 산행, 그이는 자전거 라이딩이 취미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늘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 속에 소년소녀 시절의 풋풋한 사랑을 담고 있으니 아마도 회춘하여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