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 코스모스

by 서순오

'신이 제일 처음 만든 꽃'이라서 '어딘지 조금은 어설프고 가녀리고 부족해 보인다'는 꽃 코스모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나는 코스모스가 핀 곳을 찾아다닌다. 친구랑 둘이서나 가끔은 혼자서도 간다.

구리 코스모스 축제, 수원 당수동 시민농장(※1) 코스모스 꽃밭, 백마강 코스모스 축제 등 최근 몇 년 내에 내가 가본 코스모스 꽃밭이다.


코스모스는 내게 추억이 담긴 꽃이기도 하다. 여중 1학년 초 막 입학을 했을 때, 울 엄마가 아버지와 싸운 뒤로 집을 나가 버렸다. 거의 1년 동안 엄마는 소식 두절이다가 늦가을쯤 발신인이 없는 편지만 달랑 한두 통 보내왔다.

"동생들 잘 돌보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라. 곧 다시 만나 같이 살자꾸나."


나는 어린 동생들(여동생 둘, 남동생 둘)과 함께 마루나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엄마 엄마 어서 와요. 어서 빨리 와요. 할머니가 손수 지은 밥상머리에 우리들 오 남매는 눈물밥을 삼킨 답니다."

이런 가사의 노래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노래였는지 내가 지어 부른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다가 급기야는 엉엉 울어서 베개를 홍건하게 적신 채 잠이 들곤 했다.


"에고, 불쌍한 것들!"

할머니가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부자리를 펴서 우리를 눕혀주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당시 나는 사춘기가 막 시작되었는데, 집에서 읍내까지 20여 리(악 8km 정도)를 매일 걸어서 통학을 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핀 곳이 많았는데 나는 코스모스 꽃을 따서 손가락으로 짓뭉개면서 그것이 꼭 나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코스모스 꽃밭에 들어가 앉아서 쓸쓸한 죽음을 동경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죽었다고 하면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 해 겨울 아버지는 편지에 찍힌 우표 소인을 보고 엄마를 찾아 나섰고, 엄마는 신림동 관악산 비구니승들이 살고 있는 절에서 보살로 밥을 해주면서 지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한다는 것과 아버지가 다시는 술과 노름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하에 우리는 엄마를 다시 만났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 전학을 했다.


갑작스럽게 헤어진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코스모스'라는 별명을 썼다. 친구들이 고향 길가의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편지에 동봉해주기도 했다.


코스모스 꽃길에 서면 슬프고 아픈 추억들이 떠오른다. 가녀린 코스모스가 꼭 나인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는 가을이면 언제나 나를 코스모스 꽃밭으로 데려다준다. 백마강 코스모스는 몇 년 전에 가본 곳이다. 그림으로 그리고 있노라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코스모스 꽃밭은 풍성하기만 하다. 강과 어우러진 코스모스 꽃밭은 그대로 나의 아련한 추억들을 한 폭의 명화로 바꾸어 놓는다.


※1. 수원당수동시민농장은 지금은 없어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백마강 코스모스>(서순오, 10호, 아크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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