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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하는 사람

영화 [싱글라이더]

by 서순오


'싱글라이더'는 '1인 탑승객',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꽤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여고시절 방학이면 어디로든 무작정 여행을 갔고, 거의 한 달간 고향 이모할머니댁에서 묵기도 했다. '라이더' 하니까 꼭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 이승을 떠나 또 다른 세상에서, 남자 한 사람, 그리고 여자 한 사람, 그것을 비유한 것이 '싱글라이더'이다.


증권회사에 다니던 강재훈 지점장(이병헌)이 부실채권으로 인해 회사가 망하자 호주로 유학 보낸 아내 수(공효진)와 아들 진우를 찾아 떠나는 내용인데 끝부분에 반전이 일어난다. 호주로 찾아간 남편이 아내와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옆에서 지켜보는 게 어째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게 이승을 넘어선 또 다른 세계이다. 강지점장은 회사가 망하자 자기 아파트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마지막에 잠깐 언급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호주 유학생 지나(안소희)도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에게 모두 사기당하고 이승을 넘어간 세계에서 강재훈을 만나는데(역시 자살) 호주에서 아내가 키우던 개 치치도 길을 잃었다가 죽어서 역시나 강재훈과 지나를 만난다. 어째 좀 많이 슬픈 영화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승을 떠난 세계는 천국과 지옥인데 전혀 다른 가치관을 다룬 영화이다.


아내 수(수진)는 호주에서 바이올린을 다시 연주하며 자신의 삶을 찾아 오케스트라 시립단원이 되려고 1차 오디션을 보아 합격하고 기술이민을 계획하는데, 아들이 아프자 옆집에 사는 남자 크리스의 도움도 받고 의지하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갑작스럽게 닥친 어려움 속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질책과 비난 속에서 '나도 나 자신을 견디고 있는 중'이라는 강재훈 지점장의 말.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영어공부 하라고 호주로 보내놓고 2년 동안 전혀 돌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던 남편 강재훈은 뒤늦게야 후회를 하는데, 그 후회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후회'가 되고 만다. 젊은이의 대표로 나오는 유학생 지나는 좋은 환율로 환전해 주겠다는 현지 한국 유학생에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모두를 사기당하는데 우연히 만난 아저씨 강재훈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부실채권을 소개해주고 관리하면서 그동안 아내와 아들을 유학 보내고 잘 먹고 잘 산 것에 대해)을 말해준다. '좋은 거래에는 거짓이 따른다'라고.


영화를 보고 나오니 기분이 많이 다운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자살'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좀 그렇다. 영화니까 그럴 수 있지만, 영화니까 또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아침에 읽은 도종환 시인의 「희망」이라는 시를 다시 읽으며 슬픈 마음을 다독여 본다. '희망'은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거늘, 모든 형편과 상황을 초월하여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매일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는 그대를

생에 오직 한 번만 만나도 다 만나는 그대를"

(도종환 「희망」에서)


《싱글라이더》 명대사

"나도 나 자신을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좋은 거래에는 거짓이 따르는 법이다."

"후회합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영화 [싱글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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