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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r 07. 2023

천연의 드라이플라워와 봄꽃 망울의 설렘

과천 청계산둘레길&성남누비길

수도산(※1)에서 청계산 허리둘레길을 걷는다. 인테리어 대장님, 서우님, 나, 모두 3명이다.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에서 오전 11시에 만난다. 밖으로 나와 윈터골 굴다리 지나간다. 청계산 등산 안내도 앞에서 기념샷 찍고 산을 오른다. 윈터골 초입부터 계곡물소리가 시원스럽다.


한참 오르니 하얗게 수국 마른 꽃이 예쁘다. 완전 천연 드라이플라워다. 아직 산에 초록이 올라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윈터골 입구에서 산행 시작해서 약 1시간 정도 오른 후 낮 12시에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인테리어 대장님이 청계산 오시면 늘 점심을 드신다는 아늑한 장소로 들어간다.


나는 아침에 집에서 만든 떡볶이와 사과를 가져왔고, 서우님은 어묵과 떡국떡과 뜨거운 물, 인테리어 대장님은 라면 1개를 가져오셨다.


타프를 치고 돗자리를 깔고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아 한 40여 분 정도 여유 있게 즐거운 식탁교제를 한다. 점심 식탁은 항상 푸짐하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배가 너무 부르다.


그래도 또다시 걷기 시작한다. 날씨가 포근해서 군데군데 쉼터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이나 점심을 먹고 있다.


한참 가파르게 돌길을 걸어 이정표가 있는 곳에 올라선다. 조금 나이가 드신 산우님 두 분이 나무 식탁과 의자가 있는 쉼터에서 뭘 드시는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한가로운 봄날의 진풍경이다.


이정표에서 서우님과 함께 예쁜 사진 남기고, 나무 계단 가파르게 올라간다. 둘레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 많지만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걸어야 한다.


이전에 이화80 친구들과 함께 청계산 매봉에 오를 때 쉬어가던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커피와 과자와 과일을 먹었지.'


그런데, 우리는 매봉과 매바위에 오르지 않고, 정자 아래쪽 따뜻한 볕이 쪼이는 나무의자에서 조금 쉬다가 가파른 데크 왼쪽 가운데 둘레길로 간다. 매봉 가는 가파른 데크길로 가면 쉬어가는 전망대도 있는데 멀리서 조망해 본다.


서우님은 요즘 봄꽃 망울 보는 재미로 산에 다닌단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잘 찾아낸다.

"여기 좀 봐요. 꽃봉오리가 곧 터지겠어요."

인테리어 대장님도 나도 다가가서 봄꽃 나무의 첫 설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오래 간직하고픈 천연의 드라이플라워와 첫 설렘의 봄꽃 망울이 터지는 봄산행 싱그럽기만 하다.


청계산 둘레길을 걷다 보니 드라이 리프(마른  나뭇잎)가 한 곳에 모여있는 '비밀의 화원' 공간이 나온다. 마른 단풍잎과 땅에 떨어진 낙엽 빛깔이 어찌나 예쁜지 우리 모두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빨강도 아니고 주황도 아니고 벽돌색도 아니고 저 빛깔은 천연의 색이다.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빛깔이다. 만일 옷감에 물을 들일 수 있다면 저 나뭇잎 빛깔로 옷을 지어 입고 싶다. 아니다. 저 낙엽들을 주워다 붙여서 《비밀의 화원》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쓴 습작 동화 한 편이 생각난다. 미술시간에 낙엽을 모아다가 자화상을 완성하는 이야기이다.


'비밀의 화원'에서 사진 찍기 놀이를 마치고, 또 걷는다. 길이 여기도 예쁘고 저기도 예쁘다. 단풍과 낙엽뿐만 아니라 바위도 소나무도 멋스럽다. 가슴을 활짝 펴고 숨을 깊게 내쉬며 한껏 벅찬 산행을 한다.


청계산둘레길과 성남누비길을 걷다 보니 좋은 점이 있다. 매봉과 매바위봉 쪽을 조망해 볼 수 있고, 하산 가까이 가면서는 석기봉 쪽까지 산봉우리와 마루금을 모두 조망해 볼 수 있다. 마치 지리산 둘레길 걸으면서 지리산 천왕봉과 다른 봉우리들을 조망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성남누비길 혈읍재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 장소이다.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이 스승 김종직의 무오사화 참변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던 고개란다.


혈읍재에는 석기봉 오르는 길 이정표가 있다. 인테리어 대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청계산 정상이 석기봉이었단다. 그런데, 그곳에 군부대가 있어서 통제가 되고 지금의 매봉과 매바위봉이 청계산 정상 노릇을 하게 되었단다.


성남누비길은 길이 아주 잘 닦여 있. 조금 가파른 오름길도 내리막길도 제법 있는데 길 참 예쁘고 걷기가 좋다.


서우님이 싹 돋는 걸 본다고 낙엽 쌓인 양지쪽을 스틱으로 헤쳐본다. 알록제비, 처녀치마 싹이 올라와서 제법 자랐다. 다른 산행지에서 보라색 꽃이 처녀치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성남누비길 포토존에 오니까 전에 이곳에 왔던 기억이 난다. 임돗길에 버들개지가 수없이 많은 눈을 뜨고 있다. 생강나무도 이제 막 봉오리가 열리려고 한다. 며칠 후면 노란 꽃을 볼 수 있겠다.


임도길 끝나고 건물 있는데 옆을 지나 돌아서 내려가니 멋진 나무 숲이 나타난다. 이전에 토산(※2)에서 왔을 때, 이곳 나무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때 이쪽 길로 오르느라고 고생 좀 했다. 길이 엄청 가파르고 돌길 암릉에다 험해서 올라올 때 무척 힘들었다. 오늘 내려가는 길은 그래도 쉽다. 인테리어 대장님은 더 편안한 길로 돌아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서우님이 빙 돌아가지 말고 이 길로 가자고 하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게 돌아가는 길이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가 싶다. 점심은 벌써 낮 12시에 라면에 떡볶이 같은 것으로 먹고, 남은 간식이 하나도 없는데, 뱃가죽이 홀쭉해지면서 바지가 줄줄 흘러내린다.


서우님은 이렇게 하산할 때의 배고픈 느낌이 좋다고 한다. 세상에나! 배가 고파서 좋다는 사람이 다 있다. 나는 너무 허기가 져서 빨리 내려가서 뭐라도 먹고 싶은데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서울대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거의 마지막 구간은 엄청 가파른 데크길이다. 서우님이 이리로 올라오려면 죽음이라고 그런다. 그래도 내려가는 건 쉽다.


청계산 매봉과 매바위, 석기봉 쪽을 바라보니 완전 2/3 바퀴 청계산 허리를 빙 돌았다. 에효! 그러니 힘든 것이다. 둘레길을 거의 쉬지도 않고(잠시 멈추어서 숨을 고르긴 했지만), 간식도 먹지 않고, 주구장창 걸었다.


하산길에 관악산&청계산 생태길이라는 안내가 있다. 윤동주 님의 《새로운 길》이라는 시도 적혀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불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새로운 길》 전문)


나는 오늘 청계산길 새로운 길을 걸었다.


서울대공원 앞 임도길로 내려서니 실질적으로는 하산 완료인 셈이다.


작은 연못에 개구리 알이 동동 떠 있다. 오늘이 경칩인 걸 알고 있는 걸까? 신기방기하다.


인테리어 대장님 하시는 말씀이 오늘 우리는 청계산 허리를 비틀어서 걸었다고 한다. 아, 글쎄, 당초에는 약 7km, 4시간 소요 예정이라더니 총 12.5km, 6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산하니 오후 5시다.


서울대공원 앞 키다리아저씨 조형물에서 기념삿 찍는다. 인테리어 대장님과 서우님은 서울근교산 파라 일주일에 최소 3~4번은 산을 오르고 있으니 벌써 다 찍었단다.


가성비 최고인 《할매집》에서 생고기와 청국장으로 맛있는 뒤풀이를 한다. 배도 고프고 음식도 맛있어서 엄청 먹어댄다. 이 맛에 산을 타는 것이라고 해도 배가 고픈 오늘은 괜찮을 듯하다. 찬찬히 리딩해주신 인테리어 대장님과 도란도란 함산 한 서우님에게 감사하다.


※1. 수도산 : 다음수도권산악회

※2. 토산 : 토요산악회

나, 인테리어 대장님, 서우님, 셋이서 즐거운 산행
마른 단풍 숲 '비밀의 화원'
천연의 드라이플라워
봄꽃 망울의 설렘
좌 :  알록제비꽃 /  우:  처녀치마
과천 청계산 매봉, 매바위봉 쪽 조망
멋진 나무에서
관악산&청계산 생태길 안내
서울대공원 키다리아저씨 조형물에서
과천 청계산둘레길&성남누비길 산행 기록 :  총 12.5km, 5시간 소요(휴식 ,점심 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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