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순오 Sep 13. 2023

혼자서는 어려운 길도 함께하면 가능한 길

금무박 지리산 백대종주(백무동~천왕봉~중봉~대원사)

9월에는 지리산 종주를 한 번 해본다. 다행히 나랑 산행 인연이 있는 H 대장님 리딩이라 조금 쉬운 코스로 시간이 여유 있는 제4코스 백대종주를 하기로 한다. 금무박 산행인데, 백무동~장터목~천왕봉~대원사 코스로 총 22km이다. 시간은 10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화대종주(화엄사~천왕봉~대원사) 팀이 총 46km, 15시간 30분이 주어졌기에 우리도 그 시간 안에 산행하면 된다. 느리게 천천히 걸으면 조금 긴 코스도 괜찮을 듯하다. 20대 때 해본 지리산 종주를 드디어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지리산에 여러 번 왔지만  구석구석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대장님 덕분에 주능선, 동부능선, 남부능선, 달뜨기능선(황금능선), 칠선계곡 등에 대해 배운다. 들어도 잘 기억은 못하지만 저기가 어디구나 정도는 안다. 연하봉, 반야봉 등 이미 가본 곳도 조망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리산에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투구꽃, 구절초, 쑥부쟁이, 용담 등 예쁜 꽃들을 담는다. 같은 보라색이라도 꽃 모양과 잎 모양에 따라 꽃 종류가 다르다.


이미 여물어 씨앗을 남기려는 꽃들도 있다. 엉겅퀴와 꿀풀이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고 무슨 꽃인가 헷갈리기도 한다.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주변 조망도 하며 지리산을 오른다.


장터목 가는 길에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물봉선, 투구꽃, 배초향, 수국, 엉겅퀴, 박하, 구절초 등이 예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들도 있다.


아침 7시에 장터목대피소 도착한다. 날씨가 조금 춥기에 취사실로 들어가 누룽지를 끓여서 묵은 김치와 함께 먹고 계란도 한 개씩 더 먹는다.


옆자리에 있는 어떤 남산우님이 버너를 빌릴 수 있냐고 물어보더니 대장님 버너에서 라면을 끓여 간다. 코펠이 작아서 넘쳐서 얼른 대장님 중간 크기 코펠로 바꾸어서 끓인다. 고맙다며 남산우님이 싸 온 오이소박이를 조금 내놓는다.


후식으로는 바나나와 커피를 마신다. 지리산은 대피소에서 식수 보충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아침 먹고는 장터목에서 주변 조망을 한다. 저 멀리 광양 백운산 쪽, 연화봉과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이는 지리산 주능선 쪽, 두루 조망을 한다.  하늘 위에 금빛 띠가 있다. 구름띠 같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에는 오이풀이 주인공이다. 어찌나 많이 피어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지 온통 오이풀 천국이다. 분홍빛 오이풀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에 아주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군데군데 구절초와 다른 꽃들도 피어 있는데 핸드폰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제석봉 고사목 안내판에는 도굴꾼들이 무자비하게 벌목을 해가고 불을 질러서 산이 나무가 없이 황량해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군데군데 불에 타다 만 것 같은 고사목이 서 있다.


제석봉 안내판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불타 죽은 나무들을 기억하라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제석봉에 나무가 없으니 사방팔방이 뻥 뚫려서 지리산 주능선, 백운산 쪽, 인월 쪽, 천왕봉 쪽, 중산리 쪽을 모두 조망해 볼 수가 있다. 또 나무가 없는 자리에 야생화가 피어서 장관이다.


제석봉 오르며 전망대에서 멋진 사진들을 아주 많이 남긴다. 대장님 사진 실력이 좋으셔서 예쁜 사진이 많다.


걸음이 무척 빠르신 데도 나처럼 느린 사람 기꺼이 리딩해 주신다. 내 산행의 절반 이상이 대장님 덕분이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제석봉 전망대와 오르는 길에서 가야 할 천왕봉을 바라본다. 한참 오르다 지나온 제석봉도 돌아보니 우뚝 서 있다.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아주 높다. 산행을 할 때마다 뒤돌아보면, 내가 저 엄청난 곳을 걸어왔구나, 대단하다, 여겨진다.


봄에 왔을 때는 군데군데 연달래가 아주 고와서 분홍분홍했는데, 지금은 여름의 초록과 가을로 가는 길목의 빛바랜 나무들이 어우러져 묘한 색을 자아낸다.


구름 없는 깨끗한 푸른 하늘이 천왕봉과 제석봉, 지리산 능선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늘에 금색과 무지개색 비슷한 줄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오색구름띠가 아닐까 싶다. 차암 예쁘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간다. 언제나 사람이 많아 예쁜 개인사진 남기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고사목 옆에서 몇 년 전 일터를 따라 잠시 살았던 인월 쪽 조망을 해본다. 연화봉도 반야봉도 걸어봤던 길이라 봉우리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모든 경험은 추억으로 남으면 아름답다. 그 지역을, 그곳을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아는 일만큼이나 실로 아름답다 여긴다. 무엇을 아는 일은 수많은 장소와 사람, 물건 중에 나와의 유일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천왕봉이 가까워지자 정상석 옆에서 인증숏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은 사람 수가 적당하다. 한 10여 분 기다리면 사람 없는 정상석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10시 천왕봉에 도착해 인증숏을 찍는 동안 구름이 폴폴 일어난다. 오늘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사진 찍기가 좋다. 올만에 천왕봉 정상에서 멋진 개인사진을 남긴다.


오후 6시까지 하산하면 되니까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대원사 쪽으로 하기로 한다. 그런데, 대장님 하는 말이 가는 길이 아주 만만치 않단다. 중봉까지 계속 오름길이고 밭목대피소까지도, 대원사 가는 길도 너덜길에 오르락내리락한단다. 길어서 지루하고 거칠어서 욕 나오는 길이라나, 내려갔다 올라갔다 해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나 뭐라나, 그런다.


성대(성재~천왕봉~중봉~대원사, 총 37km, 15시간 30분) 종주 팀은 그래도 조금 나은데, 화대(화엄사~천왕봉~중봉~대원사, 총 46km, 16시간) 종주 팀은 천왕봉 오기 전에 이미 기력이 다 딸려서 죽음이라나 뭐라나, 그런 길이란다.


우리는 그래도 백대(백무동 천왕봉~중봉~대원사) 종주라 백무동 원점회귀 코스 말고는 종주 중에는 제일 짧은 코스를 탔으니 산행시간에 쪼들리지 않아서 해볼 만하단다. 내가 아주 못 걸으면 백무동 원점회귀나 중산리 쪽 하산도 고려했었는데 말이다.


암튼 즐겁게 산행을 한다. 대장님이랑 함께 하면 늘 안심이다. 물도 간식도 그때그때 잘 챙겨서 쉬어가게 해 주시니 산행에 부담이 없다.


대원사 쪽 하산길 중봉 가는 길은 초반에 내려가다가 완만한 길 조금  나오고 계속 오름길이다.


그렇지만 천왕봉과 주변을 시원스레 조망하며 갈 수 있는 길이다. 군데군데 암릉 조망터가 있어서 쉬어간다.


구름이 조금씩 더 일어나서 파란 하늘 위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활동 사진처럼 멋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여름 폭염과 가뭄에 나무들이 말라죽어서 고사목이 많이 생겨났단다.


중봉 가는 길 암릉조망터에서 간식을 먹고 나니 구름이 많이 퍼져나간다. 사진을 다 찍었는데 구름이 예뻐서 또 찍는다. 한참 구름과 논다. 바로 여기가 천국이다.


하늘 구름과 놀다가 중봉을 향해 간다. 인증숏 찍고 치밭목대피소 조망을 해본다. 보기에는 금방일 것 같은데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걷기가 괜찮다.


사실 나는 지난 7월에 한여름밤의 광청종주 후 약간 무릎이 시큰거려서 원정산행을 자제하고 근교산행을 했었다. 늘 10km 내외로 걷다가 갑자기 22km를 걸으니까 무릎인대가 조금  늘어난 것인지 계단을 오를 때 약간 아프다. 그냥 평지를 걷거나 내려갈 때는 괜찮은데 말이다.


지난주에도 월봉산이 암릉구간이 많은 데다 O 대장님이 어찌나 빨리 가라고 몰아대는지 산행 후 여전히 괜찮지가 않다.


그래서 이번에 지리산 백대종주 해보고 좀 무리다 싶으면 근교산 중심으로 산행을 할까 싶어서 일부러 중주 산행을 신청한 것이다. 그것도 희망봉 대장님한테 함산해 달라고 특별부탁을 해서 말이다.


오름길에서는 조금씩 시큰거리지만 내려갈 때와 완만한 길은 잘 걷는다. 대장님 얘기가 연골이 닳은 거면 내리막길 걷는 게 쉽지 않은데 그건 아닌 것 같단다. 아마 무릎 위 인대가 조금 놀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중봉에서 싸리봉 지나 치밭목대피소를 향해 부지런히 내려오고 있는데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 세 명의 젊은이들이 올라오다가 사진을 찍고 있다.


"혹시 근육이완제 있으신가요?"

"네."

대장님은 언제나 비상약을 준비해 가지고 다니신다. 선뜻 세 사람이 먹을 분량 6알을 배낭 주머니에서 꺼내서 준다.

"고맙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한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내가 싸간 꾸미볶음밥과 소시지, 대장님이 싸 오신 포도를 맛있게 먹는다.


대장님이 물보충을 한다고 치밭목대피소에 다녀오시더니 시원한 지하수를 물병에 가득 담아 오신다. 얼음냉수 처럼 시원하다.


대원사로 가는 하산길은 정말 길다. 도로길 나올 때까지 7.7km, 또 대원사 주차장까지 대원사 계곡 도로를 따라 걸어서 3.7km란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아직도 치밭목대피소에서부터 총 10여 km가 남은 것이다. 길은 너덜길에 끝까지 오르락내리락한단다.


중간에 내 핸드폰 배터리가 아웃되어서 충전지에 꽂아서 배낭 옆주머니에 넣는다. 덕분에 사진도 안 찍고 부지런히 내려온다.


또 하나, 내 신발 밑창이 덜렁거리며 빠질 기세다. 엊그제 구제품점에서 새 신발이라 하기에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는데, 오랫동안 안 신었던 신발이었던 모양이다. 색상도 예쁘고 내 발에 딱 맞고 릿지도 잘 되고 신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는 신발인데 아쉽다. 도로 갖다 두고 환불을 해야 할 것 같다.

"신발 밑창 괜찮을까요?"

"새 신발이라 괜찮을 걸요."

살 때 미리 물어봤던 거라 환불은 가능할 듯하다.


어쨌든 대원사 쪽 하산길은 길고 조망도 없고 거칠어서 혼자 걸으면 지루하고 욕이 나오는 길이라는데, 이런저런 애로를 만나며 걷는다.


그렇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오니까 신기하게도 '어느새"라고 할 정도로 제법 빨리 내려온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 얘기가 있지만 요즘은 다르다.

"이야기 하나 해주면 안 잡아먹지."

그만큼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다.


지리산 종주는 만만히 볼 산행이 아니다. 28인승 버스로 함께 간 산우님들 중 자그마치 8명이나 제시간에 못 내려왔다. 대장님이 차안에서 산행 안내를 할 때 오후 1시가 넘으면 대원사 쪽으로 내려오면 안 된다고 했다. 길이 험하고 길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대원사 쪽을 선택한 것 같다. 대장님이 그이들과 통화하고 짐을 식당에 갖다 맡기느라 바쁘다. 하산해서도 2명이 연락이 안 와서 버스 귀경시간을 지나 20여 분을 기다리고 있다가 대장님이 전화번호를 찾아서 연락을 해보니 글쎄 대피소에서 자고 온단다.

"그러면 연락을 미리 해주어야지."

참 산행하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


귀경버스가 휴게소에서 쉴 즈음 안전하게 다들 잘 하산했다고 대장님한테 전화가 온다. 안심이다. 한숨 붙이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나의 지리산 백대종주 산행은 총 21km, 15시간 소요(휴식, 점심시간 포함) 되었다. 걸은 것만은 12시간 20분, 쉬는 시간은 2시간 40분이다.  리딩 대장님 덕분에 재미있고 안전하게 잘 산행을 한 것 같다. 늘 감사하다.

소지봉에서 연하봉을 배경으로
지리산에서 만난 야생화(투구꽃, 수국, 물봉선, 용담, 엉겅퀴,박하, 구절초, 오이풀, 닺꽃, 배초향, 천궁)
장터목대피소
우리들의 아침식사
통천문에서
제석봉전망대
제석봉 전망대에서
고사목에서
지나온 제석봉과 가야할 천왕봉 조망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천왕봉 포토존 암릉과 까마귀
천왕봉 이정표에서
하산길 중봉 쪽 조망
중봉 가는 길 천왕봉 쪽 조망
중봉 가는 길 구름과 놀기
중봉과 써리봉에서
치밭목대피소
무제치기교에서 / 대원사계곡
매거진의 이전글 광교산은 내가 리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