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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Oct 02. 2023

이런 산행 매일 해도 좋겠다

강진 만덕산+다산박물관

지난주 토요일에는 문인화 부채 그리기 행사가 있어서 참여하느라 산행을 한 주 쉬었다. 오늘은 강진 만덕산을 간다. 좀 멀긴 하지만 암릉과 조망이 멋진 산이란다.


그렇지만 나는 쉬운 B코스를 탈 예정이다. A코스는 강진 덕룡산처럼 암릉 타는 재미가 있다는데, 한 주 쉬고 가면 산행이 조금 새로운 데다 나는 '천천히 느리게' 파라 시간에 쫓기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는 게 좋다. 그동안 암릉은 타볼 만큼 많이 타보았고, 나는 숲이 울창한 육산이 더 좋다.


암릉과 조망이 좋다는 A코스는 소석문~구름다리~팔각정~바람재~깃대봉(정상)~백련사~다산초당~다산박물관으로 총 10km, 5시간 소요 예정이다. 내가 타는 B코스는 산박물관~다산초당~갈림길~ 깃대봉~백련사~다산초당~다산박물관으로 총 6.5km 내외로 4시간 소요 예정이다. B코스를 타면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남는다.


강진 만덕산은 다산 정약용의 기록이 전시된 다산박물관과 유배지에 머물면서 목민심서 등을 집필했다는 다산초당도 둘러보고 쉬엄쉬엄 다녀올 생각이다.


정오에 강진 다산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버스로 5시간 거리이다. 나는 신갈에서 타서 4시간 30분 걸렸지만 말이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산우님 22명 중 A코스 반 정도, B코스 반 정도 선택을 한다. 나랑은 대여섯 분이 함께 한다. 남산우 님 한 분, 친구랑 함께 온 여산우 님 두 분, 부부 한 쌍이다. 도란도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는다.


그런데 남산우 님이 이곳을 A코스로 와보신 적이 있단다. 그 코스는 바위가 거칠고 날카롭단다. B코스는 조금 쉽단다.


곧 다산초당이다. 덩그러니 한 일 자 형 집 한 채가 있다. 그 안에 다산 정약용 초상이 있다. 이따 하산할 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사진만 찍고 올라간다.


조금 오르다가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낮 12시가 넘었기 때문에 산행 초반에 먹는다. 다산이 자주 와서 정조대왕을 그리워했다는 천일각에서 먹을까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조금  더 오르다가 길가 나무의자에 앉아서 김밥과 자몽 싸간 것을 맛있게 먹는다.


남산우 님이 백련사 가기 전에 B코스를 조금 변경해서 간다. 우리는 그저 따라가는데 대숲길이 엄청 분위기가 있다. 한참 이어지는데 하늘도 안 보이는 울창한 대숲길이다.


"이런 길 처음 걸어봐요."

"넘 예뻐요."


여산우 님 두 분이 연신 감탄을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드리고 나도 찍는다. 멋진 건 무조건 남겨야 한다.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지다가 조금 가파른 오름길이 나온다. 나무 사이로 강진만이 내려다보인다.


곧 바람재에서 깃대봉 오르는 길과 만난다. 능선 갈림길이다. 천연 냉장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기분이 참 좋다.


"바람재까지 260m, 얼마 안 되니 갔다 와도 시간은 충분해요."


남산우 님이 권해보지만 다들 안 간단다.

갈림길 이정표 있는 데서 한참 쉬어간다.


강진 만덕산은 꼭 A코스를 타지 않아도 조망이 정말 좋다. 오늘 하늘 구름과 강진만과 가우도, 그리고 주변 산 마루금은 완전 예술이다.


'내가 누군가? 날씨의 요정 아닌가?'

날씨가 좋은 건 당연하다. 즐기면 된다.


암튼 시간도 많겠다 천천히 느리게 신이 났다. 사진도 엄청 찍어댄다. 아무래도 인생샷이 나올 것 같다. 기분 짱짱! 엔도르핀이 팡팡! 이런 산행은 매일 해도 좋겠다.


만덕산 정상 깃대봉은 금방 오르지만 마지막 한 200m 정도는 조금 빡세다. 오름길에 암릉구간이 살짝 있다. 오르기 전에 바라볼 때는 저길 어떻게 올라가나 싶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길은 꽤나 좋은 편이다. 위험 구간은 한두 군데 빼고는 없다.


날씨가 좋아 시계가 환상이다. 사방팔방 그 어느 쪽을 보아도 천연 영화다. 이렇게 맑은 날에 이런 멋진 곳을 오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만덕산 정상 깃대봉에서 100+ 명산 제32좌 인증을 하고 한참 논다. 그런데 기다려도 여산우 님 두 분이 안 올라온다.

"그냥 내려갔나?"

아까 여산우 님 한 분이 정상 쪽을 바라만 보고 저길 어떻게 올라가냐며 그냥 내려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그냥 하산하려는데 그제서야 올라온다.


둘이 나란히 서라 하고 사진을 찍어드리고 나도 몇 장 더 찍는다. 너무나 멋진 풍경을 그냥 두고 가기가 아쉬워서다.


사진을 보니 정말 찍길 잘했다. 이런 날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산행을 해보지만 날씨가 좋은 은 분명 복 받은 이다.


깃대봉 정상에서 내려갈 때 길이 조금 가파르고 암릉도 있지만 곧 걷기 좋은 길이 나타난다. 하산길에도 조망이 멋지다. 굳이 A코스를 타지 않고 B코스를 타도 만족스러운 산행이다.


해월루에서 강진만 조망이 또 색다르다. 정자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강진만의 조화가 신비롭다.


다산초당을 향해서 간다. 해월루에서 조금 되돌아와야 하는데 왼쪽에 지름길이 있다. 사람들이 돌아가기 싫어서 한 사 두 사람 지나다니다가 길이 만들어졌으리라.


강진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남도 1번지'라 불린다. 총 18년의 유배 기간 중 11년을 다산초당에 머물면서 목민심서 등 책을 저술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주변 사람들과 교제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자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다산이 머문 동암과 천일각을 지나 서암에서 연못을 둘러보고 다산초당에 들른다. 추사 선생이 썼다는 현판이 멋스럽다.  다산초당 안을 들여다 보며 다산 초상을 담고 돌계단을 조금 올라가서 다산이 돌에 새겼다는 글씨 '정석(丁石)''을 본다. 요즘 같으면 환경보호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돌에 그림도 그리고 형상도 조각하고 했으니 돌에 글씨를 새기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글쎄, 다산이 정(丁)' 씨잖아요. 그러니까 '정석(丁石)''이라 새김은 이 돌은 정 씨 거다, 바로 내 꺼다, 뭐 이런 뜻이 아닐까 싶으네요. 이를테면 제가 서(徐) 씨인데 '서석(徐石)'이라 새겼으면 서 씨 거다, 이런 뜻이 있는 것처럼요."


나는 함산 한 남산우 님에게 이런 생각을 말해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이 휙 내려가 버린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모자를 썼는데 남산우 님이 모자를 잃어버렸다. 썼다가 벗었다 하더니만 어디엔가 흘려버린 것이다. 거의 하산을 다 해가지고 잃어버려서 다시 올라가서 찾아봐도 괜찮았을 것 같다.


차 안에서 리딩대장님이 날머리에 먹거리가 없다더니만 식당이 한 곳 있다. 밥을 사 먹나 어쩌나 하다가 그냥 내려온다. 아무래도 밥값이 많이 비쌀 듯하고 또 우리가 싸와서 차 안에 두고 온 음식이 산우님은 약밥이 있다 하고, 나는 모시송편을 쪄왔기에 그거 먹으면 될 것 같다. 시간도 이제 겨우 오후 3시 30분이고, 아까 점심을 거의 1시 다 되어서 먹었기에 배도 그리 고프지 않다.(※나중에 차에 탈 때 물어보니 함산 했던 부부가 그곳에서 밥을 사 먹었다는데, 1인분에 18,000원이란다. 밥 안 먹고 오길 잘했다.)


휘리릭 내려가서 다산박물관에 들른다. 원래는 입장료(어른 2천 원)가 있는데, 안으로 들어간 사람에게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해 준다. 표를 사서 관람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만 공짜인 셈이다. 문 밖에 '무료입장'이라 쓰인 배너를 내놓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다산의 자취를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다산 정약용에 대한 것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영화《자산어보》를 본 게 전부이다. 아니다. 수원에 살고 있어서 수원화성성곽길과 수원박물관에서 본 것도 있다.


그렇지만 강진 다산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니 새로운 게 많다. 다산의 공적 업적과 함께 사적인 부분도 있어서 꼼꼼하게 읽어본다.


다산의 긴 유배 생활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내용이 담긴 다산과 아내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니 옛 선비와 여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다산초당 다산 초상과 기념샷
울창한 대숲길
암릉에서 강진만과 가우도 조망
만덕산 멋진 조망터에서
만덕산 정상 깃대봉 인증숏과 강진만과 가우도 조망
다산이 돌에 새겼다는 글씨 '정석(丁石)'
다산박물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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