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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Oct 23. 2023

폭포에서 배우는 지혜

설악산+단풍 산행 : 육담폭포,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본격적인 단풍을 설악산에서 보는 일은 복 중의 복이라 여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단풍 중 가장 먼저 맞이하는 단풍이고, 또 설악산은 풍광이 무척 아름다운 산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마대산 산행을 함께 했던 싼타 님이 톡이 와서 함산 하기로 한다. 좀 쉬운 코스로 느리게 천천히 욕심부리지 말고 걷자고 한다.


집에서 준비할 때 내복을 입었다 벗었다, 두꺼운 옷을 가져가나 마나, 망설이다가 결국 내복을 벗고 조금 얇은 바람막이를 입고 나선다.


그런데 카페에 올라온 설악산 날씨를 보니 새벽에는 영하 5도까지 내려가고, 낮에도 영하 1도에서 영상 1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될 거란다. 리딩대장님 하는 말이 실제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내외가 될 것이니 각별히 보온에 주의하란다.


그런데 나는 옷이 너무 얇다. 할 수 없이 사당역에서 환승하면서 핫팩 2개 사고, 레깅스를 사서 입는다. 윗옷은 여벌옷 가져온 게 있어서 탈의실에서 같이 껴 입는다. 조끼에 바람막이를 위에 입어도 춥다. 장갑도 너무 얇다.


그런데 싼타 님이 내 패딩과 바람막이를 하나씩 더 챙겨 넣었다고 톡이 온다. 고맙다고 답문을 한다. 잠실역에서 반갑게 만난다. 내 옆자리 예약한 이가 무슨 일이 있는지 안 와서 같이 앉아서 간다.


오늘은 단풍철 피크라 사람이 좀 많을 거라서 코스를 조금 변경해서 오색에서 대청봉 찍고 희운각~천불동 계곡~소공원 코스로 타자고 한다.


그런데 차 안에서 어떤 남산우 님이 설악동에서 권금성을 갈 예정이란다. 설악산의 새로운 길이라 인파를 피해 싼타 님과 도 따라가기로 한다. 길은 좋고 풍경도 엄청 멋지다고 한다.


아, 그런데 내 헤드랜턴이 집에서 만땅으로 충전해 놓았고 잘 켜지는 걸 확했는데 접촉 불량인지 불이 안 들어온다. 싼타 님이 여벌로 가져온 걸 주어서 내 것은 차 안에 두고 간다.(※그런데 집에 와서 내 헤드랜턴을 분해를 해봐도 전선 끊어진 데가 없어서 다시 조립을 하고, 건전지 부분을 열어서 뺐다가 다시 끼니 멀쩡하게 불이 잘 들어온다. 희한하다. 오늘은 전지가 우릴 도운 게 확실하다.)


길도 완전 너덜길에 아무도 안 간 것 같은 길이다. 밟으면 돌이 부스스 굴러 떨어진다. 보다 보다 이런 길은 처음 본다. 길이 진짜 안 좋다.


조금 가다 보니까 산타 님 헤드랜턴이 켜졌다가는 금방 꺼져 버린다. 내가 가지고 있는 헤드랜턴으로 타 님 비추어주고 타 님 멈추면 내가 조금 걷고, 그렇게 가고 있는데, 것도 그만 아웃되어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가다가 멈춘다. 남산우 님은 혼자서 가버리고 없다. 전화만 한 통 달랑 와서 어디로 가라 지시를 한다.


우리는 간식을 먹고 쉬다가 날이 새면 올라가기로 한다. 날은 아직 어둡고 둘 다 헤드랜턴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자리도 마땅치 않아 비탈길에 쪼그리고 앉아서 누룽지와 삶은 계란을 먹고, 따뜻한 커피를 타서 마신다. 우리가 앉은 아래쪽으로 돌이 우르르 굴러 떨어진다.

"에고, 무서워라!"


권금성 가는 길은 길이 아니다. 아슬아슬 험하다. 가파르고 돌덩어리 너덜길에다 암릉 투성이다. 헤드랜턴이 우릴 도왔다. 배터리가 아웃되어서 그냥 내려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려와서 한 번도 안 가본 토왕성폭포 쪽을 오르기로 한다. 설악동에서 계곡을 따라 2km 정도 걸어가니 토왕성계곡 육담폭포가 나온다. 단풍 고운 암릉  위에서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에 속이 다 뚫린다.


육담폭포는 6개의 못이 연결되어 있어서 붙은 이름이란다. 바로 위에 출렁다리가 있는데 오른쪽 왼쪽 폭포가 다 육담폭포인 셈이다. 폭포가 흘러내려 6개의 못을 지나간다는 뜻의 육담폭포이다.


토왕성계곡에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육담폭포, 비룡폭포를 보면서 철데크 길을 걸어 토왕성폭포 전망대를 향해 올라간다. 아침 7시가 채 안 되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다. 금무박으로 온 우리가 유일하다.


단풍이 고우니 그 어디를 찍어도 예쁘다. 폭포와 어우러진 단풍 풍경은 하나하나가 다 산수화다. 육담폭포에서 비룡폭포 가는 길 풍경을 열심히 담는다.


설악산에서 3개의 폭포를 함께 보면서도 코스가 그리 길지 않은 트래킹 코스가 육담폭포~비룡폭포~토왕성폭포이다. 저 위에 토왕성폭포에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내려온 폭포가 몇 개의 암릉을 타고 내려와 흐르다가 비룡폭포로 떨어지고, 또 구불구불한  암릉을 타고 흐르다가 조금 완만한 암릉도 지나면서 부드러운 육담폭포로 떨어진다.


나는 폭포를 보면 시원스럽다는 생각이 젤 먼저 든다. 자신을 던져 부서지는 포말로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어 흐르는 폭포, 모든 욕심과 상념을 저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는 의연한 모습, 그래서 순수 옥빛 담 깊이 침잠하여 머무르는 고요함, 그래서 시원하고 통쾌하다. 아름다운 폭포를 보면 시가 한 수 나올 것도 같다.


<폭포> 시 몇 개 찾아본다.  



♡ <폭포>, 김수영 ♡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 <폭포>, 이형기 ♡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을.

 

나의 자랑은 자멸이다.

무수한 복안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가 한꺼번에

박살 나는 맹목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참여시인 김수영의 <폭포>는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고, 이형기 시인의 서정시 <폭포>는 자랑의 추락과 자멸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시를 쓴다면 어디에 가까울까?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 버리는 쪽이다. 모든 욕심과 성공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 위까지 올라갔던 물줄기가 저 아래로 떨어지듯이, 그래서 청록의 담에 파묻히듯이, 불타오르는 단풍이 떨어져서 한 줌 흙이 되듯이, 그리고 다시 새 잎으로 돋아나듯이, 그렇게 버리고 다시 새싹을 틔우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설악산 폭포를 보며 단풍산행을 하면서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맘껏 오르자, 눈부시게 타오르자, 가차 없이 버리자, 그리고 죽음처럼 고요하자!"


비룡폭포에서 토왕성 폭포 가는 데크길은 가파른 오름길이다. 400m 정도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계단이 600개가 있단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가파른 오름길은 km 수가 잘 안 나오는데 이곳도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다. 400m 금방이려니 하지만 만만치 않다. 한바탕 빡세게 오른 후에 숨을 고르고 한참씩 쉬어가야 한다.


데크길 중간에 있는 나무의자 쉼터에 배낭을 놓고 가기로 한다. 비룡폭포에서 150m를 오른 지점이다.


비룡폭포는 용과 관련된 폭포이다. 이곳에서 용이 승천을 했으리라. 용에 얽힌 이야기는 정말 많다. 산도 폭포도 호수도 바위도 용의 이야기는 '승천했거나 못했거나' 이다.


이곳 비룡폭포도 네 발 달린 용에게 처녀를 바쳐 용이 승천해서 가뭄을 면했다는 전설이 있다. 성경에서는 인신제사는 이방의 풍습이라서 금하고 있는데 하물며 용에게 사람을 바쳐 용이 승천하고 가뭄을 면했다는 이야기는 다분히 인간을 동물보다 가벼이 여긴 처사가 아닌가 싶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 누구에게 바쳐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 다 저마다 자신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높이가 16m에 달하는 비룡폭포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다. 풍경에 빠져들며 산타 님과 나도 함께 사진을 남긴다. 우리 둘은 호흡도 보폭도 착착 잘 맞아떨어진다. 기분 좋은 산행이다.


토왕성 폭포는 명승 96호이자 국립공원 100경 중 하나인 폭포란다. 중국의 '여산'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폭포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폭포에 이름을 붙여놓고 키재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은 과연 그럴까 생각해 본다.


자연은 분명 누가 더 낫다는 자랑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름 있는 폭포보다 이름 없는 폭포가 더 멋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토왕성 폭포는 물줄기가 너무 가는 데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암릉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쓰릴은 있겠지만 위험천만해 보인다. 사람의 모험심은 실로 목숨을 내건 도전을 불러오는 것 같다.


워낙 조망이 좋아서 이쪽저쪽 돌아가며 설악산 능선, 암릉 봉우리, 기암괴석, 데크길 등을 담는다.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부탁해서 예쁘게 구도를 잡아 찍어준다. 시간을 보니 아침 9시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토왕성폭포 전망대에서 비룡폭포 쪽으로 내려오면서 고운 단풍을 담아본다. 데크길 풍경, 주변 풍경, 고사목이 있는 풍경, 단풍 든 모습도 너무나 예쁘다. 단풍을 조금 클로즈업해서 담는다. 비룡폭포를 배경으로 단풍을 넣으니 더욱 곱다.


아침식사는 비룡폭포 앞 데크에서 먹고 가기로 한다. 아, 글쎄! 싼타 님이 연어회와 초고추장을 싸 오셨다. 자기 꺼, 내 꺼 따로 싸왔다. 겨자를 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는다. 남은 고추장으로는 곤드레밥을 비벼먹으니 완전 회덮밥이다. 세상에나 산에 와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지난번 마대산 산행에서 싼타 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양장피를 싸와서 놀란 적이 있다. 상냥하고 밝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성품을 지녔다.


늦은 아침을 먹고 비룡폭포 앞에서 싼타 님과 기념샷을 찍는다.


천천히 걸으며 폭포가 이어져서 흐르는 계곡과 단풍을 담으면서 사색에 잠긴다. 곧 평지길이 나오면서 걷기가 좋다.


저 위 전망대까지 올라갔지만 토왕성폭포는 아주 가늘게 떨어져서 잘 안 보였기에 하산하면서 <토왕성폭포 코스> 안내를 읽어본다.


토왕성폭포는 비룡폭포, 육담폭포, 쌍천을 지나 동해로 흐른다. 2017년에 7월에 개통된 육담폭포 출렁다리를 지나 비룡폭포에서 30여 분 정도 6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토왕성폭포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금강산의 소나무처럼 강하다는 금강소나무 숲을 지나 다리를 건너 설악산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간다. 올라가려다 못 오르고 내려온 권금성 쪽을 조망해 보니 아찔하다.


시간이 이제 낮 12시도 안 되어 여유가 있고, 또 권금성을 가려다 못 가서 조금  아쉬워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볼까 이야기나눈다.

"값이 비싸지 않으면 올라가자."

"대인 왕복 15,000원이네."  

"가서 보고 줄이 길지 않으면 갔다 오자."

"사람이 많으면 케이블카가 5분 간격으로 움직인대."


그런데 기다리는 줄이 길다. 적어도 30~40여 분은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냥 흔들바위나 울산바위 올라가자."

그래서 울산바위 쪽을 향해 간다.


울산바위를 향해 걸어가다 보니까 계곡 쪽에 단풍이 진짜 곱다.

"와우와우!"

햇빛에 더 빛나는 단풍 옆에 가서 서 본다.

우리의 행복이 광채가 난다. 후훗!

"우리 여기 단풍계곡에서 물소리 들으며 낮잠이나 자고 가자!"

"울산바위는 여러 번 가봤어."

"쪼아쪼아!"

싼타 님과 나는 어쩌면 그리 죽이 잘 맞는지 금방 결정을 내린다.


보조가방을 베개로 하고 계곡 돌 위에 겉옷을 펼쳐서 깔고 눕는다. 패딩잠바를 배 위에 덮는다. 모자로 얼굴을 가린다.

"낮잠 준비 끝!"

"참, 알람은 오후 2시로 맞춰 놓을까?"

"응, 그래. C지구 상가까지 40여 분 걸어가야 하고, 또 씻고 저녁 먹을 시간이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달콤한 설악산 단풍계곡 오수를 즐긴다.


그새 2시간 꿀잠을 잤다. 일어나 양말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곧 발이 시리다. 새 양말을 갈아 신고 C지구 상가로 걸어간다. 버스를 타면 금방이지만 걸어가기로 한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있는 전주 식당 앞에서 이른 저녁식사로 남은 간식을 먹는다. 삶은 계란, 곤드레밥, 누룽지, 바나나, 곶감, 홍삼액 등등, 배가 부르다.


설악산 단풍산행, 폭포와 단풍과 낮잠이 어우러진 완전한 자유산행, 힐링의 시간이다.


"우리 가끔 만나서 산행 같이 하자."

"그래그래!"


우리의 설악산 산행은 총 14.5km, 13시간(휴식, 아침식사, 낮잠 2시간, 점심겸저녁 식사시간 포함) 소요되었다.


오후5시 귀경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차가 어찌나 막히는지 설악산에서 서울까지 장장 5시간이나 걸다. 그래도 즐거운 산행이다.

새벽 4시 설악동에서 설악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저 암릉을 타고 올라가려고 했다.
날이 밝아오니 단풍색이 곱다.
육담폭포와 출렁다리
담(못)과 단풍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전망대에서
토왕성폭포 전망대에서 비룡폭포로 내려가는 길 고운 단풍
우리들의 특별한 아침식사
올라가려다 못 오르고 내려온 권금성 쪽을 바라보니 아찔하다!
설악산 케이블카
울산바위를 향해 가는 중이다.
울산바위 가는 길 단풍계곡에서 낮잠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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