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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Dec 10. 2023

금빛 은빛 바다 풍경 속에는 포로수용의 역사가

거제 계룡산 산행

봉화+영주 여행을 가려고 했더니 이틀 전에 취소되었다. 신청자가 적단다. 하긴 그 먼 곳을 아주 싸게 나와서 예약한 건데, 조금 다행이라 여긴다. 산행을 거의 두 달째 쉬고 있어서다.


그 대신 올만에 신산에서 거제 계룡산 산행을 가기로 한다. 요 며칠 날씨가 따뜻해서 혹시나 봄꽃이 피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내복을 벗고 가볍게 입고 나선다.


거제 계룡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안산이고, 해발고도 561m로, 바다 조망이 좋은 산이다.


A코스는 계룡산+선자산 연계산행으로 총 8km, 5시간 소요 예정이다. 나는 조금 짧은 B코스(거제고~453봉~계룡산 정상~통신탑~고자산치~더샵아파트, 총 6km)로 계룡산만 살방살방 다녀와야겠다. C코스는 모노레일을 타서 더 쉬운데, 현재 운행을 안 하고 있다. 산에 오르긴 하지만 산행은 아주 조금 하는 코스이다. 나는 쉬운 게 좋지만 그래도 모노레일을 타는 것보다는 산행을 하는 게 더 좋다.


계룡산은 다도해 풍경이 그윽하다. 날씨가 좋아서 하늘 빛깔도 넘 예쁘다. 하늘과 바다의 어우러짐은 그 언제 보아도 환상의 콤비이다. 특히 산행에서 보는 풍경은 두고두고 꺼내보아도 좋은 그림이다. 내가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두 달 정도를 산행을 뒤로 미루고 여행을 했는데, 산에 와보니 역시나 좋다. 산행은 산행만의 묘미가 있다. 산을 오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발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특권이랄까? 정상에 선 자만이 아래를 내려다볼 수가 있다.


쉬운 B코스는 4명이 탄다. 조금 오르다가 보니까 남자, 여자 산우님 두 분이 여러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커플인가 했는데 아니고 혼자 오신 분들이란다. 그래서 나도 합류한다. 셋이서 잼나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다.


그런데 여산우 님이 나보다 조금 더다. 나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이 여산우 님은 완전 공주과다. 남산우 님이 사진을 찍어주면 앨범을 살펴보고는 다시 이렇게 저렇게 찍어달라고 다시 주문을 한다. 한 장소에서 보통 10여 컷을 찍는다. 세상에나! 작품 사진을 건져야 한대나 뭐라나 그러고 있다.


나도 덩달아 닮아가고 있다. 남산우 님이 또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끼리끼리 만났다. 덕분에 예쁜 사진이 많다.


계룡산은 암릉이 많은 산이다. 길이 잘 나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고 재미있게 산행할 수 있는 곳이다. 거기다가 바람도 아주 시원하게 불어준다.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올라가는 겨울 날씨라 살짝 초여름 느낌이 난다. 산을 오를 때는 땀이 조금씩 난다. 기분 좋은 땀이다.


억새길도 하늘하늘 춤을 춘다. 걷기 좋은 길이다.


계룡산에서는 철탑도 멋지게 보인다. 산에서 경관을 해치는 것 중 하나이지만 다 필요해서 생겨난 것이다. 모노레일이 있어야 하니까 만든 것이다. 누구나 쉽게 올라서 멋진 바다 풍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다면 모노레일을 타도 좋겠다.


정상에서 100+ 명산 34좌 인증을 한다. 정상석에 서면 바다가 뒤로 펼쳐진다. 베스트 포토존이다.


정상 아래에서 셋이서 점심을 먹는다. 아주 푸짐하다. 주식은 볶음밥, 빵, 떡, 과일은 청포도, 방울토마토, 감, 후식은 샐러드, 따뜻한 우롱차이다. 남산우 님은 특별식으로 올리브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를 싸 오셨는데 아주 맛깔스럽다.


점심 먹고는 함산 한 산우님들을 앞서서 혼자 걷기 시작했는데 잘한 것 같다.


덩달아 공주과 여산우 님 사진 찍는 걸 맞추다 보면 하산 시간이 너무 빠듯할 수도 있어서다. 세 사람이 풍경이 좋은 장소에서 번갈아가면서 여러 컷 사진을 찍다 보면 자꾸만 시간이 지체가 된다.


계룡산은 암릉구간이 꽤나 많고 조망도 아주 좋다.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절대로 빨리 걷기 어려운 암릉길이다.


중간에 한 번 알바를 한다. '추락 위험'이라는 안내가 곳곳에 있는데, '절터' 표시가 있는 곳을  지나서 보니까 암릉길이 끊겨 있다. 그래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쪽에 길이 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길을 찾는다. 암릉을 우회해서 걷기 좋은 길이다.


암릉과 암릉 사이로 해와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절묘하다. 햇빛을 받아 바다는 빛난다. 행글라이더 타는 이들이 바다 위로 떠간다. 특이한 취미를 즐기는 이들이 신기하다.


여고 친구 중 남편이 경비행기 타는 걸 취미로 가진 이가 있다. 고급 취미이다. 개인이 소지하는 경비행기 값도 만만치 않은 데다 즐기는 일도 꽤 비용이 들어가는 스포츠다.


골프도 그렇다. 울 남편도 한 때는 골프를 친 적이 있다. 제주도로 해외로 골프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즐기는 산행은 그중 저렴한 취미생활이다. 손발을 움직여 내 몸으로 높이 올라가서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운동이나 취미생활에 비해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가능한 한 오래오래 산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노레일 타는 곳에는 소원 군번 줄걸이와 거제 포로수용소 기념물이 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계룡산까지 운행하는 모노레일이다. 사람의 목숨을 포로수용소에 가두고 무참하게 죽인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거제 계룡산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어서 다시는 그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계룡산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치하에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던 곳이다. 당시 포로들이 강제로 노역하고 참수당하면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그런데, 포로수용소는 계룡산과는 별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운영한 포로수용시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거제에는 여러 곳에 포로수용소가 존재했고, 그중 거제도 남쪽 해안에 있는 해금강 일대에는 대규모의 포로수용시설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한국인을 포함해서 여러 국적의 포로들이 수용되었으며, 극악한 환경과 인권 침해가 이루어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가 힘이 약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라가 힘을 키우는 것이 자국민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계룡산 모노레일 타는 데서 전망대 쪽으로 간다. 계단참에 명 문구들이 쓰여 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오른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

"산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너그럽지는 않다."


계단 중간에 전망대와 등산로라고 쓰인 안내가 있다. 나는 전망대는 안 들르고 등산로 쪽으로 오른다. 곳곳이 다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거제 계룡산은 꼭 고흥 팔영산을 닮았다. 왼쪽은 삼성조선이 있는 바다 쪽을, 오른쪽으로는 서쪽 바다를 바라보면서 암릉길을 걷는다. 금빛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가 몽환적이다. 길에 갈대도 우거져서 더욱 운치가 있다.


고자산치에서 또 조금 알바를 한다. 지도에는 나와 있는데 그 어디에도 고자산치라는 이정표는 없다. 내가 걸은 코스는 여기서부터는 다른 곳으로 가는 걸 다운로드하여 온 터라 내가 걸으면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이러고 나온다. 계룡산에서 내려와서 왼쪽 길 두 번째 길 임도(1km)라고 나와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야 더샵아파트 입구 사거리가 나온다.


내가 헤매고 있는 동안 아까 사진 찍으면서 함산 한 산우님 두 분이 내려온다. 다시 합류해서 길을 찾아 더샵아파트 쪽으로 무사히 하산한다. 총 6.8km, 4시간 20분 소요(휴식, 점심시간 포함)되었다.


함산 한 남산우 님이 간식을 좀 사 와서 함께 나누어 먹고, 주변 화장실을 찾아 씻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오후 4시 40분에 와서 탑승하고 귀경길에 오른다.

거제 계룡산 멋진 바다 풍경
계룡산 안내
거제 계룡산에서 100+ 명산 제 34좌 인증
함산한 여산우님과 정상에서 내려오는 중
암릉에서
금빛 은빛 바다
거제 계룡산 모노레일 타는 곳 포로수용소의 기록
억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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