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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Dec 30. 2023

핸드폰 배터리는 아웃, 인적이 드문 천연의 길

수원 광교산

올만에 수도산님들이 수원에 온다고 해서 광교산 산행을 나선다. 몇 달 만인 것 같다. 하긴 요즘은 산행보다는 여행을 주로 하고 있어서다.


날씨가 밤에는 영하지만, 낮에는 영상 5~6도로 올라가서 제법 포근한 산행이 되겠다.


13번 상왕교 종점에서 오전 11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른 이들은 수원역에서 11시에 만나서 함께 오는데 나는 직접 가기로 했다. 도착하니 간 시간에 여유가 있다. 화장실 들렀다 나오니 산우님들이 버스에서 내리기에 반갑게 인사한다.

 슬기화장실~노루목~시루봉~토끼재~비로봉~낙엽길~다슬기화장실 원정회귀 코스로 총 6km, 약 4시간 소요 예정이다.


함께 하는 수도산님들은 인테리어 대장님 리딩에 세브란스, 가혜님, 은꽃님, 그리고 나, 모두 5명이다.


산행을 시작하니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어서 싱그러운 발걸음이다. 계곡 물소리도 졸졸 들리고 사방댐 물은 얼어서 빙판이다.


노루목까지는 가파른 코스인데 경사구간 나오기 전에 밮더를 찾는다. 낙엽 수북이 쌓인 곳에서 인테리어 대장님 짊어지고 오신 쉘터를 치고 들어가 앉아 점심을 먹는다. 쉘터 안이  따뜻하니 안방 같다. 가혜님 가져오신 고래사 어묵탕이 얼큰하니 입맛을 돋운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각자 싸 온 밥에다 어묵탕, 라면, 귤, 커피까지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하다.


점심을 먹고는 경사구간 시작점에서 사진을 몇 장씩 찍고 부지런히 오른다. 한바탕 오름길 이어지다가 능선길 살짝 나오더니 또 경사구간 오름길이 나온다. 이 코스는  경사도가 있는 대신 가장 빠른 길이다. 쉬지 않고 오르면 시루봉까지 40여 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몇 년 전 혼자서 시루봉 올랐다가 우리 강아지 별이가 죽었다는 울 남편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여길 내려갔던 생각이 난다. 시츄 별이는 생후 20일에 우리 집에 와서 장장 20여 년이나 함께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광교산을 오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난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그때 그 장소에 있으면 불현듯 생각나는 것, 그것이 바로 추억이다.


노루목에서 시루봉까지는 200m, 포근포근 눈길 걸어 광교산 시비도 읽으며 걷는다. 암릉 살짝 있지만 금방이다.


시루봉에서 인증숏 찍고 아기용 포토존에서 앉아도 보고 주변 두루 조망한다. 미세먼지가 있어서 하늘이 아래쪽은 뿌옇고 위쪽은 파랗다.


그래도 광교산 올 때마다 한두 번을 빼고는 거의 날씨가 별로 안 좋았는데 오늘은 제법 좋은 편이다.


시루봉에서 발도장을 찍으려고 하면 매번 와이파이가 말썽을 부렸다. 계단 아래까지 조금 내려가기도 하고, 노루목까지 내려갔다가 오기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다. 오늘은 발도장 미리 찍고 올라간다.


인테리어 대장님은 '뭐 그런 걸 찍느냐?'라고 그러지만, 또 한 번 시작을 하면 그만 두기가 뭐 한 게, 사람이 무얼 하면 습관이 되는 것 같다.


"기왕 오른 거 인증하고 가면 좋지 뭐."

세월이 흐른 후에 내가 여길 어떤 날에 몇 번 올랐구나 헤아려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산할 때는 겉옷을 꺼내 입는다. 옷 바꿔 입은 김에 사진을 또 찍는다. 우리들이 잼나게 사진놀이 하는 걸 보고 어떤 산우님이 사진 부탁을 해서 예쁘게 찍어드린다.


이제 비로봉을 향해 간다. 은꽃님과 나는 그래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아이젠을 꺼내 차고 걷는다. 인테리어 대장님과 세브란스님, 가혜님은 아이젠을 찼다가 곧 벗어버리고 가볍게 걷는다. 거의 주 3회 이상 산행을 하니 산꾼들이 다 되셨다. 보폭이 맞는 은꽃님과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다.


토끼재에서 비로봉까지 200m다. 암릉구간 살짝 있고 오름길이다. 비로봉에 오르면 시계가 좋은 날은 광교저수지가 보이는데 오늘은 뿌옇다. 정자에는 안 오르고 아래에 있는 <광교라 부른다> 시를 읽는다.


비로봉 오른쪽 길로 내려간다. 길이 무지 좋아 아이젠을 벗고 걷는다. 광교산 여러 번 왔지만 처음 걸어보는 길이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두 갈래 길, 또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계속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길이 아닌 것 같은 인적이 드문 길이다. 거기서부터는 눈 쌓인 낙엽길, 경사도가 좀 있는 천연의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니는 길이라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미끌미끌 조심조심 걷는다.


"삐삐삐삐"

내 핸드폰 배터리가 아웃이다. 충전지를 꺼내 끼우고, 다시 아이젠을 찬다. 눈 쌓인 길도 가파른 길도 안심이다.


아, 그런데 한참 내려오니 임도 비슷한 길이 나오는데, 그 편한 길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또 오른쪽에 눈 쌓인 응달길, 거기로 가야 한단다. 인테리어 대장님 앞서고 세브란스님 뒤따르고, 우리가 따라간다. 눈이 제법 쌓여 있어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 배터리가 4%라 못 찍고 그냥 내려온다.


나무 사이로 집들이 보이니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 계곡을 건너니 광교산 안내소가 나온다.

"이 길이구나!"

그제야 감이 잡힌다. 상왕교 종점으로 원점회귀라서 새로운 길로 온 것이다. 누구나 다 가는 길보다는 이런 길이 잼나다.


내 트랭글은 꺼졌다 켜져서 기록이 제대로 안 나왔다. 인테리어 대장님 트랭글을 보니 총 5km, 약 4시간(점심, 휴식 시간 포함) 소요되었다.


오후 3시 30분, 저녁식사는 조금 이르지만, 단골 맛집 <광교헌>에서 비빔밥과 바비큐로 한다. 총각김치가 어찌나 맛이 있는지 몇 번을 달라고 해서 먹는다.


날씨 좋고 눈길에 오붓하게 광교산을 오르니 기분이 최고다! 인테리어 대장님 리딩은 언제나 편하고 좋다. 오늘은 여산우님들만 4명에 대장님이 청일점이다. 리딩해주신 대장님, 함께한 여산우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잔설이 남아 기분 좋은 산행길
꽁꽁 언 사방댐
쉘터를 치고 점심식사 중이다.
오름길 눈길 부지런히 오르는 중
노루목 대피소
노루목에서 비로봉 가는 길 여산우님들과 함께
광교산 시루봉 정상석과 아기용 포토존
시루봉에서 과천쪽 조망
시루봉에서 단체사진
시루봉 정상석에서
시루봉 아기용 포토존에서
토끼재
비로봉 오르는 암릉길과 비로봉 정자
눈 쌓인 낙엽길 천연의 길
계곡을 건너니 광교산 안내소가 나온다.
단골 맛집 <광교헌>에서 비빔밥과 바비큐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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