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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Dec 25. 2023

죽음보다 강한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음의 극한 현장에 직면할 일 얼마나 있을까? 전쟁이나 질병, 기아와 추위에 노출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말이다.


최근 몇 년 간 코로나가 온 것이 내가 경험한 극한 상었던 것 같다. 날마다 마스크를 쓰고 일상생활을 하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살아야 했으니 말이다. 런데 이 일은 나만 겪은 일은 아니고 누구나 다 겪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상대적으로 그 심각성이 덜했던 것도 같다.


나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로 평소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산행도 여행도 도리어 더 많이 하면서 지냈다. 물론 면역력이 좋아 코로나에도 안 걸렸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의 아무 일도 겪지 않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행운아구나 싶다. 대체보통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빅터 크랭클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 일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이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치의  수용소에 끌려가서 3년 동안 4군데의 수용소를 거치면서 경험한 일을 담담한 어조로  나가고 있다.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고 그저 주인공 관찰자의 입장으로 써 나갔다.


나는 이 책을 종이책으로 한 3번 정도 읽고, 오디오북으로도 2번 정도 더 들었다. 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읽을수록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어 연말이니 연초에 읽으면 더 좋다.


이 책에서 빅터 프랭클은 보다 강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짐승처럼 취급받으면서  처참한 육체노동 가운데서 그는 사랑하는 내를 생각한다. 다른 수용에 갇혀 있는 아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 없다.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묻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주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그녀가 내 곁에 있었다. 그녀를 만질 수 있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때 새 한 마리가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와서 앉았다."


 두 번째로 죽음보다 강한 것은 '삶의 미'이다. 이 책의 개정판에서는 '로고 테라피'라는 것이 나오는데, 것은 '의미 치료'로 번역된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목표를 정하도록 도와주는 심리치료 기법'이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고향에 돌아갔지만 가족은 여동생 외에는 모두 죽어 돌아오지 못했다. 물론 사랑하는 내도 다시 볼 수 없었다. 우울증과 자살 심리를 치료하던 프랭클 자신이 그만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프랭클은 수용소 시절을 회상하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9일 만에 완성한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 체험에서>라는 독일어판 자전적 에세이였다.


후 프랭클은 폴리클리닉 병원의 신경과 과장으로 하면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나 재혼했다. 이어서 '로고 테라피 이론'세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현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로고 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환자가 이루어야 할 목표에서 의미를 찾도록 도와다. 프랭클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의 체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충분히 삶은 죽음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가 '사랑''삶의 의미'에 대해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신앙이다. 사랑, 삶의 의미, 신앙이 있다면 삶은 그야말로 살아볼 만한 것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디까지 왔든지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강제수용소에도 사랑, 예술, 유머가 있었고. '내일의 희망'이라는 삶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그보다 더 좋은 환경에 살고 있기에 얼마든지 더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갈 수 있 것이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죽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대한 믿음까지 있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눈이 소복이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아침에 내가 살아있음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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