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는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하는 <AI로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줌으로 듣고, 그림책을 만들어보았다. 그러면서 뭔가미진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AI는 내가 요청한 대로 글을 써내지도 그림을 그려내지도 못했다. 물론 글도 써내고 그림도 그려내기는 했지만 내의도와는 많이 다른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공부를 해보기로 한다. 메타버스나 AI(인공지능), 미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공부 말이다. 그러려면 그런 쪽과 관련된 글을 읽는 것이 우선이다. 찾아보던 중 <새로운 공부가 온다>(인공지능 시대의 생존 공부법) 오디오북을 만났다.
앞으로 AI는 인간을 앞지를 것인가?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AI에 지배당하지 않고 어떻게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며 더욱 진보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는 책이다. 몇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앞으로 우리는 많이 배우는 것보다 배운 지식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AI 역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AI를 꼭 필요할 때 협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독창성이다. AI는 그 부분에서 인간을 앞지르지 못한다. AI는 그동안의 지식을 모아 정리하고 요약할 줄은 알지만 자기 생각을 내놓지는 못한다. 창의성은 두고두고 인간이 인간됨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셋째, 벤치 인사이트(의자 통찰력)이다. 벤치에 앉아 쉬면서 자신과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인간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순간에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떠오를 수 있다.
넷째,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철학과 인문학이 필요하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과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바퀴벌레처럼 적응력이 강해야 한다. 어떤 상황과 환경이 오더라도 적응력이 강한 인간은 살아남는다. 아무리 열악한 조건이더라도 계속해서 자손을 퍼뜨리고 이어간다.
그러나 이 책은 한계점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이야기의 존재라서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도 스토리텔링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모든 종교를 하나의 신화로 인식한 것이 문제이다. 인문학을 얘기하는 사람이 종교를 단순히 신화로 보고, 진화론을 얘기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물, 공기, 바람,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 같은 것 말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하나 대체불가능한 나를 만드는 것이 생존 공부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구나 다 가르치면 된다.몇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체불가능한 인간이란 없다.하나하나 가르치면 누구나 다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능력이다.
우리 모교회 담임 목사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분은 교회를 개척해서 은퇴할 때까지 38년 간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부교역자들을 담임목사로 만드신 분이다. 우선 부목사님을 뽑을 때 가장 열악한 사람을 뽑는다. 학벌, 돈, 가족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안 된 사람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그를 뽑아서 가장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사랑을 베풀고 목회를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 모교회를 거쳐간 목사님들 중에 50~60여 명이 현재 담임목사님이 되어서 목회를 잘하고 있다. 세계 곳곳으로 나가서 일하는 분들도 있다.
하물며 지식이나 지식 활용법 같은 것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혼자만 알고 독점하고 앞서가려고 나누지 않기 때문에 대체불가능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공부, 새로운 시대에는 기존에 한 공부들이 다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면 아는 사람이 가르치면 된다. 순간적으로 먼저 안 사람이 조금 앞설 수는 있지만 새로운 지식은 곧 퍼져나간다.
마치 새로운 핸드폰이 나오면 돈을 주고 사서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곧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AI를 탑재한 핸드폰이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서 상대방에게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기만 하면 된다.
글 쓰는 일도 내가 말하면 문자로 기록해 주고 덧붙여주고 늘여주고 요약해 주고 단락도 나눠주고 제목도 붙여준다. 글 내용을 그려달라고 요청하면 몇 가지 그림을 제시한다. 나는 고르면 되고 수정도 요구할 수 있다. 원하는 그림이 될 때까지 말이다. 글과 그림에 맞는 음악도 만들어 줄 것이다. 글과 그림, 음악에 어울리는 영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그것들을 넣어서 영상을 완성하는 것에 비해 감동이 없을 수 있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녹여내서 일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 시대에 필요한 공부를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성향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혀 새롭고 낯선 것은 나를 설레게 한다. <새로운 공부가 온다>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공부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었고 이제 시작이다. 그렇지만 인간 고유의 독창성과 공감 능력은 잘 지켜내면서 공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