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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08. 2024

복수냐 용서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석만, 커뮤니케이션북스)

<햄릿>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할 만큼 세계 독보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햄릿>은 4대 비극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중에서도 가장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한, '햄릿'의 이야기이다. 실제 셰익스피어에게는 '햄릿'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작품 제목을 그 이름에서 딴 듯하다.


나는 <햄릿>의 4대 비극을 시험을  때 제목을 적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책 사놓고 몇 번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아직까지도 못 읽고, 약 한 달 전부터 오디오북으로 연거푸 몇 번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과 사람들이 왜 그토록 셰익스피어를 칭송하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햄릿>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언어의 구사력이다. 모두 다 받아 적고 싶을 만큼 그 어느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라도 기발한 명문들이 쏟아진다. 셰익스피어는 연극대사를 통해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을 다양하게 거침없이 표현해낸 언어의 마술사이다.


1.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햄릿이 자신의 고민을 표현하는 ,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


2. "This above all: to thine own self be true." (폴로니우스가 라에르티스에게 조언하는 말,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진실하라.)


3.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햄릿이 호라티오에게 하는 , 착한 것도 나쁜 것도 없다. 생각이 그것을 그렇게 만든다.)


4. "Though this be madness, yet there is method in't." (폴로니우스가 햄릿의 광기를 지적하며 하는 말, 비록 이것이 광기일지라도, 그 안에는 일정한 방식이 있다.)


5. "Brevity is the soul of wit." (폴로니우스가 햄릿에게 하는 말, 간결함이 재치의 영혼이다.)


또한 언어 면에서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처음 사용한 영어 문장들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의  언어 창조력의 대단함을 엿보게 한다. 러브 레터, 퍼스트 클래스, 네버 엔딩 등이다.


다음으로는 선왕 아버지 고스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비극이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우스, 햄릿의 어머니로 이어진다. 이들의 죽음이 이렇다 할 명분도 없이 가벼운 실수로 인해 벌어지면서 흥미를 더해준다. 오필리아는 독초꽃에 반해 연못에 빠져 죽고, 왕비인 어머니는 햄릿을 죽이려고 독약을 탄 술을 모르고 한 모금 마시고 죽고, 폴로니우스는 커튼 뒤에 숨어서 의 말을 엿듣다가 햄릿의 칼에 찔려 죽는다. 나중에는 아버지 선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 왕을 햄릿이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것은 '복수'라는 명분이 있지만 계속해서 죽음이 이어진다는 것이 <햄릿> 비극의 특징이며 긴박감을 더해준다.


어떤 작품에서 하나의 죽음만 다룬다 해도 심각할 진데,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차례로 죽어간다는 것은 자못  의도적이며 치밀한 구이다. 연극을 보면서 다음에는 또 누가 죽을까 궁금해지면서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은 그저 한낱 재미거리로 여기기도 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이 대사는 삶과 죽음이 그저 하나의 과정이며 허무함을 나타낸다고 볼  있겠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햄릿과 연인 오필리아가 변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햄릿은 일부러 미친 척하지만 오필리아는 햄릿의 그 행동에 그만 진짜로 미치고 만다. 예전에 시골에 살 때 머리는 산발을 하고 누더기옷을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같은 데서 자는 미친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어느 날은 자세히 보니까 조금씩 그녀의 배가 불러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미친 여자를 놀리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 흥미로왔던 것이다.


이어서 <햄릿>의 거리를 간단하게 짚어본다. 햄릿은 아버지 덴마크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극심한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러다가 아버지 유령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비밀을 듣게 되면서 복수를 결심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어머니와 관계를 맺어온 숙부 클로디어스는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하는데 이것을 참을 수가 없다. 햄릿은 왕국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와 배신을 하나하나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햄릿은 극적인 내면의 갈등과 의문, 사랑과 배신, 정의와 복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햄릿은 옳고 그른 행동, 삶과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구를 해나간다. 결국은 미치고 모두가 다 죽는 불행한 결말로 끝나고 만다. 그렇지만 햄릿의 내면적인 고뇌와 사회적인 문제들은 두고두고 이슈가 되며, 햄릿과 셰익스피어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게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햄릿>을 듣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책을 읽거나 듣거나 할 때 주로 줄거리와 주제를 찾아보는 편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햄릿>치밀한 복수를 다룬 작품이다.


우리의 삶은 대체로 세 가지 방향성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온전한 나로 사는 것, 타인을 위해  사는 것, 복수를 위해 사는 것 등이다. 하나는 남이야 어떠하든지 순수한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묵묵히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자신의 삶을 버리고 온전히 타인만을 위해 사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이나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복수와 용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다. <햄릿>이 성경에 빗댈 정도로 위대한 작품이라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햄릿은 복수가, 성경은 용서가 주제이다. <햄릿>의 주인공은 복수를 하고 그 과정에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많은 사람들이 죽고, 결국은 자신도 죽으면서 삶이 비극으로 끝난다. 그러나 성경은 죽기 위해 한 아기가 태어난다. 용서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용서는 모든 사람을 살려낸다. 그래서 삶이 희극이다.


사람이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신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다. 거의 유사하게 근접할 수는 있다. 그 차이는 목표와 의도에 있을 수도 있다.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것인가 죽이는 것인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미래 세계는 AI와 메타버스가 세상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난리들이다. 그들에게는 감정도 판단도 독창성도 없다. 인류를 편리하게 할지는 몰라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의 명령에 따라서 복수를 할지는 몰라도 용서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햄릿의 대사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복수냐 용서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잘못을 눈감아 주고 못 본척하며 수동적으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의문 남는다. 적장을 죽인 안중근 의사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몸을 바친 전태일 열사나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삶보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성경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늘에 맡기라고 한다. 이 땅에서 못 갚으면 저 세상에서 행한대로 그 값을 받는다고 말이다. 피조물인 사람이 사람을 해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복수하는 순간 그도 죄를 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할 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복수냐 용서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석만, 커뮤니케이션북스)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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