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과 관계를 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그 사람에 대해서 웬만큼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토록 낚시가 좋아지는 순간>을 쓴 전명원 작가는 내가 매여울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신청해서 만난 분이다. 재능기부로 딱 6명만 받아서 총 6번 함께 글을 쓰고 첨삭을 해주는 수업이었다. 나는 사실 소그룹 합평 모임 같은 게 필요해서 '혹시나' 하고 신청을 했던 것인데,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지도하시는 전명원 님이 글제를 주고 우리들이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면 그 글을 읽고 첨삭해 주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전명원 님이 어찌나 성실하고 꼼꼼하신지 충분한 효과를 누렸다. 대체로 글 쓰는 이들이 자기 글의 허점은 잘 보지 못하는데, 이 수업을 통해서 내 글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물론 보인다고 해시 또 글을 고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다른 이야기이다. 부족한 점이 보여서 잘 고칠 수 있으면 누구나 베스트셀러 작가나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런 사연으로 해서 매여울 수업이 끝난 후로는 전명원 님이 내신 책을 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하면서 몇 권 읽어보았다.
첫 째는 전반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가볍게 쓴다는 점, 둘 째는 글 한 편 한편이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다는 점, 셋 째는 가끔 미문도 숨어 있다는 점 등이 좋았다.
나는 전명원 님의 책을 읽을 때, 아하! 학원 선생님 경력이 있어서 그렇게 꼼꼼하셨구나, 싶었다.
<이토록 낚시가 좋아지는 순간>의 책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사실 낚시와 바둑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한테서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면 외롭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이지 매여울 인연이 아니었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읽어보니 낚시를 하되 '잡아서 놓아주는 이야기'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야장천 혼자서 차를 몰고 강원도 계곡으로 달려간다. 아름다운 계곡 이야기, 낚시를 하다 만난 사람들 이야기, 눈 맞춘 일에 대해 추억하는 이야기, 미국 언니집에 갔다가 동네 아주 작은 호수에서 낚시한 이야기, 일본에 가서 낚시가게에 들른 이야기 등이다.
"뭐? 놓아주기 위해서 잡는다고?"
나라면 싱싱한 회를 먹기 위해서 잡을 것 같다.
그렇지만 조금 비약적으로 말해 본다면 어차피 사는 일 자체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산행도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내려오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어떤 일에 매진해서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결국은 그 시점부터 다시 죽음이라는 곳을 향하여 가야 한다. 원하던 원치 않든 누구나 다 그 길을 간다. 다른 길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놓아주기 위해서 잡는 것이다. 학벌도 재물도 권력도 명성도 건강도 예술도 다 그렇다. 다만 스스로 살아생전에 잡은 것을 기쁘게 놓아줄 줄 아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애써 이룬 것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가 아닌가의 차이라고 할까? 움켜쥐고 있어도 죽음이 다가오면 다 놓고 가야 한다. 자발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역사는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낚시에는 흥미가 1도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내 최애 책인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포올러스, 시공주니어)을 다시 꺼내든다.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살아간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이루기 위해서, 잡기 위해서, 오르기 위해서. 그리고는 미련 없이 잡은 것을 놓아주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