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서호공원은 내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이다. 북수원온천 가는 길에 서호공원 들러 한 바퀴 저녁 산책을 하곤 한다. 가끔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꽃뫼공원과 서호공원을 같이 걸을 때도 있다. 집에서 버스로 20여 분 거리이다.
봄, 신문에 서호 꽃뫼공원 비 오는 날 청보리밭 풍경사진이 넘 예쁘게 났길래 '함 가야지' 그러고 있다가 오후 시간에 마음먹고 나선다. 꽃뫼공원 청보리밭 들렀다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서호공원도 걸어보리라.
화서역에 내려 서호꽃뫼공원에서 청보리와 예쁘고 앙증맞은 들꽃들과 눈맞추고, 서호공원 호수와 장미와 갈대와 새들을 만난다. 일몰 시간은 7시 45분, 그런데 날씨가 흐려 노을을 볼 수가 없다.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저녁 노을 잔상과 이제 막 눈을 뜨는 달과 별과 가로등과 침묵 속에 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수와 속삭이며 걷는다. 가끔씩 지나가는 전철이 소리를 내며 정적을 깬다. 드문드문 아베크족과 가족들과 나홀로 운동하는 이들이 지나간다. 내 걸음은 아주 느린 걸음 천천히 걷기다. 호수가 걷기에 딱 적당하다. 사진도 찍어가며 사색도 하며 고요히 걷는다.
여름, 이곳에 와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다. 호수랑 하늘이랑 구름이 하나가 되어 나를 반긴다. 호수에 비친 하늘이 구름이 전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가을, 호수를 다 돌 즈음 황금들판은 어둠 속에 가려 윤곽만 보이고 갈대와 강아지풀도 어둠에 묻힌 걸 플래시를 터트려 건져낸다. 더욱 또렷해지는 달을 담으려다가 숨어있는 거미줄도 발견한다.
"가까운 곳에 아름다움이 있다."
"고요 속에 속삭임이 있다."
모두가 일을 접는 저녁시간에 눈을 뜨고 일을 시작하는 이가 있고, 까만 밤에 빛을 드리우고 이야기하는 이가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삶의 진지함을, 생명을, 인생의 무상함을,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겨울, 눈 쌓인 서호공원을 호수 따라 소복소복 걷는다.그림 그리는 산행 친구와 둘이서다. 따끈한 차도 마시면서 도란도란 재미나다. 날씨가 살짝 춥고 미끄럽지만 털모자, 장갑, 아이젠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기에 눈을 뭉쳐서 던져도 보고 흩뿌려도 본다. 눈바닥에 앉아서 포즈를 취해도 본다.
꽃뫼공원과 서호공원은 1시간 정도 걸으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이제 반바퀴 돌고 나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소리를 듣는다. 수시로 기차가 지나간다. 마음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기차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염없이 여행하고 싶던 소녀적 꿈은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있는데 기차소리 들으며 시베리아 대륙도 횡단해 본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여행은 새로운 삶의 활력소다. 나는 감히 '삶'의 명제를 '여행하기 위해서 산다'라고 말해보고 싶다. 누구와 함께 하든, 나홀로 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가 정답일 것이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다른 대답을 쓰는 것은 다분히 딴청이다. 그래도 '여행' 답안을 작성하는 마음은 기쁘고 설레고 경쾌하다.
하기사 '인생'이라는 게 '본향'을 떠나 이 세상 잠시 잠깐 왔다가는 '나그네 인생'이니까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맘껏 보고 누리고 살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있겠는가! 그렇다고 '먹기 위해 산다'던가 '일하기 위해 산다'면 그건 좀 아니겠기에.
여행길에서 만나는 푸른 하늘, 호수, 구름, 기차, 나무와 새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나는 지금 열애 중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성탄 카드 그림을 그린다. 서호공원 풍경을 그리고 옆에 하얀 눈이 쌓인 성탄 트리를 그려 넣는다. 시도 한 수 지어본다.그리운 이들에게 성탄 카드에 시를 적어 안부를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