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by 서순오

지나간 2016년, 2017년, 2018년은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뜻밖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여러 번의 전시회(성남아트센터와 지구촌교회 수지성전, 분당성전)와 또 2018년 신예회 작가 그림으로 캘린더와 성탄카드도 만들게 되었다. 이어서 장신대 백인숙 공간에서도 전시회를 했다.

하루하루가 다른 신비로운 경이의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랄까?

그 언젠가부터는 소녀시절의 감성이 새록새록 깨어나더니만 벅찬 감동 속에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날마다 설렘과 기대와 소망이 넘친다.


노래 같은 시 같은

꽃 같은 풀 같은 나무 같은

호수 같은 바다 같은

하늘 같은 구름 같은

나비 같은 꿀벌 같은

그리움 같은 속삭임 같은.


<소명>은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모세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다. 양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서 활활 타오른다. 불은 나무를 태우지는 않고 불꽃만 보인다.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위기에 처해진다. 그래서 바구니에 담아 강에 버려진다. 그런데 이집트 공주가 모세의 바구니를 건져 양자로 삼는다. 신기한 것은 모세의 친어머니가 궁궐에모로 들어가서 모세에게 젖을 물려 키우며 신앙심도 심어준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자라 어느덧 40세의 어른이 된다. 왕위를 계승해도 좋을 나이가 된 것이다.


어느 날 히브리 동족들이 다투는 걸 보고 싸움을 말리다가 그만 사람을 죽이고 만다. 멀리멀리 도망을 간다. 광야에서 40년을 무명으로 살아간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양을 치면서 왕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을 산다.


그런데 지금 80세가 된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소명을 받는 것이다.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내라"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이다. 도망쳐 나온 이집트로 다시 들어가라는 것이다.

이때 보통 사람이라면 어떤 대답과 태도를 취했을까?

"절대 안 돼요. 제 목숨이 위태로와요."

이러지 않았을까?


그러나 모세는 소명(부르심)에 응답한다. 광야에서 주어 든 지팡이 하나를 들고 이집트 왕궁으로 간다. 그리고 10가지 재앙 대결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소명을 완수해 낸다.


모세의 이야기는 <모세>와 <이집트 왕자>로 뮤지컬 연극으로도 공연되고 영화로도 상연되었다. 나는 둘 다 여러 번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마도 그 영향이지 싶다. 모세의 소명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저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삶은 없다. 소명이든 사명이든 다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소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거나, 발견했다 하더라도 매진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소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이루거나, 사람마다 서로 다른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소명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최종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것은 교회 사역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문학을 좀 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사역지가 좋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큰 교회 교회학교서, 병원 원목실에서, 경찰서 경목실에서, 신학원에서 한 10여 년 이상 사역을 했다. 만학으로 신학을 했기에 10여 년이라는 세월도 내게는 꽤 길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길이 아니었다.

"그럼 왜 제가 이런 사역들을 해야 했나요?"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좋은 글도 그림도 나오지 않겠니?"

기도 가운데 응답을 받았다.


나는 내 소명의 자리로 돌아온 걸 감사한다. 그리움을 가득 담아 글과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이 그저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길을 한참 돌아오느라고 조금 늦었다 싶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해 왔던 일이기에 앞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많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소명> (서순오, 20호, 아크릴화)
<소명> (서순오, 20호, 아크릴화) 그림으로 만든 2018년 달력의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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