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사건) 한 후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하였다. 어른 장정(남자어른)만 60만 여 명이었으니 그에 딸린 여자와 어린이까지 포함하면 200만 여 명의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없는 광야를 걸어서 이동을 한 것이다. 그들이 가야할 곳은 가나안 땅이었다. 이 사람들은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그 기둥이 멈추어 서면 그곳에 천막을 치고 머물렀다. 며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일 때에야 천막을 걷어서 메고 다시 길을 갔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머물 때 가장 가운데는 성막을 설치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동서남북으로 4지파씩 성막 주위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 성막은 거룩한 곳,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곳이다. 성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값을 속죄하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들어가서 그들의 위해 제사를 드려서 죄를 없애주는 곳이었다.
성막 가장 안쪽에는 지성소가 있다. 그곳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대제사장이라도 죄가 있는 상태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죽고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대제사장 옷에 끈을 매달아 지성소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 끈을 잡아당겨 끌어내었다.
성막 안의 성소와 지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이다. 성막은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한 주일 동안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지은 죄를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속죄하고 기쁘게 하나님을 만나는 의식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나는 성막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내가 지은 죄와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생각해보면서 그렸다. 앞으로는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예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몇 년 전, 그 해의 고사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였다. 사람이 살면서 잘못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잘못을 해도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또 사람이다.
그러나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잘한 일이고 잘못한 일인지는 금방 알 수가 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게 있다. 잘하면 기분이 좋지만 잘못하면 기분이 나쁘다. 잘하면 자랑스럽지만 잘못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공부로도 관습으로도 무엇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를 잘 분별할 수가 있다. 이성의 잣대가 있어서 정확하게 판별을 해준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번째로는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잘못을 해놓고도 양심이 무뎌져서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니까 잘못이 잘못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안하무인인 사람이다. 자기 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다. 잘못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상관을 안 한다. 벌을 받고 감옥에 가도 뉘우침이 없다. 석방되면 또다시 같은 죄를 저지른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다.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상관 안 한다.
내가 100대 명산을 찍으면서 대체로는 좋은 추억이 많지만 딱 한 번 사람과의 관계에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아마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가 않을 것이다.
양산 천성산 산행에서 리딩 대장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정상 인증도 못하고 내려온 일이다. 내가 홈페이지에 그 사실을 올렸다고 리딩 대장에게 '사이버 명예 훼손죄'로 고발당할 뻔했다,
양산 천성산은 멀어서 왕복 10시간이 걸리고 먼 만큼 산행비도 4만 5천 원이나 한다. 그런데 정상을 찍으려고 갔다가 후미와 함께 해주기로 한 대장은 함께 가다가 훌쩍 앞서 가버리고, 후미에 딱 한 사람만 남겨두고 올라오던지 말던지 상관을 안 했다면 분명 잘못이 있는 것이다. 만일 차 안에서 후미와 함께하겠다는 말을 안 했다면, 나는 초행길이기에 누군가와 짝이 되어 함께 산행을 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 먼저 갔다 온 산우님의 트랭글도 다운로드해 놓았다. 산행 초반에 대장에게 전화를 하니까 전혀 다른 길로 올라오라고 하기에 나는 길을 아는 줄 알고 따라갔던 것이다. 그런데 여산우님 한 분과 나와 간식도 같이 먹고 쉬었는데, 곧 나만 남겨두고 가버린 것이다.
그때 그랬다. 대장이 나보고 먹을 걸 많이 싸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방이 무거워서 나 먹을 것만 싸왔다고 했다. 혹시 아는 분이 같이 산행하면 무거워도 더 싸오는 편인데, 이번에는 혼자 신청해서 그랬노라고.
아마도 대장이 그때 화가 난 모양이다. 아침도 안 먹고 나오고 점심도 안 싸왔단다. 애들은 다 해외로 좋은 대학에 유학 가 있다고 자랑하는 걸 보니, 아마도 혼자 사는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음식이야 적게 싸와도 나누어 먹으면 될 일이고, 그 일 때문에 후미에 나를 혼자 두고 둘이서만 휙 앞서서 가버렸다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내가 하산해서 불만을 얘기하니까 아주 저돌적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될 일인데, '사이버 명예 훼손죄' 운운하면서 말이다. 뭐 그리 내세울 만한 명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급기야 나도 화가 나서 산악회 홈피에 '대장이 길도 모르고 안내를 해도 되는지' 글을 올렸고, 곧 내렸고, 그 일은 몇 번의 실랑이로 끝이 났다. 나보고 '2천만 원 벌금을 물든지, 감옥에 가든지' 하라며 아주 당당했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몇 년 전 차를 렌트했다가 소송건에 휘말린 사건이 하나 생각이 난다. 나는 차를 운행하다가 걷는 게 좋아서 차가 딱히 필요하지 않아서 없앤 상태였다. 해외에 사는 딸아이가 한국에 들어왔기에 함께 여행도 가려고 차를 3일간 렌트를 했다. 차를 예약하려고 찾아갈랬더니 일이 있어서 법원에 가 있다면서 전화로 예약하면 필요한 날에 집 근처로 가져다주겠단다.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갑자기 당일 아침에 가져다 달라는 차를 이전 날 밤 8시에 가져다주겠단다. 그래서 나가서 보니 그쪽에서 어두운 데서 후레쉬를 터뜨리며 막 차 사진을 찍어댄다. 나는 핸드폰으로 비춰가며 잘 보이지도 않는 약관 같은 데 싸인을 하고 차를 렌트했다.
그런데 내가 렌트한 차를 타고 한 번 주차를 하면서 앞 주차 턱 위에서 살짝 스치는 느낌이 있어서 안을 무릎을 구부리고 살펴보니 연필로 그린 것 같은, 약 0.5cm 정도 되는 선이 아주 가늘게 희미하게 보인다. 번호판 아래라 전혀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그런데 차를 반납한 후 한 1~2개월이 지나서 법원에서 나에게 소송장이 날아왔다. 내가 차를 파손해서 앞 범퍼, 뒷 범퍼를 교체한 값이 130여 만원 들어갔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도 기가 막혀서 전화를 했더니 렌트회사 대표가 부산에 있어서 만날 수는 없고 법적으로 하란다. 그래서 이의제기서를 써서 법원에 갖다 제출했다. 또 소송장이 날아오는데 내가 반납할 당시의 차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차의 찌그러진 앞 뒤 범퍼 사진이 첨부된 소송장이다. 그렇게 몇개월을 법원에 왔다 갔다 했다.
나중에 그 회사가 망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새 주인은 좋은 사람이라 잘 마무리가 되었다. 사정을 얘기하니까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세상에나! 그 회사가 차 렌트를 해서 먹고 산 게 아니라 그렇게 가짜 사기 소송을 해서 먹고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망하는 건 당연하다.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철면피 같은 사람에게 붙이는 말인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 같다. 정치인이든 법조인이든 공무원이든, 아니 일반인이든 잘못을 알면 고칠 텐데 아예 잘못인 줄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우선 나부터 그렇다. 지나긴 시간들을 돌아보자. 잘못이 분명하다면 고쳐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성막에서 예배를 드리며 나를 찬찬히 비추어 보자. 앞으로 다가오는 해에는 전혀 새로운 사자성어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선 나부터 바로잡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