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순오 Mar 17. 2024

추억을 낚아보는 정동진 바다 산책

강릉 괘방산+정동진

해늘에서의 두 번째 산행이다. 산행 짝꿍 썬문님과 함께 간다. 썬문님은 해늘에서의 첫 산행이다. '썬문'은 '해과 달'이라는 뜻인데, 내 꼬리 잡고 따라온 것이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란도란 산행할 수 있겠다.


해늘은 오늘도 아침식사 대용으로 떡에다 베지밀까지 준단다. 찬조하신 두 분 조나단님과 붕어님에게 감사하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고운님들 덕분에 아침이 든든하겠다.


점심은 싸가야 해서 새벽 3시에 깨서 약밥에다 시금치나물과 어묵고추볶음을 만들고, 후식으로 한라봉,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를 챙다.


나의 집결지는 오전 7시 사당역 10번 출구여서 집에서 1시간 30분 잡고 출발한다. 아침에는 버스가 무지 빨라서 탑승시간 30여 분 전에 도착한다.

'너무 빨리 왔나?'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가 타야 할 차가 보이지 않는다. 2주 전 해늘 첫 산행에서 뵌 산우님들도 어디에 모여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너무 일찍 온 거야.'

요즘 날씨가 낮 기온은 10도가 넘어간다는데, 아침저녁으로는 춥다. 움직여야 덜 추위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해본다.


탑승시간이 다 되어가니 여산우 님 한 분이 나를 알아본다.

"수선화님 아니세요?"

"네. 맞아요."

그래서 남산골 대장님과 함께 모여있는 10여 분 산우님들과 인사를 하고,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와서 탑승을 한다.


썬문님은 군자에서 탄다. 함께 타는 산우님들과도 반갑게 인사한다.


버스에서는 유끼에 대장님 사회로 해늘 오늘의 리딩 남산골 대장님과 임원진 및 수고하시는 분들 소개를 한다. 이어서 앞에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를 한다. 얼굴도 안 보고 소개를 하니 여전히 누가 누군지 아직 매치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알아가는 것이니 기다려야 하리라.


버스는 오전 11시에 강릉 안의진에 도착한다. 철썩이는 푸른 바다가 우릴 맞이한다. 그런데 바다 쪽 전봇대에서 쳐진 줄에 '위험 고압전류'라고 쓰여 있어서 저곳은 높아서 아무나 만질 수 없는 곳인데, 굳이 위험 표시를 했구나 싶다.


괘방산 초입은 가파른 데크길로 시작된다. 한바탕 다리와 스틱을 짚은 팔에 힘을 주고 올라가니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왼쪽에 동해바다를 끼고 걷는데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어 상쾌하다.

"햐! 좋다."

일주일에 한 번 이런 호사를 누린다. 무조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난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맘껏 누린다는 것, 이것이 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좋은 님들과 정겹게 산행하는 일, 이보다 더 값진 일이 있으랴! 나는 정녕 산바람이 난 게 틀림없다.


친목산악회를 오면 자주 쉬어간다. 그래도 보폭이 빠른 산우님들은 앞서가고, 느린 산우님들은 뒤에서 걷는다. 나와 썬문님은 늘 후미 쪽이다. 보폭이 약 2km 정도라서 별로 욕심을 안 낸다. 그런 면에서 썬문님과 나는 산행 짝꿍으로 잘 맞는 편이다. 앞으로도  자주 함산하자고 그런다.


괘방산 산행은 안진~활공장~삼우봉~정상~정동진 코스로 약 9km, 점심시간 포함 5시간 소요 예정이다.


괘방산 활공장 데크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해늘님들이 싸 오신 음식을 보니 엄청나다. 모닝빵, 샌드위치 속, 배추부침, 부꾸미, 돼지껍데기, 천혜향, 딸기, 청포도, 두부부침, 도토리묵, 냉이무침, 새싹, 찰밥, 약밥, 김,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소시지, 김치볶음, 아주 잔치상이 따로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우님들과 함께 먹으려고 정성껏 준비해 오신 진심에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삼우봉을 지나 괘방산 정상을 향해 간다. 완만한 오름길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재미난 길이다.


군데군데 바위 위에서 동해바다와 등대 뷰가 멋진 곳이 나타난다. 두세 분 남산우님들이 한 분 한 분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신다. 특히나 호타루님은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오셔서 사진에 담아 주신다. 해늘 여산우님들이 아주  신이 났다. 나이가 들어도 예쁘고 싶은 것은 여자들만의 자유이니까 무죄다. 훗!


드디어 괘방산 정상이다. 높은 철탑이 몇 개 보이고 정상은 살짝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나온다. 이정표를 자세히 안 보고 걸으면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위치이다. 서서도 앉아서도 혼자도 둘이도 여럿이도 인증을 남기고 하산 시작한다.


"하산길이 길어 지루해요."

누군가 얘기를 한다.


내리막길은 쉬워서 쭉쭉 내려가본다. 그러다가 데크길 오름길이 나타나면서 정동진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저기가 우리 목표점이다!"

또 사진을 담고 부지런히 내려간다.


도로길이 나오면서 삼거리 지점이다. 아무래도 도로길로 가면 쉽게 바다가 나오지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정표를 보고 정동진 방향 산길로 들어선다. 많은 이들이 다녀간 흔적을 철조망에 리본으로 달아 놓았다.


트랭글 안내가 나온다. 이제 겨우 4km를 걸었고, 아직도 5.5km를 더 걸어가야 한단다.

"오마나! 그렇게나 많이?"

그래서 하산길이 지루하다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육산이 좋아서 대체로 만족을 다. 싼타님도 제법 잘 걷는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괜찮다."

봄꽃들이 조금씩 벙그는 모습도 관찰하며 천천히 느리게 걷는다.


유끼에 대장님이 가끔 한 번씩 우리가 잘 따라오고 있나 살펴주신다.

"수선화!"

"네."

이름을 불러주면 위치를 알리는 대답을 한다. 나는 큰딸이라 언니가 없지만 유끼에 대장님이 꼭 큰언니 같다.


봄꽃 소식은 지금 막 꽃 피울 준비 중이다. 소나무도 오리나무도 초록물이 올라오고 있다.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도 여기저기 꽃망울을 동그랗게 달고 막 피어날 태세다. 조금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제히 산을 온통 환하게 밝히울 것이다.


유끼에 대장님은 마지막 겨울을 보려고 괘방산에 왔다는데 나는 봄을 찾느라 바쁘다.


당집도 지나고 멋진 소나무길, 우람한 소나무들도 만나며 걷지만 정동진은 아직이다.


그래도 보폭이 느려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는다. 그것이 산행의 묘미이다.


참, 거의 하산 완료 직전에 유끼에 대장님이 노란 생강꽃 두 송이 꺾어서 들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꽃을 모자에 달고 입에 물어보라 하고는 사진을 찍어 주신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이런 낭만 멋쟁이가 어느 산악회에 있을까?


정동진1리 <부산덕이 두부>에서 두부전골과 메밀전병으로 뒤풀이를 하고 정동진 바다를 걸어볼 예정이다.


뒤풀이 끝나고는 또 식당 옆에 노오란 수선화가 피었다고 나보다 더 반기면서 그 옆에 나를 앉힌다.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요?"

노란 수선화가 이쁜가? 내가 이쁜가 내기를 해본다.


정동진 바다산책을 한다. 나는 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유명한 일출명소 정동진을 못 가봤을까? 내게는 아주 비밀스러운 추억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하마터면 결혼할 뻔한 그가 생각이 날 것이다. 물론 그와 함께 여행을 한 적도 정동진에 가본 적도 없다. 다만 그가 만든 어떤 것이 그곳에 있다.


그런데 오늘 간 정동진1리에는 그것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정동진 핫포토존에 그의 명찰이 달려 있었는데 말이다.(아, 저기 위에 있다. 그런데 오늘은 가볼 시간이 없다.)


내가 그를 잊지 않았듯이 그도 나를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럴 때 보면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이 생각난다.

"일평생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않는 사람 있다."

그런데 나는 그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이다.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미팅을 하고 잠시 데이트를 하는 정도, 그가 예술을 하기에 예술을 좋아하는 내가 빠져든 것이랄까?


그러나 결혼은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둘이서 서로 함께 일평생 친구처럼 살아가야 하니까. 나는 지금도 그와 결혼하지 않은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는 너무 야망이 컸고, 가난해서 집안 배경이 별로 없는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나와 결혼했다면 그는 생계를 꾸려가느라 허덕이면서 높은 경지의 예술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야망에 걸맞는 이와 결혼했기에 정동진이라는 일출 명소에 그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나는 그를 축복하며 그의 작품이 우뚝 서 있는 저기 크루즈에도 언젠가는 가볼 수 있으리라 기약을 해본다.


다음으로는 사람이 너무 많은 장소는 안 좋아해서다. 새해 일출을 보려고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그중 한 사람으로 끼고 싶지는 않다. 평일에는 그 어느 바다, 산이라도 일출은 다 멋이 있으니까 내가 가 있는 그곳에서 보면 된다.


뒤풀이 후 해늘님들과의 정동진 바다산책은 하하호호깔깔히히 모두의 숨겨둔 웃음보가 빵 터지는 순간이다. 그 신비스런 파도 때문이다. 스르륵 밀려와서 모래사장을 적시고는 또 사악 밀려나는 바닷물, 그 하얀 비단과 망사천을 섞어 짠 듯한 물살이 우리 발목을 일순간 적셔놓는 것이다. 살금살금 건너뛰면서 우르르 달려갔다가 되돌아오고, 다시 달려가 바위 포토존으로 살짝궁 올라서는 재미, 하하, 사진작가님들은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고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아니 사춘기 소녀인 듯 마냥 즐겁다. 이 순진무구한 천연의 기쁨, 정동진 바다는 어느새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놓는다. 해늘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더욱 친근해진 괘방산 산행과 정동진 바다 산책이다.


아, 언어가 부족하다. 정동진의 아름다움과 우리들의 즐거움을 표현하기에는. 그래서  그냥 사진과 동영상으로 급하게 갈무리해 본다.


그래도 감사는 잊지 못한다. 리딩해주신 남산골 대장님, 후미까지 자상하게 챙기신 유끼에 대장님, 그리고 떡과 베지밀, 아이스크림 쏘신 해늘님들, 늘 애쓰시는 총무님, 함산 한 해늘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특별히 만나서 내게 사랑고백(?)을 해주고, 집으로 돌아갈 때 찐한 포옹에 귓속말로 속삭여준 애교 넘치는 보애님, 내 꼬리 잡고 따라와서 나보다 더 웃고 더 맛나게 먹고 더 즐긴 썬문님에게 오래오래 오늘을 기억한다고 전한다. 날마다 해피데이!

괘방산 걷기좋은 산길
맛있는 점심식사 잔치
괘방산에서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괘방산 정상에서
괘방산에서 동해바다 조망
봄꽃들과의 만남
정동진에서
괘방산 산행기록 : 총 9km, 약 5시간 소요(점심, 휴식 시간 포함)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있을 때 섬진강 산수유, 매화처럼 곱고 찬란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