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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r 23. 2024

이별과 슬픔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천 청계산+진달래능선

늘 산행하는 토요일! 내일은 여고동창 모임이 있어서 하루 앞당겨 과천 청계산을 간다. 수도산님들과의 만남이다. 인테리어 대장님 리딩인데, 서우님, 세브란스님, 산이랑님, 천수님, 말뫼님, 올라님, 그리고 나, 모두 8명 참석이다.


꽃이 조금 피었을까? 요즘 날씨가 따뜻하니까 꽃 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어제도 도서관 앞에 보니까 노오란 산수유꽃이 만발하였다.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에서 오전 11시에 만나 청계산 진달래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날씨는 따뜻하고 좋아서 조금 오르다가 겉옷을 벗고 출발한다. 초입에 할미꽃이 꽤나 많이 피어있다. 노란 수풀 속에 숨어 있어서 잘 안 보이는데 여산우님들이 잘 찾는다. 눈이 보배이다.


청계산 진달래능선에 진달래가 꽃몽오리를 맺고 일제히 터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꽃들은 벌써 활짝 핀 것도 있다. 꽃 탐을 하며 걷노라니 모두들 신이 난다.


'진달래꽃' 하면 김소월의 시가 생각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날 때에 꽃을 뿌려 드린다? 그 정서가 참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떠나는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가운데서도 눈물을 꾹꾹 참아내는 남아있는 이의 마음은 더욱 처연하게 슬프다.


그러나 사랑은 이별과 슬픔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다음 주쯤에는 진달래꽃이 제법 피어 한창 이쁘겠다. 꽃 보러 다시 와야겠다. 꽃을 보며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김소월의 시를 읊어주어야겠다.


점심은 진달래 능선 중간쯤에 평평한 터를 잡아 돗자리와 타프를 치고 빙 둘러앉아서 먹는다. 늘 그렇듯이 서우님표 어묵에 콩나물, 말뫼님표 떡국떡, 세브란스님표 냉이까지 더해져 향긋함이 진해진다. 산이랑님 명품김밥에다. 번데기, 오징볶음, 빵, 영양밥, 떡까지 아주 푸짐하다. 후식으로는 온갖 커피를 섞어서 라테를 만들어 먹는다. 어느 커피점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바로 수도산 인테리어커피다.


점심 먹고는 조금 아래쪽을 보니 진달래꽃이 만개한 가지가 나와 있다. 카메라에 담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흙길 능선길 살방살방 걷기 좋다.


한참 오르다 보니 데크길이 나온다. 그런데 계단이 엄청 많다. 정상까지 거의 1,500여 개나 된단다.


"햐! 이 계단 만드느라 고생 좀 했겠다. 오르는 우리도 힘든데, 만든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꼬?"


이런 계단을 오를 때면 고마운 이들이 있어서 우리가 한결 쉽게 산을 오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천연의 길, 데크길이 아닌 흙길을 밟고 걸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개발이란 그렇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누리고 싶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말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경관을 해친다고 싫어한다.


나는 어느 쪽일까? 아마도 중도가 아닐까 싶다. 오르려면 힘드니까 개발의 힘을 빌어 조금이라도 쉽게 오른다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계절 언제 가도 좋은 산!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도 누리고 싶은 산!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또 편리한 시설이 있으면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단을 계속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주변 조망을 하며 잠시 쉬어간다. 더 오르니 돌문바위와 충혼비 안내가 나온다.


가파르지만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오르니 매바위봉이 나타난다. 어떤 여산우님 하나가 암릉에 앉아서 쉬고 있다. 사진 부탁을 하니 조금 쉬었다 찍어준단다.

"여기도 예쁜 데요."

일어서지 않고 자기 앉은자리에서 찍어주겠다고 나보고 전망 좋은 암릉 위쪽으로 올라오라는 얘기다. 나는 매바위봉 돌비에서 찍고 싶은데, 그걸 찍어주려면 여산우님이 암릉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와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생략하고 앞서간 수도산님들을 따라간다.


드디어 청계산 정상 매봉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념사진을 찍고 단체사진도 남긴다.


청계산 매봉 전망대라는 나무판에 "쉬어가도 괜찮아요. 쉼 없이 달려온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정상에 서는 일은 쉼 없이 오를 때 가능한 것이다. 글귀를 단지 한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고 하산을 시작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른 나뭇잎들이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다. 추위와 바람과 눈비에 그냥 떨어져 버릴 만도 한데 마치 꽃처럼 마른 채 달려있는 것이다. 새싹이 나면 마지막 잎을 다 떨구리라.


또 하나, 산길에서 만나는 소나무들의 멋스러움은 보고 또 보아도 그 기개가 자못 감동스럽다. 문인화를 시작해서 작년 1년 동안 매화를 그리고, 올해는 소나무, 수국, 국화를 그려보는 중인데, 소나무 등걸과 나뭇가지의 어우러짐과 뻗침 정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이 취미로 하고 있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산행을 하는 재미가 더 배가되었다고나 할까?


그렇잖아도 보폭이 느린데 자꾸만 해찰을 하니 선두를 따라가는 게 어렵다. 이런 습관은 혼자 산행해야 딱 알맞은데 말이다. 앞에 가는 산우님들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겨우 따라잡지만 또 이내 사이가 벌어진다.


"당신을 만난 것은 나에겐 행운입니다"

누군가 작은 돌에 써놓은 글씨이다. 어떤 커플이 산행을 왔다가 적어놓았을 것 같다.


정자 옆 계곡은 지난해 여름에 와서 알탕을 했던 곳이다. 삼복더위에 친구랑 둘이서 참 시원했었다.


선녀폭포로 내려간다. 물이 조금 적은 편이지만 한여름 가뭄 때보다는 낫다. 이곳에서도 수도산님들과 즐겁게 물놀이를 했었다. 이런저런 추억들이 얽힌 장소이다.


내려올수록 꽃이 많이 피어있다. 생강꽃, 산수유콫, 제비꽃, 꽃다지 등을 담는다.


아, 그런데 군부대 앞까지 내려와서는 선두를 놓쳤다. 옛골로 가는 길은 내가 아는 길인데,  이정표는 옛골로 가려면 도로길로 돌아가라고 되어 있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마침 부부인 듯한 조금 나이가 든 두 사람이 오고 있다.

"이 길로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갔나요?"

그렇단다.

"옛골 가는 길 맞아요?"

또 그렇단다.


그래서 나는 수도산님들이 기존에 가던 길로 안 가고 새로운 길로 갔나 해서 부지런 걸어가 본다. 긴가 민가 싶었지만 한번 발을 내디뎠으니 계속 간다.


핸드폰 배터리는 삐삐 거리면서 아웃된다고 알린다. 그래서 연락도 못하고 옛골 종점 정류장으로 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다. 내일이 아들 생일인데 여고동창모임이 있어서 오늘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대장님에게 미리 얘기했기에 가면서 문자를 해도 되리라


그런데 내가 탄 버스가 한두 정류장 지난 후에 서우님이 탄다. 뒤풀이를 안 하고 오는 것이다. 급히 인테리어 대장님에게 문자를 해달라 한다. 충전지를 찾아서 꽂고 배터리가 5% 정도 되어서 나도 문자를 보낸다.


이렇게 해서 오늘 청계산 산행은 수도산님들보다 내가 한 2km 정도는 더 걸었다.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진달래능선~혤기장~매바위~매봉~선녀폭포~군부대~옛골 코스로 총 9.4km, 4시간 30분(휴식, 점심시간 포함) 소요되었다. 청계산은 혼자서도 여러 번 오른 산이라 조금 더 여유로운 산행이 된 셈이다. 

진달래능선 안내
진달래
우리들의 점심식탁
환상의 커피
데크길
청계산 안내
돌문바위
청계산 매봉 정성석과 매봉 전망대
미른 나뭇잎길
선녀폭포
산수유, 제비꽃
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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