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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Apr 04. 2024

진달래꽃도 보고 울창한 전나무 숲길도 걷고

창원 천주산+진달래

세월은 참 빠르다.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3월 말이다.


올해는 꽃다운 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제 막 꽃몽오리를 맺고 있는 꽃들, 다른 꽃들보다 일찍 피어난 몇 그루의 꽃을 보았을 뿐이다. 매화, 산수유, 제비꽃, 할미꽃, 진달래 정도이다.


오늘은 진달래꽃이 예쁘다는 창원 천주산을 간다. 남쪽이니까 꽃이 제법 피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그렇지만 엊그제 비가 많이 와서 꽃이 많이 떨어졌을 것도 같다.


이전에 진달래꽃이 예쁜 합천 황매산, 대구 비슬산, 장복산 등을 다녀왔다. 황매산과 비슬산은 그때도 비가 온 뒤라 꽃이 흡족하게 피지는 못했지만, 만개한 꽃들도 있어서 눈 맞추면서 걸었다. 작년해 간 진해 장복산은 진달래꽃도 벚꽃도 아주 장관이었다.


나는 한 번 간 산보다는 새로운 산이 좋아서 천주산을 선택했다. 하고 많은 산 중에 갔던 산을 또 가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곳을 보고 싶은 것은 다분히 내 성향이다. 진달래 꽃무리 속에 파묻혀 봄을 맘껏 누려야겠다.


낮 12시 굴현고개에 도착한다. 운전기사님이 길을 조금 잘못 들어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20여 분 늦어졌다.


굴현고개에서 천주산 오르는 길은 짧지만 조금 가파르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르다 보니 진달래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양지라서 그런 듯하다. 올 들어 만개한 진달래는 처음 본다.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서 처음 만나는 꽃은 엄청 반갑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분홍분홍 마음에 꽃물을 들이며 걷는다.


아직 천주산 정상에는 진달래꽃이 거의 피지 않았다고 가끔 하산하는 이들이 알려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달래꽃을 군데군데 만나면서 산을 오르기에 기분이 최고이다.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이맘때쯤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꽃들과 초록물이 올라오고 있는 나무들이 참 예쁘다. 어쩌면 생명의 신비인지도 모른다. 경외감을 가지며 꽃들과 이야기 나눈다.

"참 장하다!"


천주봉에 오르니 만개한 진달래가 곱다. 아주 활짝 피어서 돌비와 함께 찍으니 멋스럽다. 천주산의 '천주'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뜻의 이름이라는데 이 봉우리는 산이름에서 따온 듯하다.


천주산에는 정자가 꽤 많은데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버스가 창원까지 내려가는 데만도 거의 5시간이 걸렸다. 산행을 12시에 시작했으니 한참 오르고 오후 1시 정도가 되니 배가 고픈 것이다.


나는 새벽 5시에 아침을 먹어서 배가 고픈데 짝꿍은 휴게소에서 9시 30분에 김밥을 먹어서 배가 안 고프단다. 서로 밥 먹은 시간이 다르니 그렇다. 이래서 혼자 오는 게 편하기는 하다. 내가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산행 보폭도 내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우리는 조금 더 가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정자쉼터를 그냥 지나친다.


진달래꽃도 화사하지만 생강꽃도 개나리도 예뻐서 자꾸 발길이 머문다. 마른 낙엽 속에서 이제 막 피어나는 귀한 꽃 산자고도 만난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어떤 여자분 혼자서 부산에서 왔다는데, 진달래꽃밭에 멈춰 서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느라 길을 못 가고 있다.


"사진 찍어드려요?"

"혼자 찍으니까 얼굴만 크게 나오고 진달래가 안 찍히네요."


그래서 최대한 예쁘게 담아드리고 간다. 내 모습도 몇 장 찍어본다. 꽃밭에서는 늘 꽃이고 싶다. 꽃을 보러 오는 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천주산 진달래꽃이 만개한 곳은 진짜 이쁘다. 산 전체가 온통 진분홍 색으로 칠해진 느낌은 안 나지만 그래도 무리 지어 덩어리 덩어리 분홍 꽃물이 든 진달래 무리 속에서 행복하다.


사람들의 신심이 쌓아놓은 돌탑은 꽃무리와 잘 어우러진다. 소원을 이루고픈 마음을 담아 돌탑을 쌓는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돌탑을 쌓아본 적은 없지만, 산에서 보는 돌탑은 멋스러워서 발길이 멈춘다.


진달래꽃은 또 암릉과도 잘 어우러진다. 천주산은 육산이라 암릉보다는 중간중간에 그냥 작은 바위 정도가 있지만 바위 옆과 사이에 피어난 꽃은 절경이다.


천주산도 지름길과 쉬운 길이 있다. 달천계곡으로 올라가서 원점회귀를 하면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는 완만한 계곡길과 전나무 숲길을 따라 용지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천주산은 신기하게도 만남의 광장까지 차가 들어온다. 더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차량이 출입가능한 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여기서부터는 왼쪽 가파른 길로 올라간다. 하산할 때 보니까 오른쪽 길이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더 완만하고 전나무 숲이 우거져 길이 완전히 힐링 공간이다. 느릿느릿 이 길로 올라갔다가 내려와도 좋겠다 싶다. 조망은 없지만 숲길에서 피톤치드를 듬뿍 마실 수 있으니까.


천주산 정상 용지봉은 난남정맥 인증구간이란다. 그래서 GPS 발도장을 찍고 정상석에서 예쁘게 인증숏도 남긴다.


하산은 달천계곡 쪽으로 해야 해서 이정표를 살펴보니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아무래도 만남의 광장까지는 비슷한 길로 내려가야 할 듯하다.


정상바로 아래로 내려와 진달래 군락지를 바라보니 꽃이 다 피면 일대 장관을 이루겠다. 그런데 꽃이 거의 피지 않아서 아쉽다.


그렇지만 남겨두면 또 올 기회가 생긴다. 올 4월 중순이나 아니면 내년을 기약해도 좋겠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천주산 정상 용지봉으로 오를 때는 왼쪽 가파른 길로 올라갔다가 하산할 때는 왼쪽 전망대 쪽 길을 선택한다. 진달래꽃이 만개하면 꽃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곳이다. 길 양쪽으로도 진달래 꽃나무가 많이 있어서 꽃이 피면 길이 엄청 예쁘겠다.


곧 말랑말랑한 흙길이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진달래군락지가 비스듬히 한눈에 들어온다. 꽃이 만개하면 환상적인 풍경이 잡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걸 알겠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온다.


이번 천주산 산행은 진달래보다도 전나무 숲길이 압권이다.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 한가운데를 지나며 갈비가 수북이 떨어진 흙길을 걷는다. 흠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아, 맛있다 맛있어! 보약이 따로 없다!"

"꽃이 아니어도 너만 있으면 된다!"


이게 바로 산행의 묘미이다. 자연이 가꾸어놓은 숲의 보약을 흠뻑 마시는 날이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산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마워. 고마워! 항상 그곳에 있어줘서."

산이 있어서 숲이 있어서 나무가 있어서, 마음으로 몸으로 감사가 넘치는 날이다.


전나무 숲길 끝나는 지점에 달천약수터가 나온다. 물이 적합수라 한 바가지 떠서 마신다. 시원하다.


달천계곡이 달천약수터에서 시작이 된 것인지 졸졸 나오는 약수터를 지나니 갑자기 계곡물이 길게 이어지면서 시원스럽게 흐른다.


계곡 시작지점에 연초록 나무와 진분홍 진달래꽃의 어우러짐이 아주 선명하니 곱다. 온산에 곧 초록물이 들겠지만 봄에 처음으로 만나는 초록은 눈이 부시게 사랑스럽다. 어떨 때는 빛깔이 화려한 꽃보다도 더 반가운 것이 생명의 빛 초록이다.


임도길이 나오는데 조금 걷다가 우리는 다시 왼쪽 달천계곡길로 들어선다. 한 쌍의 산우님들이 올라오고 있어서 물어보니 그 길이 지름길이란다.

"계곡이 아주 좋아요."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산새소리도 들으며 달천계곡길을 걷노라니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무념무상의 경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뇌를 깨끗이 청소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달천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임도길이 나온다. 편안한 길이다.


계곡물이 많아지면서 소를 이룬 곳에서 발을 씻고 가기로 한다. 마침 옆에 평상도 있어서 그곳에 배낭을 벗어두고 앉아서 남겨둔 김밥과 계란 등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는 양말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엄청 시리다. 봄이래도 아직이다. 하긴 한여름에도 계곡물은 차다. 금방 발을 닦고 양말을 도로 신는다.


"와 벚꽃이다!"

정자가 나오는 지점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벚꽃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시다. 벚나무가 키가 커서 꽃송이들을 자세히 보기가 어렵다. 줌인해서 꽃과 정자를 담는다.


화사한 벚꽃길을 걸어서 주차장 쪽으로 간다. 벚꽃뿐만 아니라 조팝나무꽃, 복숭아꽃도 담는다. 목련은 몇 그루 있는데 꽃이 지고 있어서 담지 않고 지나친다. 막 피어나는 봄에는 예쁜 것만 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천주산 진달래를 보러 와서 서둘러 피어난 진달래꽃을 보고, 조팡나무꽃, 복숭아꽃, 벚꽃, 동백꽃, 배꽃, 명자나무꽃도 본다. 봄꽃 천지다!


우리는 B코스를 타서 하산완료하니 버스 탑승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는다. 버스는 오후 5시 30분에 귀경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로 된 간이매점이 하나 있는데, 전값이 무려 2만 원이란다. 배도 안 고팠기에 너무 비싸다면서 안 사 먹는다. 항상 관광지에 오면 음식값이 바가지요금이다.


또 시간도 여유가 있고 음식도 남았기에 어디 먹을 만한 장소가 있나 찾아보니 고가도로 쪽에는 쉼터 하나 없다.


그래서 무덤가로 들어가 작은 양산 비닐로 만든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쉬어간다. 그런데 희한하게 생긴 벌레가 내  바지 위에 앉아서 기어 다니고 있다. 까만색인데 노란 무늬가 아주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정교하고도 예쁘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담아보려니까 휙 하고 날아가서 풀잎에서 앞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데 신기한 곤충이다.


귀경길에는 차창밖으로 보는 저녁노을이 환상이다. 늘 그렇듯이 나는 석양의 하늘 풍경을 사랑한다. 마치 여행 중에 비행기를 타고 높은 하늘에서 보는 하늘구름이나 저녁노을, 빛이 돋보이는 야경을 좋아하듯이 말이다. 나는 산행이나 여행의 마무리가 바로 이런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이 더욱 행복하다.

개나리
암릉과 진달래
진달래 꽃길
귀한 산자고꽃
만남의 광장
천주산 정상 용지봉에서
천주산 진달래 탐방로 안내
전망대에서 진달래군락지 조망
전나무 숲길
달천약수터
달천계곡
정자와 벚꽃
배꽃
신기한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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