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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Apr 15. 2024

꽃순이를 아시나요?

강화 석모도 해명산+낙가산+을왕리해변+진달래

아침 6시 일찌감치 선거를 마치고, 수인분당선을 타고 오이도역으로 간다. 그곳에서 에라이님 차를 타고 인천 해명산으로 갈 예정이다.


지하철을 려고 걸어가는데 봄꽃들이 예쁘다.

"그냥 갈 수 없지."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는다.

"왜냐구?"

"이쁘니까! 이쁜 걸 보면 그냥 눈과 마음이 머문다구! "

황매화, 철쭉, 조팝나무, 명자나무, 정향나무, 아직 초록물이 안 오른 갈색 풀까지 다!

나는 봄에 막 피어나는 꽃도 예쁘지만, 마른 꽃도 예쁘다.


머털도사님 리딩에 모두 12명 참석이다. 차는 3대로 움직인다. 구로디지털역에서 6명, 관악역에서 3명, 오이도역에서 2명이 출발하고, 해명산으로 1명이 직접 오신다.


사진작가가 2분, 오늘도 해늘님들이 모델이나 배우가 되어서 바다와 꽃을 배경으로 신나는 인생샷과 영화를 실컷 찍고 오겠다.


오이도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30여 분 이르다. 혹시나 싶어서 일찍 출발했더니 여유가 있다.


막 역을 나가고 있는데 에라이님한테 전화가 온다. 한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단다. 택시 승강장 맨 앞 쪽에서 기다린다고 문자를 보낸다.


에라이님 차에 타서 석모도로 출발한다. 약 1시간 40여 분 걸릴 예정이란다. 차는 막힘없이 신나게 달려간다.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들어가는 선착장과 새로 놓은 다리가 보인다.


한 7~8년 전에 석모도에 가본 기억이 있다. 15인승 버스를 싣고 배를 타고 들어가서 그때 이곳저곳 예쁜 곳을 많이 돌아보았다.


"저기 위에 다리가 생기면 이제 다시 배를 타보기는 어려울 걸요. 우리가 아마도 마지막 해 배 이용자들이 아닐까 싶으네요. 곧 다리가 완공이 되니까요."


그렇다. 그 후 세월이 한참 더 지났으니까 당연히 우리는 하얀 다리를 지나 석모도로 들어온 것이다.


석포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약속 시간보다 약 1시간이나 남는다. 아침 8시 30분에 오이도역에서 출발했으니까.


참,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에라이님이랑 나랑은 나이 차가 좀 있지만 취미도 성향도 비슷한 점이 많다. 정치얘기도 좀 하다가 책, 영화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석포리선착장 가게에서 순무김치를 사서 차에 실어두고, 집에서 싸 온 삶은 계란과 포카리스웨트, 오렌지를 꺼내 빈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차 옆으로 와서 시간을 보는데 에라이님이 어찌 알고 창문도 안 연 차 안의 핸드폰 벨소리를 알아듣는다.

"11시에 보문사 주차장에서 만나자네요."

"아,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보문사 주차장 약속시간에 10여 분 늦겠단다. 1시간이나 일찍 석모도에 도착해 놓고도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이다.


가다가 길 한 번 잘못 들고 돌아와서 주차장에서 모두 만난다. 차에서 내려 반갑게 인사하고, 버스를 타고 진득이고개로 간다. 거기서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을 오를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은 가능하다.


초반에 빨간출렁다리가 있다. 발을 굴리며 출렁출렁 흔들어본다. 잼나다.


오늘의 작가 정서진님이 커다랗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사진을 찍어주신다. 조금 오르니 진달래꽃이 만개를 했다. 꽃과 바다와 암릉을 배경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사진 찍기 바쁘다. 행복한 출사산행이다.


또 한 분 작가 호타루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오셔서 큰 카메라는 가져오지 않으셨다. 그래도 작가본능은 어쩌지를 못하고 핸드폰 카메라로 좋은 각도를 잡아 폰 셔터를 누르신다.  


거기에다가 머털도사님, 제니동님도 사방팔방에서 폰을 들이대신다. 사진이 어찌 나올까 궁금했는데, 카페에 들어가 보니 모두가 다 작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셨다. 그저 고맙기만 하다.


미세먼지에 하늘이 뿌해서 배경이 그리 푸르지 않은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운 산행이다. 날씨와 조망과 진달래꽃 개화 상태와 산행 난이도와 참석 인원 등이 조화로워서 오순도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진달래꽃을 하나씩 따서 머리에 꽂고 진달래꽃길을 걷다보니 '꽃순이를 아시나요?'라는 말이 자꾸만 노래가락으로 흥얼거려진다. 물론 나는 이 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도 잘 모다. 그래서 집에 와서 검색을 해서 찾아보니 영화 제목이다.


순박한 산골 처녀 은하는 서울에 올라와 다방에 취직한다. 그녀는 다방에 온 손님인 사진작가 남준과 가까워진다. 그러나 남준은 바람둥이였고 그에게 쉽게 마음을 주었던 은하는 상처만 받는다. 그 후 은하는 아마츄어 레슬링 선수인 성구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생활도 오래 가지 않자 은하는 다방생활보다 더 타락한 곳으로 간다. 환락가의 꽃순이 은하. 거기서 은하는 외롭고 부유한 윤노인을 만나 그의 배려로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윤노인은 곧 죽는다. 다시 자포자기의 생활로 빠져든 은하 앞에 첫사랑 봉수가 나타나지만 은하는 홀로 떠난다. (※다음영화에서 캡처)


"뭐 그리 좋은  내용이 아니잖아?"


그런데 주인공 은하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정윤희다. 정윤희 하면 또 사랑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 여인이 아니가?나는 가끔 사랑이라면 정윤희 정도는 되어야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사랑 하나 때에 모든 것이 다 붕괴된 여인, 그녀가 바로 최고의 배우 정윤희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최근 상황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녀가 부럽다. 한 사람을 사랑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이 와해되고 큰 손해를 입었더라도 그녀는 진정 사랑하였기에 행복했을 것이다.


오늘은 진달래꽃을 머리에 꽂았으니 나도 꽃순이가 맞는다. 영화의 꽃순이가 아니라 해명산의 꽃순이다.


내친김에 이번 주에는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보러 가야 겠다. 도서관이나 미디어센터에서 DVD를  대여해서 보아야겠다.

  

좋은 포토존에서는 단체사진도 열심히 남긴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 산행 속도가 더디다. 에라이님은 우리들 중에서는 젊은 데다가 사진도 많이 안 찍고 휙휙 걸어서 산행속도가 빨라 단체사진에서 빠진 경우가 있다. 앞서가서 기다려주고 또 한참 가서 서 있곤 한다. 조금 지루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행 경력이 거의 30여 년이 넘는 베테랑이라는데 말이다.


해명산 정상에서 인증샷 찍고 조금  내려가서 점심을 먹는다. 싸온 점심 식탁을 보니 대단들하다.


와우! 양푼이비빔밥에 발, 두부면 샐러드에 수제삼각김밥, 금사과, 오렌지, 귤, 개량포도 등 온갖 과일(처음 보는 길쭉한 과일은 처음 먹어본다. 꼭 대추토마토 같이 생긴 검은 포도색 과일인데, 아주 달콤하다. 대추포도인가 싶은데, 이름을 못 물어봤다), 그리고 김밥, 전, 김치 등도 있다. 먹을 것이 많아 아래쪽에 있는 족발 뼈다귀는 아무도 안 먹어서 내가 들고 뜯는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1인이라서다. 그런 내 모습을 호타루님이 폰으로 찍어주신다.

"이를 어째? 너무 맛있게 먹는 거 아닌가? ㅎㅎ."

  

음식재료에다 사온 음식, 만들어온 음식, 그리고 양푼까지 가방에 싸들고 온 해늘님들의 수고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언제나 해늘산행은 멋에다 필히 맛도 어우러지는 특별한 산행이다. 거기다가 차량 3대로 머털도사님, 장비님, 에라이님 발 봉사까지 해늘님들의 섬김에 감사하며 모두 복 많이 받으시라고 빌어드린다.


하산은 보문사 쪽으로 내려가니 상봉산까지 가니 어쩌니 하면서 서두른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이 속도로 가면 오후 5시 넘어서 하산을 하게 될 것이다.


을왕리해수욕장도 가봐야 하고, 또 밴댕이회도 먹고 가야 하는데, 저녁시간이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하산길에는 또 암릉 타는 재미에다 지나온 해명산 정상 쪽 길, 가야 할 길, 어쩌면 못 갈 수도 있는 상봉산 봉우리 쪽 조망에 무엇보다 탁 트인 서해바다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는다. 정서진님과 머털도사님, 제니동님, 호타루님은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주시고, 우리는 어떤 포즈로 설 지가 고민이다.


군데군데 멋진 소나무와 진달래가 우릴 유혹하고, 걸음은 자꾸만 느려져 결국 상봉산 안 가고 보문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보문사는 커다란 암릉 밑을 파내고 그 안에 지은 희한한 절이다. 아래서부터 꼭대기까지 급경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시간 관계상 안 들르고, 매화꽃 만개한 곳에서 또 사진을 찍고, 을왕리 해변으로 이동한다.


바닷가로 걸어발이 푹푹 빠지는데 모레가 진짜 가늘고 하얗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참는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텐트도 치고, 불도 피우고 낭만적인 모습으로 앉아서 즐기고 있다.


해는 서쪽을 향해 느리게 가고 갈매기들이 모여서 노니는 해변은  얇은 물결을 드리웠다 내리며 철썩인다. 해늘여님들이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들을 부른다. 새우깡 한 개를 손에 들고 있으면 갈매기들이 채갈 때 짜릿한 손맛을 느낀다.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갈매기들의 몸짓과 석양과 섬을 배경으로 멋진 각도를 잡아 본다.


일몰을 보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냥 일정을 마무리한다. 나는 뒤풀이를 안 하고 간다는 에라이님과 함께 그  차로 돌아오기로 한다. 그런데 석모도와 강화도를 빠져나오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오이도역까지 또 한 시간, 집까지 또 한 시간, 거의 9시 30분 정도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그새 머털도사님과 장비님 차로 움직인 팀은 먹음직스러운 밴댕이회로 뒤풀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지가 거의 20여 분이 지난 뒤란다. 그렇지만 나는 감사한다. 기회는 항상 있는 거니까. 다음에 또 가면 된다.


리당해주신 머털도사 대장님을 비롯해서 차량으로 사진으로 섬겨주신 분들, 함산 한 산우님들에게 감사하다. 이런 멋진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음에, 살아있음에, 오늘도 감사가 넘친다.


청년문제며 세태문제, 사회문제까지 깊이 있는 대화로 차가 막히는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해 준 에라이님에게 특별히 더 많이 감사하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서 빠져 죽었다는 미소년 나르시스의 꽃 수선화의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마무리를 했다.

"세상사 뭐 별다른 게 있겠는가? 재미있게 만족하며 살면 되는 것이지."


해늘님들의 여유가 좋아서 가입을 하고 세 번째 산행을 마친 후 해늘사랑이 두 배로 커졌다.  

"고마워요. 감사해요. 담에 또 더 멋진 곳에서 함께 해요!"


해명산 출렁다리에서
진달래꽃길 꽃순이
암릉 조망터에서 서해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소나무에서
해명산 정상에서
양푼이 비빔밥 점심식사
암릉을 타며 지나온 길을 배경으로
연두연두 초록물이 올라오는 분홍분홍 진달래꽃길
오늘의 리딩 머털도사님과 정다운 척!
고운 철쭉
해늘의 사진작가 정서진님
만개한 매화
을왕리해변에서
을왕리해변 갈매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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