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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y 12. 2024

C님을 위한 장송곡인가?

강화지맥 2구간(혈구산+퇴모산+덕정산)

강화지맥은 처음인데, 느리게 천천히 살방살방 걷는다고 해서 신청했다. 오늘 가보고 괜찮으면 1구간이 빠지긴 했지만(그런데 강화지맥 1구간인 고러산은 이미 다녀왔기에 걸은 셈이 되었다), 계속 참여할 생각이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서 올만에 우중산행을 하겠다. 그렇지만 추운 때도 더운 때도 아니니까 시원하게 기분 좋게 걸을 수 있겠다.


리딩 대장님 포함해서 모두 22명 참석이다. 인원도 딱 적당하고, 버스도 25인승이라 오붓하게 다녀올 수 있겠다.


오전 7시 사당역 탑승지로 간다. 한 30여 분 일찍 도착했는데, 누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하긴 이번이 이곳에서 세 번째 산행이라 아는 사람이 없다. 버스도 이것저것 찾아봐도 명찰이 아니다.


시간을 보니 6시 50분이 넘어간다. 먼저 총무님에게 전화해 본다. 11번 출구서 기다리란다. 55분 넘어간다. 결국 리딩 대장님에게 전화하니 전혀 딴 사람이 받는다.  

"A 산악회세요?"

무리 지어 모여있는 몇 분에게 물어보고 겨우 찾는다.

버스는 대로변이 아닌 저 골목 안 쪽 주차장 옆길에 서 있다. 대형이 아닌 소형 차다.


사당역 출발, 합정역, 백석역 경유하여 고비고개에 오전 9시에 도착한다. 혈구산 조금 오른 후 고려산~혈구산 연계 구름다리가 보이는 데크에서 서로 인사를 한다. 잠시 C님을 위해 묵념을 올린다.


혈구산은 정상까지 오름길이 계속 이어져 조금 힘들다. 그렇지만 거북이를 닮은 암릉 조망터에서 강화 앞바다를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가 노래한다. 쑥국새인가? 아님 무슨 새? 소리만 듣고 새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새도 공부를 해야 알 수 있겠다.


지난주에 제암산+사자산+일림산 종주에서 만난 남산우 님이 저기는 석모도 해명산, 저 멀리는 교동도 화개산, 하나하나 가르쳐주신다. 얼마 전에 다녀온 석모도 해명산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진달래가 예쁜 산이다. 한발 떨어져서 보는 해명산 능선이 아주 단아하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니까. 다녀온 산이라서 그런지 바다 위에 떠 있는 산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오름 오름 되게 오른 후 혈구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부는 암릉인데 그 위에 올라서니 사방팔방이 탁 트여서 절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섬과 마을과 산의 어우러짐이 절묘하다. 날씨가 흐려 하늘이 희뿌연데, 그 나름으로 한 폭의 그림이다.


혈구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퇴모산으로 간다.


오전 11시 밥터를 찾아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시간이 조금 이른 듯하지만 모두들 아침을 일찍 먹거나 안 먹고 온 이들도 있는 듯하다. 산행에서 먹는 밥은 그 무엇이나 맛있다. 옆에 앉은 여산우 님이 꼬마김밥  모양으로 그러나 커다란 왕김밥을 싸 오셨는데 참 특이하고 맛이 있다. 한 2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겠다. 나도 김밥을 싸 간 터이지만 1개 집어 먹는다. 다른 산우님들이 모시송편, 부침개, 쑥떡도 고루 싸 오셔서 또 한 개씩 먹으니 배가 엄청 부르다.


퇴모산은 길이 좋아 쉽게 산행한다.


그런데 내려가서 GS25 편의점에서 잠시 쉬었다가 임도길을 걸어서 덕정산으로 가는데,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촉촉이 비가 내린다.


아침에 차에서 '날씨 요정'이 어쩌고 하면서 설레발을 쳤는데, 아, 오늘은 안 맞는다. 모두들 우비를 꺼내 입고 스패츠도 차고 배낭커버도 씌운다.


임도길은 진흙길인데 파여서 질펀한다. 흙이 달라붙고 푹푹 빠져서 걷기가 어렵다.


덕정산 산길로 들어서는데 덕정산 구간도 만만치 않다. 오름길 오름길, 비도 더 내리고, 바람도 점점 거세진다.


'혼자 걷고 있어서 덕정산 정상 사진은 못 찍겠구나!'

그런데 뜻밖에도 리딩 대장님이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을 남겨주신다.

아무나 대장님을 하는 게 아니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과 애정을 듬뿍 담고 있어야 가능하다.


덕정산 정상 지나 군부대 철책선을 따라 걷는다. 바람이 강풍으로 변한다. 섬노린재, 병꽃, 붓꽃, 수국 등 예쁜 꽃을 담는데 그만 모자 위에 꽂은 선글라스가 강풍에 날아가 버린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거리인데, 혹시나 길이 젖어서 푹 꺼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간다. 값이 꽤나 나가는 것인데 아깝다.


나는 산에 오면 가끔 무얼 하나씩 잃어버린다. 선글라스는 벌써 세 번째이고, 오산에서는 내 눈인 다초점 안경을 잃어버렸다. 핸드폰은 세 번이나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고, 우양산도 개 잃어버렸다.


그런데 예전에는 무얼 잃어버리면 그것 때문에 며칠씩 마음이 상했는데, 차츰 익숙해지기도 하고, 이제는 포기하는 법을 배워 마음이 괜찮다.

돈이 꽤 들어있는 지갑이나 교통카드 같은 걸 잃어버려도 여유가 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주워 사용하면 되지 뭐. 나보다 더 급한 사람이 있나 보지."

이러고 만다.


한참 옆길로 새었다.

그러고 보니까 괜찮다 하면서도 실은 마음이 짠한 모양이다.


덕정산에서는 나무들이 요동치는 강풍길을 걸었다. 나무가 없는 능선길에서는 우비가 어찌나 울어대며 날리는지 도무지 걸을 수가 없다. 자칫하다가는 몸까지 날아가겠다. 모자는 젖어서 내려와 자꾸 시야를 가린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간신히 중심을 잡고 걷는다.


고려 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겨우 바람을 피한다. 양쪽으로 나무들이 막아주니 바람도 어쩌지를 못한다.


하산해서 군부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A 산악회 단골 맛집 <황금수라>로 이동한다. 밥도 반찬도 너비아니 고기도 된장국도 아주 맛있다.


리딩 대장님이 대만에서 사 오셨다는 58주를 한잔씩 받고, 건배는 생략한다. 이따 리딩 대장님이 대표로 C님 장례식장에 다녀오시겠단다.


오늘 강풍은 C님을 보내드리는 장송곡이었을까? 지난주 제암산+사자산+일림산 산행에서 내 옆자리가 바로 C님이었는데, 안 오셨다. 그날 리딩 대장님이 C님이 연락도 없고 연락도 안 된다고 그러더니만, 벌써 일이 있었던 거다.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며칠 전 산행에서 예정 코스가 아닌 곳으로 C님 혼자 벗어나서 정상까지 올라간 것 같단다.


오순도순 같이 걷고 같이 먹고 즐거웠던 우리가 내일은 다른 길을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안전에 또 한 번 안전을 점검하고, 리딩 대장님 말씀 잘 듣고, 혼자서  곁길로 새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을 때 더욱 정겹게 잘해주자!


그러나 또한 내 경우라면, '산 사람이 산에 묻히는 것은 복되다'고 여길 것이다. 어차피 어떤 형태로 가든 화장과 매장의 중간 과정을 거칠 것이기에 그 모든 것을 생략하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인정 많고 마음 여린 산우님들은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글썽이고 목이 매여서 밥을 잘 삼키지 못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말이다.


슬픈 소식의 와중에도 여전히 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오늘처럼 산을 탈 것이다. 강화지맥 2구간 시원스레 리딩해주신 대장님, 사근사근 맘씨도 고운 총무님, 도란도란 후미 대장님, 그리고 함산 한 산우님들에게 감사드린다.

강화지맥 1구간 고려산~강화지맥 2구간 혈구산 연계 구름다리
혈구산 정상까지 몇 번의 오름 구간 있다.
혈구산 정상 돌비에서
혈구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석모도 해명산과 강화 앞바다 풍경
퇴모산 정상에서
덕정산 초입 임도길 질펀하다.
덕정산 정상에서
붓꽃과 섬노린재꽃
올들어 처음 보는 어여쁜 수국
강풍을 맞으며 비틀비틀 덕정산 능선길을 걷는다.
고려왕가의 무덤
단골맛집 <황금수라> 풍경
<황금수라>에서 맛있는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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