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림에 나를 담다](이광표 지음, 현암사)를 읽었다. 이 책을 읽는데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온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탕건을 자르고 귀와 옷선을 그리지 않은 화가(윤두서), 망연하고 우울한 눈빛의 비극적인 화가(나혜석), 눈을 그리지 않은 화가(이인성) 등 슬픈 그들의 자화상이 심금을 울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부를 누리며 떵떵거리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보았다.
김환기 화가의 《우주》라는 작품이 홍콩 경매에서 100억을 넘었다는 보도를 신문에서 읽었고, 박수근과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 수십억을 호가한다지만 그들이 살았던 화가로서 당시의 삶은 가난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심지어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요즘 그림 그리는데 맛들이고 있는 나는 화가들의 삶이 그저 애잔하기만 하다. 유명해지든 그렇지 않든 그리는 행위는 다분히 창조적인 활동인데 말이다. 창조의 기쁨도 그들의 삶을 바꾸지는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뭉크의 <절규>라는데, 인간의 삶은 허무와 불안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 내가 그린 그림들을 돌아보며, 왜 내 그림은 이다지도 밝고 환한 것일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 그리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고, 또 지금도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내 안에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감사하며, 앞으로도 주님 몸값으로 사신 나의 자화상을 더 많이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그린 내 그림들을 찾아보며 그림 그릴 수 있어서 감사함을 고백한다. 물론 산행할 수 있고 그것을 그림으로도 그릴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