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깨끗한 보석, 양심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 창비)

by 서순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줄곳 아름다운 소설가에 대해 생각한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토록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이토록 명징하게 처절하게 슬프게, 그러나 빛나게 쓸 수 있는 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7년 전에 처음으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거의 하루 종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새벽에 책을 읽다가 울고, 아침에 밥 먹고 책을 읽다가 울고, 또 오후에 책을 다 읽고 울고, 저녁에도 하염없이 울었다.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눈이 퉁퉁 부었다. 거의 하루 종일 울어도 울음이 그치지를 않았다. 아마도 내가 울어야 할 울음의 거의 80~90%는 그때 울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 보니 '폭력'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부자夫子'라는 것, '부부'라는 것, '연인'이라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통째로 작용한 것 같았다.


내 울음의 끝에서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여자 영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가슴에, 삶에 품고 살 수 있었다면, 결코 정신병에 걸려 입원하지도 죽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단 한 줄로 남아 실타래가 풀리듯이 내 가슴을 얼싸안고, 목을 끌어안았다. 그가 부모여도 좋고 배우자여도 좋고 연인이어도 좋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소년이 온다>는 작가와의 또 다른 만남이다.


어려서 깡시골에서 자라서 늘 독서력이 부족했던 나는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못내 망설였다. 뭐 읽은 게 있어야지, 감명 깊은 작품도 좋아하는 작가도 정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읽은 건 교과서가 전부이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다면 자연이 늘 내 곁에 있었다는 정도랄까?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강 작가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일단 정해 보기로 한다. 기독교 신앙도 없는 죽음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고문을 이토록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 속에서 이토록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 양심'을 건져낸 작가가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15살 중학교 3학년 어린 동호가 도청 앞에서 선량한 시민들의 시체 맡는 일을 하다가 비슷한 또래의 정대와 다른 소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선연하게 그림으로 그려진다.


남북이 이념갈등으로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정치에 이용당했던 무수한 억울한 죽음들이 떠오른다. 좌익도 우익도 어느 한쪽에 걸리면 무차별 죽음이 벌어지는 나라. 한때는 5.18 폭도였다가 5.18 민주화 항쟁으로, 5.16 혁명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로, 같은 일을 가지고 여러 번 이름과 가치와 평가가 바뀌는 나라, 나도 너도 안전하지 않은 나라, 이념이 우리를 그렇게 갈라놓았다.


오직 남북평화통일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런지도 모른다. 바라던 통일이 우리 당대에 이루어진다면 작가는 또 어떤 작품을 써낼지 사뭇 궁금하다. 직선제와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지금, 청년 실업, 무역 전쟁, 정보 싸움, 전염병, 인플레이션 가운데, 모두들 먹고살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 양심'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 한강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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