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쉬어야 하나 그러다가 실내에서 하는 거면 괜찮겠다 싶어서 체험 여행을 가보기로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비와 우산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비는커녕 선선하고 걷기가 아주 좋은 최적의 날씨이다.
"날씨 요정 마법이 돌아온 건가? 지난주에도 그랬는데! ㅎㅎ."
서울에서 약 1시간 후 가평 운악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지난해 가을에 완공되었다는 운악산 출렁다리와 현등사가 일정에 있지만 나는 절은 생략하고 출렁다리 갔다가 계곡에서 놀다 오기로 한다.
'운악산은 암릉이 멋진 전체 코스를 타야지.'
오늘 코스를 조금 시시하게 여기면서도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내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지.'
운악산 출렁다리는 왼쪽길 가파른 데크길은 현재 공사 중이어서 출입문을 막아놓았다. 조금 더 올라가서 오른쪽 야자매트 깔린 곳으로 올라가니 금방이다. 역시나 가파르지만 한 10여 분이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거기서 눈썹바위 이정표가 있길래 조금 더 올라가 보는데, 길이 모래가 섞인 흙길이라서 미끄럽다. 스틱도 안 챙겨 와서 안전을 위해서 그냥 내려갈까 망설인다. 그때 뒤에서 남자분이 혼자서 까만 강아지를 데리고 오다가 나를 앞질러간다. 산에서 혼자 오는 사람을 만나면 주의를 한다. 요즘 하도 세상이 험해서는. 잠시 멈춰서 싸간 영양떡과 이온음료를 마시고 쉬다가 내려온다.(※)
그 대신 운악산 계곡 백년폭포에서 물놀이를 하고 가기로 한다. '백년을 하루처럼,백년폭포'라는 안내판이 있다. '길이 20m에 달하는 45도 경사도가 있는 폭포인데 구한말 민영환이 자주 찾아와 나라 걱정을 했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산악회에서 오신 나이 지긋하신 여산우님들이 놀고 있기에 합류해서 과일도 얻어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물놀이를 한다. 나는 옷을 입은 채로 알탕을 한다. 나보고 공주님 어쩌고 하면서 사진도 예쁘게 찍어주신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시원하다. 여벌옷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냥 입은 채 말리기로 한다.
산바라기마을 보리수고추장 만들기 체험을 하러 간다. 보리수청, 고춧가루, 메주가루, 굵은소금, 동그란 그릇, 숟가락, 작은 밀대가 준비되어 있다. 앞에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따라서 만들어 본다.
"한 쪽 방향으로 오래 저어야 해요."
재료를 섞어서 젓는 게 쉽지 않다. 곧 팔이 아프다.
"여기다 따뜻한 흰쌀밥 비벼 먹고 싶어요."
다들 자기가 만든 보리수고추장을 병에 담고, 그릇에 남은 것을 아깝다면서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본다. 방부제가 안 들어간 자연 고추장이라 그런지 아주 맛이 있다. 오이를 주시기에 찍어 먹는다.
"혹시 만들어 놓은 고추장을 더 살 수 있나요?"
물어봤더니 보리수청도 직접 따서 만든 거라서 체험용 이외 팔지는 않는단다. 체험은 50% 할인된 가격으로 해주는 거란다.
"원래 파는 가격은 22,000원이에요."
"아, 네. 그렇군요!"
점심은 <채원>에서 잣두부전골로 한다. 메밀전과순두부가 더 나온다. 전골이 끓는 동안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끼리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고추장아찌, 멸치볶음, 취나물, 시래기볶음, 깻잎장아찌, 열무김치 등 밑반찬들도 깔끔하다. 깻잎장아찌와 열무김치가 특별히 더 맛이 있어서 한번 더 달라고 한다. 다들 배가 고픈 만큼 정신없이 먹는다.
오후에는 잣향기푸른마을로 가서 빵도마 만들기 체험을 한다. 미리 깎아놓은 도마 모서리를 사포로 매끈하게 문지르고 연필로 그림과 글씨 밑그림을 그린다. 나는 요즘 문인화를 그리고 있어서 국화 두 송이를 그려본다.다음은 뜨거운 인두로 새기는 작업을 한다. 천천히 약간의 압력을 주면서 인두로 그리는 건데 나무가 타면서 그림과 글씨 선이 그려지는 게 아주 잼나다. 기름을 바르고 휴지로 닦아낸다. 빵도마 완성이다.
전통풍습이라는 잣불 켜기도 해 본다. 이쑤시개에 끼워진 잣 한 알을 받는다. 켜진 촛불에서 불을 붙인다. 아주 조그만 잣 알이 활활 타오르는데 꽤 오래 탄다. 내 잣불은 엄청 크게 타오른다. 잣불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나는 안 한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질 소원이라면 안 이루어질 소원이 없겠다.지금까지 한 기도가 얼마나 많은데!"
이럴 때는 조금 순진해도 좋은데, 실은 기독교신앙이 있으니까 무엇에 대고 소원 비는 것은 안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평꽃차교육원에서 한방족욕체험을 한다. 족욕기의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발을 못 담그겠다.
"앗 뜨거!"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꽃차를 두 잔 째 마실 때까지 발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겨우 발을 넣고 족욕을 한다. 온몸에 고운 땀이 촉촉하게 배어 난다. 끝날 때쯤 아로마소금을 주기에 손에 비벼서 발 뒤꿈치부터 발바닥, 발가락 하나하나를 마사지한다. 몸의 피로가 쫘악 풀린다. 발을 씻고 수건으로 닦으니 정말 빨간 발이다.
직접 만든 보리수고추장, 빵도마에다, 덤으로 밥맛 좋다는 가평 쌀까지 두 병을 선물로 받아온다. 체험 여행은 인심도 선물도 푸짐하다. 자주 이용해야겠다.
※ 기록을 찾아보니 3년 전 2021년 8월 28일(토)에 운악산 정상에 올랐을 때, 눈썹바위를 지나갔었다. 스릴있으면서도 멋진 암릉을 타며 사부자바위, 만경대, 미륵바위, 병풍바위, 눈썹바위 등을 모두 보았다. 이래서 기록은 참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