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동영상 세 개를 만들고 오른쪽 테니스 엘보에 약간 문제가 생긴 지 두 달 째다. 팔 쓰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미세하게 아프다. 팔꿈치가 아직 완전히 좋아지지 않아서 요즘 산행을 못한다. 스틱을 안 짚고 오르면 되겠지만 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벗고 하면서 오른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서 자제를 하는 중이다. 9/14(토)에 광교산, 백운산 다녀오고, 9/19(목)에 수원화성성곽길 풀코스 걷고는 아예 산행은 안 했다.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너무 조심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오늘은 굉장히 오랜만에 사우나에 가기로 한다. 늘 다니던 북수원온천이다. 집에서 버스로 거의 50여 분 거리이다. 그래도 즐겁게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탔는데 글쎄 타자마자 하마터면 내가 탄 버스가 앞 트럭을 받을 뻔했다. 막 골목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뒤에서 조금 기다려야 하는데, 바짝 따라붙은 것이다. 급정거를 해서 오른손으로 앞등받이 손잡이를 짚을 뻔했다. 그러면 또 팔꿈치 미세하게 아픈 부위가 더 심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운전자가 조금 미숙하구나!'
그래서 바로 내려서 다른 버스로 환승해서 간다.
북수원온천에서 초벌 씻고 열탕 들어갔다가 나와서 때를 벗긴다. 찜질복 갈아입고 한증막 들어갔다가 땀 식을 때까지 백팩방에서 누워있다가 다시 한증막 들어갔다 나온다. 미소채에서 소고기미역국 한 그릇 사 먹고 온천을 나온다. 다른 때 같으면 거의 하루 종일 온천에서 보내기도 하는데, 오늘은 약 2시간 만에 나온다. 주변 어딘가 산책을 해볼 요량이다.
성균관대역에서 지하철을 타서 꽃뫼공원, 서호공원 한 바퀴 걸을까 싶어서 화서역에 내렸다. 그런데 어째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물향기수목원 검색을 하니 바로 1호선 타고 가서 오산대역에서 내리면 도보로 한 10여 분 거리이다.
'그렇다면 한 번 가보자.'
이름만 알고 안 가본 곳이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까.
화서역에서 30여 분 정도 걸려서 오산대역에 내린다. 방향감각이 없어서 거리의 사람들에게 수목원 위치를 물어본다. 쭉 가란다. 금방 물향기수목원 입구 안내 표시가 보인다. 도로길을 따라 걸어가니 물향기수목원 이름표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니 만경원이라는 아치길이 있다. 거길 지나가야 방문자센터와 매표소가 나온다.
오산대역에서 바로 들어가는 가까운 입구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뭐, 입구를 이렇게 멀리 만든 것은 자동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주차를 할 때 오산대역 근처 도로가 복잡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인매표소에서 카드로 성인 입장료 1,500원 결제를 하고 표를 받는다. 검수요원이 빨간 펜으로 체크를 하고 수목원 안으로 들여보내준다.
화분에 심어놓은 댑싸리가 여러 가지 빨강에 분홍빛으로 예쁘다. 거기서 사진을 찍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본다. 나는 정문 기준으로 가운데 길을 먼저 택해서 걷고 왼쪽길로 돌아서 오른쪽길로 한 바퀴, 마치 하트 모양을 그리듯이 걸었다.
토피어리원, 댑싸리화분, 난대식물원, 분재정원, 가을숲길, 메타쉐콰이어길, 향토예술의 나무원, 수생식물원, 단풍나무길, 무궁화동산, 소나무정원, 전망대, 야생화정원, 거리로 나온 예술 공연, 골고루 거의 다 걸으면서 공연도 본다.
화분에 심어놓은 댑싸리는 땅에서 자라고 있지 않아 조금 아쉬웠고, 건물을 단풍이 든 담쟁이가 덮은 모습이 운치가 있어서 배경으로 하고 서서 사진에 담는다. 아마도 이 건물은 임업연구소 같은데 관계자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숲. 환경. 인간이라는 돌비를 지나 좌회전을 해서 단풍숲길로 들어선다. 올해는 어딜 가나 단풍이 시원치 않단다. 이곳도 그렇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려서 땅이 젖어서 물컹물컹하다. 낙엽도 물에 젖어있다. 다행히 신고 나온 신발이 굽이 조금 있는 거라서 양말 속으로는 물이 안 들어온다.
메타쉐콰이어 길에는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놀고 있다. 키 큰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 영 좋은 장면이 안 나온다. 한참 기다렸다가 겨우 한두 장 찍고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향토예술의 나무원>이라는 곳에는 진달래, 매화, 소나무, 오동나무 등을 심어놓고 시인의 시 구절을 안내판에 함께 적어놓았다. 김소월, 이병기, 조지훈, 김용호 시인 등의 시 구절을 읽어본다. 소나무길 지나가니 <수생식물원>이 나온다. 수목원에 호수가 있으면 한결 멋지다. 연이 가득한 호수는 아래로 내려가야 해서 반바퀴만 돌고 전망대 쪽으로 간다. 아직 물들지 않은 초록 단풍숲길 지나 무궁화동산이 나온다. 꽃은 한두 송이 남아있을 뿐이다. 신기한 것은 무궁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꽃모양과 색깔에 따라서 무슨 무궁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안내 글씨가 거의 다 벗겨지고 지워져서 겨우 알아볼 수가 있다.
전망대에 가면 뭐가 한눈에 보이는 게 있으려나 했는데 올라가 보니 조망이 별로다. 소나무가 우거진 쉼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도랄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으면 볼거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조금 아쉬워하며 내려오려는데 뒤에서 올라온 여자 둘이서 한 마디씩 한다.
"의자도 없네."
"조금 앉아서 쉬어가면 좋겠구먼."
대체로 전망대에는 긴 의자가 있는 편인데 여기는 그것도 없다.
습지와 잔디마당 쪽으로 내려가려다가 화단에 식물을 심는 모습이 보여서 그쪽으로 안 가고, 소나무원 지나 도로길로 휙 내려온다.
다시 수생식물원이다. 호수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본다. 위에서 내려오면 호수 가까이 빙 둘러서 길이 있다. 길이 역시나 젖어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다. 소나무 뿌리에서 줄기가 올라오려고 동그랗게 힘을 모은 것들이 눈에 띈다. 꼭 구근 뿌리 같아 보인다. 곧 싹이 틀 태세인데 추워지면 어쩌려나 싶다. 아니다. 눈비 추위에 더욱 단단해져서 내년 봄에는 싹이 나서 줄기가 올라올 수도 있겠다. 이것이 궁금해서 내년 봄에 다시 와 봐야겠다.
호수 한 바퀴를 다 도니 수생식물원 초입에 어린아이들이 몰려있다. 가만히 보니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아이들이 신기한지 먹을 것도 주면서 찬찬히 들여다본다.
물향기수목원은 그리 크지는 않다. 한두 시간이면 꼼꼼하게 다 걸어볼 수 있다. 올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하다. 집을 나오기만 해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