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용산가족공원 다녀왔다. 원래 매주 토요일에는 산행을 하는데, 내일 오전에 여의도에서 친구 딸 결혼식이 있다. 특별히 나를 많이 생각해 준 친구라 꼭 가봐야 한다.
"한 주 쉬어야지 뭐."
그러다가 오늘 가볍게 용산에 다녀오자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박물관도 두 개나 있고, 용산가족공원도 안 가본 곳이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해서 거울못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경과 청자정이 거울못에 비치는 모습이 그 어느 외국 풍경 못지않게 아름답다. 사람들이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은 열심히 가보면서도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는 생각이다. 하긴 나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 쪽에 있을 때 가보고는 용산으로 옮겨온 뒤에는 이번이 처음이라 무어라 할 말이 없긴 하다.
청자정은 바닥 보수공사 중이어서 올라가 볼 수가 없다. 그 옆에 서서 안내 설명만 읽어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자태가 어떻게 찍어야 멋진지 구도를 잘 잡아서 사진에 담는다. 거울못을 돌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올라가니 건축미가 돋보인다. 건물 가운데가 시원하게 뚫려있는데, 그 뒤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인증숏 두세 컷 먼저 찍는다.
"박물관 1층 안에 있어요."
함께하기로 한 스윗님한테 톡이 들어온다.
오후 1시다. 스윗님과 만나서 국립중앙박물관 4층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관람한다.
"청자는 고려인의 파란 꽃이다."
"백자처럼 푸르고 수정처럼영롱한 "
"임금의 직위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용상 뒤쪽에 걸린 일월도와 그 옆에 쓰인 글귀를 읽어본다.
반쯤 돌아보고 로비에서 간단하게 싸 온 간식을 나누어 먹는다. 송사부 단팥빵, 구운 계란, 자두, 포카리스웨트, 딱 2개씩 먹을 수 있게 알맞게 싸왔다.
1층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 태극기와 자료들을 보고 광개토대왕비 거대한 전시 앞에서 기념숏을 남긴다.
다 돌아보고, 일이 있어서 스윗님이 먼저 간다고 해서 밖으로 나온다. 오늘 학부모 면담이 있단다. 일찍 가게 되어 미안하단다. 그렇지만 바쁜 시간 쪼개서 함께 해준 게 어디냐? 나는 혼자도 좋지만 두셋이 함께 하면 수다가 있어서 미소가 번진다고 답을 하며 웃는다.
아, 그런데 거울못 주변에 박물관 직원인 듯한 어떤 남자분이 우리 두 사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나선다.
"여기가 포토존이에요."
그러면서 한참 우리를 여기로 저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포즈도 주문을 해가며 연출사진을 찍어주신다. 덕분에 이쁜 사진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간단하게 싸 온 간식을 다 먹은 뒤라 가방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음료 한 병이라도 가져왔으면 드릴 수 있으련만,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하고 헤어진다. 스윗님도 일 보러 가고 나는 국립한글박물관으로 간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방언에 관해 전시 중이다. 원래는 '중국말과는 다른 말'이라는 뜻으로 '방언'이라는 말을 썼다는데, 지금은 '오방지언'의 뜻으로 쓰인단다. 중심의 언어가 '표준어'라면 지방의 언어가 '방언'인 것이다.
소설이나 문학에 쓰이는 방언은 정겨움을 더해 준다. 또한 우리나라 제주 방언은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한글 창제에 관한 미디어 아트도 관람한다.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어 서로 통하기 어렵더니 우리나라 오랜 역사에 어둠을 밝히셨도다." (훈민정음)
국립한글박물관에는 한글도서관이 있는데 한참 앉아서 한글 관련 책을 보고 왔다. 신기방기한 책들이 많다. 특별히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공부했던 교과서가 눈에 띄어 책을 가져다가 모두 읽어본다. 주어나 목적어 뒤에 조사가 따로 떨어져 있는 맞춤법이 지금과는 다르다. 김재원이라는 분이 기증했는데, 중요한 자료라는 생각이다.
요즘 내가 '손 편지'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어서 한글 편지에 관한 책도 관심이 간다.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유산,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 정조가 쓴 한글편지 등 꼼꼼히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많다. 그중에서 정조대왕은 내가 사는 수원과도 관련이 있어서 자세히 읽어보게 된다. 정조대왕은 위민, 효도, 외교, 상업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왕임을 느낀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정조대왕과 관련된 책을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
한글도서관 어린이 코너에서는 더 기발한 책들이 많다. <한글꽃이 피었습니다>는 캘리그래피 강병인 님이 쓴 책인데 한글 자체가 그림이고 시이다. 고 이어령 교수님이 쓰신 <너 정말 우리말 아니?>는 '뿌리를 알면 한글이 더 재미나다'는 내용의 책이다. 이어령 교수님은 대학시절에 기호학 등 몇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정말 박식한 분이시다. 일명 '언어 천재'라는 말이 괜히 붙은 건 아닐 것이다. 이 책만 해도 손가락, 발가락의 '가락'에서 '가락'은 갈라져 나온 것, 여기서 '가지'까지, 나뭇가지가 '가락'에서 나왔단다. 말 하나로 몇 가지를 엮어 놓은 것이 흥미진진하다.
그 밖에도 펜화로 그린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 <공부가 되는 한국명화>, <글자가 자라서 도서관이 되었대>, 우리말 시집 <말모이> 등을 읽고 왔다. 국립한글도서관은 가까우면 매일 가고 싶은 곳이다. 조금 멀긴 하지만 단풍 고운 가을에 또 가야겠다.
용산가족공원은 미군기지가 있던 곳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용산미군기지는 예전에 대학시절에 외대 다니던 친구가 카츄샤로 입대를 해서 한 번 초청해서 가본 적은 있다. 거기서 밥도 먹어 보았는데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미군부대 시절에는 게이트 1, 2, 3,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문이 다 열려있겠다. 가족공원이니까.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다 돌아보고, 이정표를 따라 용산가족공원 쪽으로 간다. 석조물정원과 미르폭포를 지나간다. 석조물정원은 여러 개의 탑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미르폭포는 아주 작은 폭포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폭포 같은데 숲이 호수에 잠겨서 물그림자가 예쁘다. 용산가족공원 가는 길은 숲이 우거져 시원하다. 나는 양산을 쓰고 걷다가 접고 걷는다.
키 큰 철망 사람과 손바닥 조형물이 있다. 연못에는 연이 못 안에 가득하다. 어떠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연못을 돌아 장미꽃들이 핀 길을 지나 태극기공원으로 간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주둔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에 태극기공원을 조성했다는 안내가 있다. 아직도 남북분단의 시대, 미군부대는 평택으로 옮겨 갔지만, 완전한 독립은 멀기만 하다. 반쪽짜리 독립에 언제 통일의 시대가 오려는지 요원하기만 하다.
용산가족공원은 생각보다 작다. 태극기공원에서 오른쪽 사잇길로 돌아오니 종이 나오고 금방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인다. '거울마루'라는 곳에서는 거울못과 청자정 모습이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날이 선선해지면 야외카페 분위기가 나는 이곳에 앉아서 혼자 책을 보거나 친구랑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
용산가족공원에서 장미, 황매화, 무궁화, 한두 송이씩 담고, 돌아오는 길에는 맥문동, 커다란 모과와 보라꽃, 수크령 등을 담는다. 날이 아직 덥지만 그래도 더위가 조금은 누그러진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거울못 청자정
건축미가 뛰어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중~.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용상과 일월도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거울못과 청자정을 배경으로
국립한글박물관 앞에서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어 서로 통하기 어렵더니 우리나라 오랜 역사에 어둠을 밝히셨도다." (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