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시간이 조금 빠듯해서 예끼마을로 이동해서는 선성수상길 먼저 걷기로 한다. 예끼마을은 '예술의 끼가 넘치는 마을'로 벽화가 아름답다는데 걸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동에 살던 예술인들이 고향을 떠나 외지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살려고 하니까 안동지역 집값이 아주 비싸졌단다. 그래서 이곳에 땅을 마련해 하나 둘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름도 '예술인들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끼마을로 지었단다.
선성수상길은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지역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어느 날 보니까 안동댐이 만들어졌단다. 안동시장도 모르고 안동시민도 모르게 안동댐이 건설되었단다. 그때에는 그런 시절이었다. 위정자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시절 말이다. 그곳에 있던 마을과 초등학교가 모두 물에 잠겼단다. 선성수상길 한가운데쯤에 예안초등학교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 피아노도 있고 당시 마을과 학교 사진도 붙어 있다. 피아노 위에 앉아도 보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어본다. 실제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던 이들은 고향과 모교를 잃은 아픔에 어쩌면 이곳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저 외지인들만이 선성수상길이 예뻐서 찾아와 걸어보면서 그들의 옛이야기 속에 잠긴 추억을 꺼내보는지도 모르겠다.
예끼마을 초입에서 강이 흐르고 통나무 다리가 있는 길 위 벽화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소수서원으로 간다. 시멘트 바닥에 그린 벽화인데도 꼭 강 위 다리에 서 있는 것 같다.
소수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친 곳이란다. 앞에 낙동강이 흐르고, 도산서원 앞에 특이한 고목들이 있어서 한껏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낙동강과 고목, 도산서원이 어우러진 풍경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공부하면 저절로 과거에 급제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 쓰는 작가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도산서원도 병산서원처럼 약간경사가 지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올라가면서 낙동강을 볼 수 있다. 다산서당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서당과 서원의 차이는 서당이 초등, 중등 수준이라면. 서원은 고등, 대학 수준의 교육을 했단다. 이황 선생이 다산초당을 짓고 무척 흡족해했다는데 낙동강이 아주 가까이 내려다보여서 그랬을 듯하다.
맨 위에 있는 전교당에는 역시나 왼쪽, 오른쪽 스승과 제자가 머무는 방이 따로 있다. 예로부터 스승은 제자에게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서 존경심과 함께 조금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산초당 내 나무들은 단풍이 들어 한옥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출입문을 통과하면서 보는 한옥들의 기와와 돌길, 돌담, 낙동강의 어우러짐이 한 폭의 그림이라서 아무 데나 서서 담아도 퇴계 이황 선생이 살던 옛 시대로 돌아간 듯 멋스럽다.
도산서원 전시실이 있는데, 들어가서 간략하게 보고 나온다. 시간이 빠듯해서 자세히 읽어볼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보고 오려면 아무래도 여행사가 아닌 자유여행을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가성비가 좋은 여행사의 여행 역시 고맙다 여긴다. 언제라도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