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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기억하기 위한 다윗의 용서

by 서순오

사무엘하서를 쓰고 읽으면서 가장 먼저 다윗의 용서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본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다. 차기 왕이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들로 산으로 먹을 것도 없이 살기 위해서 도망 다닌다. 그러나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얻는다. 한 번은 옷자락만 베고 또 한 번은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온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기에 설사 지금은 초심을 잃어버리고 변질이 되었다 하더라도 다윗이 직접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가가 하나님의 징계로 그 아들들까지 모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는 상황이 오자 슬퍼하며 활노래를 지어 부른다.

"어찌하여 그 용맹하던 왕과 장수가 엎드러졌는고!"

그리고 장례를 잘 치러준다. 도망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릴 법도 한데 말이다.


또한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왕자들과 함께 같은 상에서 먹고 잘 지내도록 돌보아준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이기도 하다. 요나단이 누구인가? 다윗을 그 어느 여인보다도 더 사랑한 우정의 사람이 아니던가? 요나단은 자신의 왕좌를 포기하고 다윗의 목숨을 지키도록 도운 이가 아니던가? 다윗은 여러 복잡한 감정 속에 있었을 것이지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므비보셋을 잘 보살펴준 것이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울면서 맨발로 피신을 갈 때 골짜기를 따라 요단강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시므이라는 자가 골짜기 위 산 능선을 따라오면서 욕하고 저주를 한다.

"살인자야, 가거라 가거라. 아주 망해버려라."

그런데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또 나타나서 자기가 지난번에 잘못했다면서 빈다. 이런 인간이 있을까? 왕에게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어댔으니 목숨이 위태로울까 두려웠던 것이다. 신하들과 부하들이 처치하자고 해도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고 용서해 준다.


그런데 열왕기상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면서 시므이를 그냥 두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다윗 자신이 왕일 때에는 그런 간신배 같은 인간이라도 감당할만했지만, 아들 솔로몬의 왕권에 혹여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인간이기에 반드시 마땅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하나가 더 있다. 요압 장군에 대한 것이다. 요압은 다윗 왕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의견에 따라 압살롬을 죽이고, 또 아브넬도 죽인다. 다윗왕에게는 요주의 인물이지만 용맹스러워서 다윗의 군대장관으로 지내게 한다. 그러나 요압장군 역시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긴다.

"늙었더라도 평안히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처단하라는 이야기이다. 역시나 다윗도 감당하지 못한 군대장관이었으니 솔로몬의 왕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윗의 용서는 상대방이 한 일을 아주 잊어버리는 용서가 아니다. 더욱 잘 기억하기 위한 용서이다. 한 번 두 번 내가 당한 일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왕의 모습이다. 솔로몬의 지혜는 아버지 다윗의 지혜를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해롭게 한 사람, 그 사람은 용서하되 그가 한 일은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사람뿐 아니라 나라에 대해서도 그렇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했는가?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가?

한 개인 뿐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용서할 것과 기억해야할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일을 거듭해서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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