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의 최대 실수는 유부녀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이다.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모두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중에 왕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옥상 위를 거닐다가 이웃집 여인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저 보기만 했으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걸 보고 마음이 동해서 신하를 시켜서 알아보고 데려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게 문제이다. 그런데 일은 점점 커진다. 어찌 단 한 번의 동침으로 임신이 되었을까? 성경에는 한 번이라는 말은 없지만 추측해 보건대 금방 임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밧세바에게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간음한 사실이 들통이 날까 두려운 것이다.
죄가 더해진다. 싸움터에 나가 싸우고 있는 우리아를 불러와서 밧세바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해서 그 임신한 아이가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숨기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아는 충성스러워서 동료 병사들이 전투 중인데, 자기만 편안하게 집에 들어가서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면서 왕궁 문간에서 잠을 자고 다시 출전을 한다. 그러자 다윗 왕은 '우리야를 적진 가까이 데리고 가서 남겨두고 아군이 후퇴를 해서 죽게 하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요압 장군에게 보낸다. 우리아는 그 편지대로 죽는다.
이제 다윗 왕은 정식으로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는다. 그런데 이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해서 징벌을 내리신다. 그 징벌이 참으로 끔찍하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는다. 그리고 다윗 왕이 몰래 저지른 간음죄와 살인죄는 자식대로 내려가 백주대낮에 아들들이 간음을 하고 살인을 한다. 아버지를 반역하고 후궁들과 잠자리를 같이한 아들 압살롬, 아들 암논의 누이 다말 강간, 아도니야의 반역 등 끝도 없이 죄악이 커지면서 대물림된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바로 깨닫고 회개하는 양심이 살아 있다. 자식대로 내려간 죄악을 보며 그것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회개의 눈물을 그치지 않는다. 그 어떤 징계도 달게 받는다.
그리하여 밧세바 사건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자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죄를 바로 깨닫고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나라의 왕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이 어렵다. 많은 사람 앞에서 한 번에 실추될 명예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온 국민을 다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서 있었기에 회개와 징계를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 왕의 밧세바 사건은 두 번째 아들 솔로몬을 낳아 지혜의 왕으로 이스라엘을 번창시키기도 한다. 예루살렘 성전과 솔로몬 왕궁을 짓고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받는 나라로 우뚝 설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말처럼 '죄가 변하여 구원이 된다.'
지금 나는 어떠한 상황인가? 하나님 은혜로 왕이 되듯이 성공하였는가? 밧세바 사건처럼 범죄의 순간에 처해 있는가?죄를 숨기려다 더 중한 죄를 짓고 있는가? 하나님 징계의 시간인가? 반성과 회복의 때인가? 그 어느 때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양심대로 바로 살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죄를 넘어 구원과 영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