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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by 서순오

성경에 보면 단 두 문장으로 그의 삶이 기록된 사람이 있다. 바로 에녹이다. 창세기 5장 21-25절에서 그는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갔다고 쓰여 있다. 바로 승천한 것이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세기 5:21-25, 개역개정)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으니 아마도 착한 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 선행을 기록을 좀 해주면 좋을 텐데, 사람들은 그걸 보면 '래, 너 잘났!'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잘 안된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자신과 비교해 보면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만, 너무 잘된 사람의 삶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 일도 겪지 않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았다고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 같은 걸 보는 것도 다 등장인물들의 양한 삶을 통해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승리한다.


다윗은 성경에 참 많은 기록이 남진 사람이다.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지 그의 삶을 짚어보면그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정도 정치적인 삶도 인간관계도 그리 평탄하치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양치기 소년으로 살았을 때까지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소년 주인을 잘 따르는 양들을 몰며 낮에는 바쁘게 살고 밤에는 들판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르신다.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신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된다. 사울 왕과의 관계가 뒤틀린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왕이 될 사람이라서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험한 산과 들로 도망 다녀야 한다.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한 사울의 딸 미갈이 비웃는다. 아내를 빼앗긴다. 많은 여인을 아내로 삼는다. 이복 자식을 많이 낳는다. 이웃집 여인 밧세바를 보고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는다. 하나님의 징계로 아이가 죽는다. 자식들이 간음과 폭력의 죄를 짓는다. 아들들이 왕이 되려고 반역을 한다. 어찌 이 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가정은 천국의 작은 모형이다. 그런데 다윗의 가정은 전혀 천국 같아 보이지가 않는다. 아내 한 명과 살면서도 서로 맞지 않아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식도 딱 하나나 둘 낳아서 키우면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또 자식문제이다. 그런데 다윗은 아내도 자식도 많으니 바람 잘 날이 없다. 그야말로 마음 편하게 지내는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했다. 무죄하게 쫒길 때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찬송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흡족해하셨다.


윗은 시편 27:1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 나 그 무엇을 무서워하랴. 여호와는 나 살리는 든든한 바위이시니 나 그 무엇을 두려워하랴."라고 고백을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넉넉히 다 이겨낸다. 다윗은 결국 이스라엘의 성군이 돠다.


에녹처럼 단 두 문장으로 기록되는 삶이 멋진가? 아니면 다윗처럼 기록할 것이 많은 인생이 멋진가?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시대에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리움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다윗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마음에 쏙 들도록 사는 방법밖에 없다. 그 어떤 삶이든지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늘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이 끓이지 않는 삶이 되기를 기도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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