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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향수길

삼성산

by 서순오

자랑산 산행은 2주 만에 한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여고 친구들과 서울숲 치유가, 이번 주에도 토요일에 대학 친구들과 인산자락길 걷기가 있어서 산행을 건너뛸까 했었다. 그런데 그래도 너무 가벼운 걷기보다는 적당한 오르내림과 굴곡이 있는 산행은 쉬지 않는 게 더 좋을 듯해서 산행 신청을 했다.


삼성산 산행은 별다섯 대장님 리딩에 인테리어 지기님 포함 총 24명이 참석하였다. 자주 보는 산우님들도 있지만 아주 가끔 보는 산우님들도 있다. 누가 누군지 닉과 얼굴이 잘 매치가 안 되는 이들도 있지만, 만날 때마다 모두 다 반갑다.


특별히 오늘은 자랑산 카페를 지키며 봉사하시는 두 분 운영위원이신 꽃마리님, 봄뜰님과도 함께하게 되어 더 기쁘다.


나는 오늘 선글라스를 2개나 챙겨갔는데, 전철 안에서 편광렌즈 안경(※1)을 파는 이에게 낚여서 안경을 하나 또 샀다. 글쎄, 써보래서 써보니까 물체도 글씨도 다 잘 보인다.

"오늘은 이걸 쓰고 산행을 해보자."


관악역에서 내려서 2번 출구 정자에서 모여 삼성산을 향해 간다.

"이거 어때요? 전철 타고 오면서 샀는데 넘 잘 보여요."

한바탕 자랑을 한다. 옆에서 콜럼보님이 '자외선 차단 잘 되는 거냐?'라고 걱정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쓰고 간다.

"난 시력이 꽤 좋은 편이니까, 원시와 난시만 아니면 안경 안 써도 될 정도로 잘 보이니까!"

속으로 또 한 번 더 생각을 해본다.

'평상시에 선글라스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럼 그이들은 시력이 괜찮을까?'


삼성산 산행 초반부터 오름길이라 일부는 편안한 길로 가고 대부분은 별대장님 따라서 조금 가파른 길로 오른다. 몇 분이 힘들어한다.


조금 오르다가 운동기구들이 있는 널찍한 장소에 모여 서로 인사를 해보지만 모두의 이름을 외우는 건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우리 여고 친구들이 서울숲 치유에서 했던 '이름 외우기 게임'을 하면 금방 서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 텐데 싶다.


인사한 후에는 몇 명은 따로 천천히 좀 쉬운 코스로 오르기로 한다. 인테리어 지기님이 리딩을 맡아서 해주신단다. 인 지기님은 직접 리딩하실 때도, 다른 대장님 리딩할 때에도 한결같은 섬김이시다.

"카페지기는 아무나 하나?"

대단한 열정이시다. 거의 매일 산행하시고 리딩에다 사진까지 섬김에 탄복을 한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자랑산이 이제 발족했지만 이렇게 많은 참여인원으로 산행 때마다 호응이 좋은 것이다.


별대장님이 다음번에는 조금 다른 코스로 해볼 거라고 하신다. 학우봉도 국기봉도 오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꽃마리 운영위원님은 철쭉꽃 만개할 때 같은 코스를 또 산행하면 좋으시겠단다. 길가에 철쭉꽃이 지천인데 이제 막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고 있어서다.


"지는 꽃 위에 피는 꽃 있다!"

사시사철 우리가 꽃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이유이다.


삼성산은 한 번인가 오른 기억이 있는데, 언제 걸었던 것인지 가물가물하다. 오늘은 끊임없이 오름길이 많다. 그리 가파른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완만한 편도 아니다. 나처럼 오름길이 힘든 사람은 급경사나 완경사나 오름길이라는 점에서는 그게 그거다.


산은 완전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두 주 전과는 판이하다. 초록향기가 진동을 한다. 어제 내린 비로 꽃잎들도 땅에 풀숲에 떨어져 찐한 향을 내뿜고 있다. 천연 향수길이다. 지난주 서울숲 치유에서 꽃차와 꽃떡과 꽃카나페를 먹고 향수 만들기까지 했는데, 삼성산은 숲 전체가 꽃향과 송진향, 초록향, 흙향이 녹아든 천연의 숲길이다. 자랑산 산우님들 24명 모두가 독특한 향기를 마시며 뿜으며 함께 걷고 있다.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피기 시작했다. 진노란 황매화가 반기는가 싶더니 군데군데 연분홍 연달래와 진분홍 철쭉이 벙글고 있다. 여산우님들은 꽃 앞에서는 꼭 발걸음을 멈춘다. 꽃을 만져도 보고 코를 내밀고 향기도 맡아본다. 꽃 인증숏은 필수이다!

"누가 누가 예쁜가?"

마치 겨루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이가 들어도 꽃 앞에서 설레는 마음은 아직도 소녀이다.


오름길, 편안한 길, 비탈길, 암릉구간 적당하게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자주 쉬어도 간다. 한번 세게 오름짓 하다가는 꼭 쉰다. 휴! 다들 한숨 돌린다. 후미에서 오는 시람 휴식시간이 짧지만 선두가 기다려주어 고맙다.


점심식사는 금방 먹는다. 자랑산의 특징이기도 하다. 주로 오전 11시에 모이니까 거의 오르자마자 1시간 이내로 점심을 먹는 것이다. 배는 그리 안 고프지만 산우님들이 정성껏 준비해 온 밥과 반찬, 빵, 떡, 특별음식 등을 펼쳐놓으면 다들 손이 바쁘다. 오순도순 입도 즐겁고 맛있고 배도 빵빵해진다. 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누가 싸왔는지 핫핫! 불닭발이 인기 최고다. 닭발 하나를 배당받아먹으니 불맛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참, 콜럼보님 싸 오신 오메기떡도 팥향이 고소 달달하다.


암릉구간 한번 힘들게 오른 후 삼막사가 보이는 지점에서 좀 길게 쉬어간다. 다들 삼막사를 배경으로 서서 사진을 찍는다. 아주 오래된 절이란다. 나는 절 사진은 잘 안 찍는 편이라서 구경만 한다.


삼막사 안 들르고 국기봉을 향해 간다. 오름길이 가장 되다. 국기봉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또 쉬어가는데, 별 대장님 혼자 가서 보고 사진만 찍어오셨단다.

"국기봉은 왜 안 가요?"

"국기도 안 걸렸고 나무에 가려 잘 안 보여요."

나중에 카페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그래도 암릉과 사이사이 피어난 철쭉이 꽤나 멋스러운 데 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이제는 내리막길 하산길이다. 안양예술공원 방향이다. 무너미고개를 지나 그쪽으로 갈 거란다. 휙 내려가는데 벚꽃이 아직 예쁜 나무가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내 바로 앞에서 발자취 따라 구석구석 사진을 찍으며 산행하시는 아매랑님을 붙잡는다.

"여기서는 한컷 찍고 가야죠!"

그러고는 나도 한 컷, 아매랑님도 한 컷, 그러는 사이 우리 일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길을 찾아보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소리는 오른쪽에서 나는데, 그쪽은 길이 없다. 아마도 벚꽃 사진 찍던 거기 어디쯤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있었나 보다.


걷기가 몹시 사나운 너덜지대를 한참 내려간다. 아매랑님이 별 대장님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불능지역이란다.

드디어 반가운 이정표가 나타났다. 안양예술공원 쪽으로 간다. 아매랑님이 별 대장님과 통화 후 갈 방향을 정한다.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뒤에서 혼자 오시는 남산우님에게 안양예술공원 가는 길을 물어보니 양쪽 다 그리로 가지만 능선길이 좋다고 따라오란다.


드디어 암릉 위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리를 잡은 조망터, 자연 포토존에서 우리 자랑산 일행을 만난다.

"나도 저 소나무 위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그런데 선두팀은 우리가 가자마자 일어선다. 아매랑님과 나는 천천히 사진을 찍고 뒤따라간다. 아매랑님도 점점 걸음이 빨라진다.


까만 옷에 까만 배낭을 메신 분이 내 바로 앞에 가신다.

"한 사람이라도 같이 걷는 이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혼자 후미에 처져서 길을 헤맨 적이 많아서 안심을 한다. 같이 걷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혼자 오신 분 같은데 나랑 거의 보폭을 맞춰 주시며 걷는다.

"고맙기도 하지."

혼자 내려가기 어려운 암릉에서는 스틱도 받아주시고 손도 잡아 주신다. 에스코트받는 기분이 꽤 낭만적이다.


"혼자 오신 분인가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를 앞세우고 뒤에서 볼일을 보시는 듯하다. 걸음이 빨라 곧 따라오신다.

"먼저 가실래요?"

"그럴 거면 이렇게 안 하죠."

내가 걸음이 꽤나 느린데도 천천히 뒤따라 오시며 함께 해주신다.


이제껏 산행을 단 둘이 해본 적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주로 산악회에서 가지만 늘 후미라서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적이 많다. 지나간 추억을 짚어본다. 지금은 미국에 이민가 잘 살고 계신다는 그 오빠, 별자리 이름을 가지신 그분, 한 번 연락이 된 적이 있는데, 한밤중에 볼일을 보려고 잠이 깼는데, 갑자기 카톡이 울려서 열어보니 그분이시다.

"오빠예요?"

"그래."

대학시절 1학년 때 시작한 산행을 한 10여 년 가까이 함께 했었다.

우리나라 새벽 3시, 미국 시간대는 낮이라서 그 시간에 톡을 한 거란다.

"그때 같이 산행하던 친구 있지? 그 애 지금도 연락하나?"

"선악이 말인가요?"

이름이 하도 독특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친구이다.

"아뇨! 대학 졸업 후 소식이 끊겼어요."

"오빠가 그 친구랑 같이 미국 초대해서 여행 함 시켜줄까 했더니만!"

"아, 네."

"혼자서도 가능하다면 한 보름 정도나 한 달도 좋은데, 비용은 모두 오빠가 감당할게. 미국 와서 고생도 했지만 돈도 많이 벌어서 그 정도 능력은 되는데."

"그건 좀."

나는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톡을 닫는다.


'한 때 마음이 설레기도 했던 사람, 그가 이미 결혼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함께 해도 좋겠다 생각해 보았던 사람, 고급 공무원이었던 그이가 어떻게 미국 이민을 가게 된 걸까? 아마도 아이들 둘의 장래를 생각해서 간 게 아니었을까?'

나는 한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미국을 그려본다.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혼자서 미국 여행은 좀 그렇지. 그것도 나이 든 남자와 나이 든 여자가 단 둘이서!"

나는 피식 웃는다.


꽤나 멋스러운 과묵한 내 앞에 걷고 있는 까만 산우님에게서 그 오빠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발견한다.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싱그럽다. 풍경도 좋은데 에스코트하는 남산우 님의 매너에 오랜 추억여행까지 떠올리며 향기로운 산행이다. 산행 시작부터 퍼지기 시작한 천연 향수가 온몸과 영혼까지 적시는 느낌이다.


아매랑님은 저만치 앞에서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조망이 좋은 암릉구간에서는 여기저기 산봉우리들을 담느라 그러신 듯하다. 나는 그 봉우리가 무슨 산봉우리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걷고 있는데 말이다.


자랑산 산우님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꿈에서 깨어난다.

"추무치님이시구요!"

"혼자 오신 분인 줄 알았어요."

지난번 관악산+삼성산 둘레길 산행에서도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에게 뒤풀이 찬조금만 주시고 다른 길로 따로 산행하시던 분이 아니시던가?

"누구일까?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오늘도 뒤풀이비만 찬조해 주시고 가셨다. 내가 이분과 함께 산행을 한 것이다.


삼성산도 하산길에 보니까 암릉구간이 참 멋지다. 아매랑님 올려놓으신 사진을 보며 조망터에서 보이는 주변 산봉우리들 공부를 한다. 산우님마다 재능도 가지가지 모두 다 유익한 것들이다. 어떤 이는 찬찬하고 섬세하고 푸근한 리딩으로, 어떤 이는 맛있는 음식으로, 어떤 이는 달콤한 과일로. 대추로, 또 어떤 이는 카페를 지키는 운영위원으로, 방장님으로, 재미난 이야기로, 사진 봉사로, 모두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참. 시애틀에서 우리 테이블 뒤풀이비 한방에 쏘아주신 수산사님, 감사해요. 아매랑님 대추도요. 빠른 사람이나 느린 사람이나 하나하나 챙기시느라 애쓰신 별다섯 대장님, 인테리어 지기님, 가장 감사드리고요.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 나중 또 반갑게 만나 뵈어요.


하산길 후미 일대일 단독 리딩해주신 추무치님을 못 알아 뵈어서 죄송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단도 안 치시고 조용히 미소만 지으며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추무치님 닉에는 어떤 뜻이 담긴 거죠?"


※1. 근데 사진 찍은 걸 보니 안 이쁘다. 안이 안 보이는 검정 알과 보이는 노랑 알이 있었는데, 검정색을 살 걸 그랬다.

별다섯 대장님
서로 인사
황매화에서
점심식사
단체사진
벚꽃과 연달래
암릉길
돌계단길
삼성산 국기봉
벚꽃에서
암릉과 소나무에서
암릉길
하산길 암릉구간에서 보는 주변산 조망
삼성산 출령다리에서
삼성산 산행 기록 : 총 10km, 5시간 소요(점심, 휴식 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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