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산+구름산+가학산
"광명 도덕산+구름산+가학산을 언제 다녀왔던가?"
기억해 보니 아마도 이맘때쯤인 것 같은데 철쭉이 예쁘게 피었던 걸 보면 조금 더 늦은 때에 걸었던 게 아닐까 싶다.
"기록을 찾아보면 쉬운데!"
기록광인 나는 브런치의 <산타가 최고야! > 나의 산행후기를 찾아보기로 한다. 2023월 3일 20일 월요일 산행이다. 날짜가 더 빠른 3월인 데도 꽃이 활짝 피었다. 기록은 정확하다.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록이 좋은 이유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내가 죽고 이 땅에 있지 않을 그때에도, 아마도 종이책이나 전자책이나 뭐 그런 걸로 만들어놓는다면, 블로그 기록보다도 더 오래 존재하리라.
서울근교에 접근성이 좋은 산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광교산이나 청계산, 내일은 관악산이나 삼성산, 모레는 수리산이나 도덕산+구름산+가학산, 글피는 칠보산이나 이런 산들을 걸을 수 있어서이다. 운동도 하고 꽃과 나무도 보고, 피톤치드도 흠뻑 들이마시고, 산우님들과도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맛있는 점심에 뒤풀이 맛집에서 영양보충도 하고, 이런 복된 인생이 어디 있으랴!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기본체력과 의욕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니 취미 치고는 꽤 괜찮은 여가활동이다. 그래서 늘 어디 갈 데가 없을까? 자랑산 산악회 공지 올라온 걸 찾아보며 꼬박꼬박 산행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광명 도덕산+구름산+가학산 1일3산 산행은 인테리어 지기대장님 리딩에 산우님 12명 참석, 총 13명이 함산 하게 되었다. 늘 30여 명 이상씩 참석하다가 인원이 거의 1/3로 줄어드니 오붓하니 좋다.
"근교산행에 30여 명 이상이라니 너무 많이 참석하는 거 아녀요?"
"신청 댓글 선착순 10명 이렇게 끊으면 어때요?"
산우님들이 한 마디씩 하지만 리딩하시는 대장님들은 자랑산 산악회가 인기가 있는 것이라서 그저 좋아서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신다.
암튼 산행 인원은 7~8명이면 가족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고 모두를 다 만나 친해질 수 있어서 가장 좋다. 10여 명 내외이면 또 한 손안에 들어오는 인원이라 보폭에 맞는 사람들끼리 자연적으로 두세 팀 정도로 나누어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참석 인원이 20명, 30여 명 되다 보면 리딩하시는 대장님 혼자서는 통솔이 어려워서 선두, 중간, 후미 대장님들이 세워진다. 그래도 함께 한다는 기쁨은 크다.
철산역에 내려 2,3번 출구로 나오는데 2번 출구는 막혀있고 도덕산 들머리도 막혀있는 곳이 많다. 산 밑에 아파트로 들어가서 높은 계단을 몇 개나 올라가니 도덕산 입구가 나온다. 초반부터 힘든 오름길이다. 힘이 쫙 빠진다.
그렇지만 곧 넓은 밥터를 찾아 예쁜 산수유꽃, 산목련꽃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초롱이님은 도토리묵과 양념장을 가져와서 즉석 무침을 만들어낸다. 참깨도 솔솔 뿌려서 도토리묵무침이 고소하다. 산우님들이 가져오신 잡곡밥에 오색 송편, 팥부꾸미 같은 떡말이, 오징어무침, 황태채무침, 방풍나물, 김치볶음 등 맛깔스러운 반찬이 푸짐하다. 후식으로는 바나나에 청포도, 보랏빛포도 몇 알씩 먹는다. 담소하며 한껏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배는 부르고 배낭은 가볍다. 신기하게도 싸 온 밥만 꺼내서 먹고 나면 배낭의 무게감이 확 줄어든다.
산수유꽃 예쁜 곳에서 단체사진 찍고 산목련 고운 곳에서 여산우님들과 사진을 찍는다. 이제 살방살방 걷는 맛이 난다. 편안한 흙길이 걷기가 좋아서이다.
도덕산 인공폭포와 출렁다리가 나온다.
"오늘따라 유난히 출렁거리네!"
서우님이 걸어오면서 한 마디 한다. 아무래도 다리 위에 사람이 적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인공폭포는 미가동 중이고, 절벽 위에 진달래 한 그루가 유난히 탐스럽다.
'저 위에 핀 진달래꽃을 꺾어다 달라면 누가 앞장서서 올라갈까나?'
지금 우리는 그런 요청을 할 리도 없지만, 옛이야기에는 그런 구절들도 있으니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인들과 의협심에 불타는 남정네들도 있었구나 싶다.
가파른 길 올라가 곧 도덕정에 도착한다. 계단에 서서 기념샷 찍고, 돌 얼굴 포토존에 개인사진들 찍고, 철쭉길을 지나간다. 철쭉꽃은 조금씩 망울만 맺혔을 뿐 꽃이 피려면 아직이다. 아마도 만개하려면 두 주일쯤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날씨만 좋다면야 그전에라도 꽃이 활짝 벙글 수는 있겠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
여산우 님 누군가 산목련꽃 지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나도 노래를 부른다. 뒤에서 따라오는 이가 장단을 맞추어준다. 발걸음이 흥겹다. 무리 지어 피어있는 개나리 꽃밭에서 여산우님들과 사진을 찍는다. 모두 앞서가고 사진 찍느라고 5명만 후미이다. 그래도 느림의 미학 힐링산행이니 여유가 있다. 앞서가는 이들이 어디에선가 기다려줄 것이다.
도덕산 지나 도로길 옆길을 지나 아치형 다리에서 조금 놀다간다. 재미있는 제스처도 하면서 단체사진 남긴다. 팔을 치켜들어도 보고 발을 내밀어도 보고 손 하트에 파이팅도 외쳐본다. 단순하지만 즐겁다.
도덕산+구름산+가학산은 나로서는 오늘이 두 번째 산행인데, 구름산과 가학산 정상은 못 올라보고 둘레길로만 걸었다. 그런데 오늘은 인대장님이 셋 다 정상을 가는 코스란다. 지난번에 함산 했던 오트밀님은 닉을 피오나 님으로 바꾸고 막 피어나는 예쁜 공주님을 꿈꾸고 있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곳에 2년 전에 왔을 때는 서우님과 오트밀님과 나, 리딩하시는 인대장님, 이렇게 네 명이서 산행했었다. 그때도 즐거웠는데 오늘이 더 즐겁다. 아무래도 여러 번 함산 했기 때문이리라. 그동안 산에서 차곡차곡 쌓인 정이 알게 모르게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작가는 인대장님과 콜럼보님이시다. 두 분이 사진을 제법 잘 찍으시기에 이렇게 저렇게 모델을 해가며 기쁘게 폰 속 카메라 세상으로 들어간다. 나는 최대한 적게 사진을 찍으면서 후미를 면해 보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여전한 후미이다. 뒤에서 미운틴님이 따라오며 바디가드를 해주신다.
"너무 바짝 따라오면 부담이 되지 않나요?"
"아뇨. 가파는 곳 내려올 때는 좀 그렇지만 여긴 길이 좋으니까요. 후미 봐주셔서 도리어 감사하죠. 혼자 걷지 않아도 되니까요."
봄이 성큼 다가온 만큼 산에는 개나리, 진달래, 산목련, 벚꽃, 홍매화, 산수유 등 이름난 꽃들뿐만 아니라 야생화 천지이다. 땅바닥 검불 속에서 아주 자그맣게 군데군데 모여서 피어난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 별꽃, 꽃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키 큰 꽃은 키가 큰 대로, 작은 꽃은 작은 꽃대로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함께 봄산을 빛내고 있다. 우리 사람들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민생은 안중에 없고 상생은커녕 서로가 서로를 흠잡지 않으면 안 되는 현 정치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새미약수터, 진달래약수터, 천연약수터 지나간다. 새미약수터는 물이 나오는데 진달래약수터와 천연약수터에서는 물이 안 나온다. 요즘 가물어서 그런 듯하다. 산에 있는 약수터 물은 적합수 판정이 나 있는 곳에서만 물을 마신다. 혹여 잘못 마시면 배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름산 정상 가는 길은 무척 가파른 데크길이다. 우리는 그곳을 지나서 조금 완만한 오름길 로프구간으로 오른다. 나는 늘 오름길이 힘들어서 헉헉댄다. 구름산 정상 돌비와 정자가 멋지다.
내려올 때는 데크길이 더 안전해 보여서 가파르지만 그 길로 내려온다. 양쪽에 진달래가 곱게 피었다. 다들 하도 빨리 내려가기에 사진에는 담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온다.
가학산으로 간다. 자난번 왔을 때도 쉬어갔던 장소에서 콜럼보님이 건네주시는 달큼한 천혜향을 맛보며 숨을 고른다. 정상을 향해 간다. 길이 좋다. 조금 경사가 지지만 걸을만하다. 앞에서 초롱이님이 날 챙긴다.
"빨리 오세요."
"알았어요."
그래도 나는 내 보폭이 있어서 꾸준히 따라간다.
가학산 정상에도 돌비와 정자가 있다. 정상 조망이 시원하다. 산불감시를 하는 요원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사진 부탁을 해서 단체사진을 남긴다.
내려오면서 누군가가 얘기한다.
"글쎄, 저런 분들이 모자를 안 썼느니, 전화를 안 받느니, 하면서 자꾸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네요."
"하루 종일 혼자서 고생하시는데, 그런 사람이 등산객 중에 있단 말이에요?"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맞장구를 친다.
'산을 지키려고 애쓰시는 분들의 수고를 알아주며 음료수 한병이라도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해본다.
오늘은 도덕산+구름산+가학산 1일3산 정상을 찍은 날이다. 산에서 정상에 오르면 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누린 수 있는 행복이다. 물론 오르면 또다시 내려와야 하지만, 오르는 자만의 순전한 기쁨이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
"정상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함께 오를 수 있는 정상이 있기에 오늘도 걷고 웃고 즐거운 하루이다. 남산우 님 셋에 여산우 님이 열이라 더욱 왁자하게 수다가 피어난 날이다.
어여쁜 자랑산 여산우님들, 언제 만나도 반가운 이들이다. 안전리딩 해주신 인대장님을 비롯해서 사진작가로 애써주신 콜럼보님, 스스로 후미를 챙겨주신 마운틴님 덕분에 여산우님들이 더 깔깔대며 산행을 즐길 수 있었던 듯하다.
아, 참 13명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뒤풀이도 참석해서 돼지갈비를 먹으며 화기애애하다. 함산 한 모두에게 감사하다.